사회주의에 미혹된 기독교인
사회주의에 미혹된 기독교인
  • 곽태원 서강대 경제학 명예교수
  • 승인 2022.02.15 09:3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드뷰/공동기획 / 곽태원 교수의 성경과 경제 이야기

경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틀(frame)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경제체제이다. 경제체제란 경제에 관한 이념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로 경쟁하는 두 가지의 체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이다.

지금도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을 빼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아직도 사회주의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주의의 본질을 조금 이야기할 필요를 느낀다.

다음 회에서는 자본주의를 잠시 훑어보고 그다음부터는 좀 더 실제적인 경제 문제나 경제 현상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룰 계획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던 완성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한 마디 때문에 수많은 소위 지성인들이 사회주의에 미혹되었고 수많은 청년이 혁명 전선에 자신의 생명을 던졌다.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자신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그 열매는 생산에 공헌한 것과는 상관없이 필요한 대로 나눠 갖는 사회, 그런 사회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러한 사회는 초대 교회에서 먼저 실현되었다.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이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시장의 역동성과 사유재산권

이 말씀을 보면 사회주의의 원형은 복음 속에서 아름답게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바로 실종되어 흔적마저 없어졌다가 자본주의가 급하게 근력을 키워가기 시작하는 말세(?) 즈음에 되살아났다. 정말 복음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유재산권에 대한 태도에 있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재산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도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라고 한다(행 4:32b). 이것 때문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자본주의 체제는 시장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경제 문제를 아주 쉽게 풀어간다. 그런데 개인의 사적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에는 시장이 설 자리가 없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사회(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우리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없으면 모든 경제 문제를 일일이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체제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부(또는 공산당)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모든 사람과 자본 토지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하게 하면 시장에 맡겨 놓은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생산이 이뤄질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생산된 결과를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정한 시장의 경쟁에 내던져 놓으면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누리고 약자는 빈곤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정부가 분배를 결정하면 각자의 개별적인 사정을 자세히 파악해 정의로운 기준에 따라 각자의 필요를 반영한 평등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쉬운 예로 정부가 서울시민의 아침 식사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해 보자.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다음에 그것을 만들 재료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런 요리를 가장 잘하는지를 파악해서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요리하게 하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 이 일 만을 위해서도 엄청난 수의 공무원이 있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환전상과 그의 아내(1539), 마리누스 판 라이메르스발(1490~1546)작, 판자에 유채, 83 x 97 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환전상과 그의 아내(1539), 마리누스 판 라이메르스발(1490~1546)작,
판자에 유채, 83 x 97 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하나님의 진리에 대적하는 사회주의 실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커다란 약점 중 하나가 개인의 필요를 채워준다고 하면서 개인의 필요를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다. 혹시 필요가 파악되고, 개인의 능력이 확인되었다고 해도 개인에게 그런 일을 실제로 하도록 해서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각자가 자신이 상대적으로 가장 잘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은 인센티브가 있다. 그러나 계획경제제체에서는 모든 것이 정부나 당의 명령에 따라서 이뤄져야 하는 데 명령은 그 이행을 보증하는 강력한 제재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자랑하는 공평한 분배를 위해서도 개인이나 가정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개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재분배를 위한 힘이 필요하다. 장황한 이야기를 했지만 계획경제체제가 원만하게 운용되려면 우선 엄청난 정보가 필요하고 다음 강력한 중앙정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권력이 아니라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주의가 가장 앞세우는 정의로운 분배를 위해서는 정부나 당이 정의롭고 선한 존재여야 한다.

완전한 정보와 능력 그리고 완전히 선한 성품을 가진 독재자가 있다면 계획경제체제는 정의롭고 효율적인 경제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암묵적으로 정부가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요컨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공동체가 공산공동체였다는 점 때문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성경적이라고 보는 것은 섣부른 것이다. 성령님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사랑의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것을 완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짝퉁을 넘어 진리에 대적하는 것이다.

설사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었다고 해도 권력이 집중되면 본질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부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등을 가져다준다는 약속은 지켜질 수 없다. 정보와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극도의 비효율이 만연한다. 이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것이 20세기의 사회주의 실험이었다.

자본주의를 맘모니즘의 동의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의외로 많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주의는 정의롭고 자본주의는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자본주의를 교회의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경제활동에서 자본이 담당하는 역할이 크다는 이유로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사회주의에 대비되는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경제에서 자본의 역할이 급격하게 커진 것은 산업혁명 이후인데 현대의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자본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체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자본을 누가 소유하고 지배하는가에서 나온다.

사회주의에서는 자본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주체가 국가이지만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핵심제도는 사유재산제도이고, 사유재산제도는 자유로운 교환이 전제된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은 결국 시장경제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긴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시장에서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는 데 있다. 자유로운 거래는 쌍방을 모두 만족시킬 때만 성립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거래는 자원의 배분을 지속적으로 개선되게 한다.

어떤 거래가 이뤄지면 거래가 있기 전보다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의 형편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래가 대량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이뤄지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이다. 더구나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는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더 유리한 거래를 하기 위해 각자가 창의적인 노력을 할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생산과 소비가 가장 효율적으로 이뤄지게 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에너지가 충만하게 된다.

시장경제체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무한경쟁, 승자독식 또는 정글의 법칙 같은 표현은 경쟁이 잔인하고 무질서하며 수많은 패자의 불행 위에 소수의 승자만 과도한 부를 누리게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글의 법칙은 놀라운 질서와 균형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교회의 적인가

시장의 경쟁은 소수의 승자만 배출하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경제학의 비교우위이론에 의하면 시장 참여자나 기업은 서로 경쟁을 하지만 각기 상대적으로 우위가 있는 분야로 찾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경쟁이 협력관계 또는 상생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크게 성공했던 빌리 로즈(Billy Rose)라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흥행에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손재주도 매우 좋아 전 미국 타이핑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타이프를 잘 쳤다고 해서 직접 타이핑을 함으로써 당시의 인기직종이었던 타이피스트의 자리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업과 타이핑을 모두 잘했지만, 그의 비교우위는 흥행업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보다 타이핑 속도가 훨씬 느린 비서를 고용해 상당한 급여를 주면서 자신의 서류를 타이핑하게 했다.

시장경제체제가 효율 면에서는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공평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나쁜 제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여기서도 비교가 되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이다.

사회주의가 아무리 공평을 강조하고 그것을 추구한다고 외쳐도 실제로 존재했었거나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사회의 현실을 보면 공평한 사회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행동이 중요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분배의 공평’ 혹은 ‘분배 정의’라는 것은 ‘평등’ 즉 ‘격차의 극소화’라는 한 가지 차원의 가치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분배 정의의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기준은 정당한 보상이라는 가치이다. 일한 대로, 노력한 대로 거기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다.

사실 이 후자의 가치를 먼저 구현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출발점이다. 오늘날의 건강한 자본주의 사회는 일한 대로 보상을 받는 사회에서 출발해 정부에 의한 분배의 조정 또는 개선이 가미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 비하면 뛰어나게 더 좋은 제도이며 이것은 효율 측면뿐 아니라 공평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먼저 관련된 성경 구절을 보자.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지침을 내린다. 행한 대로 보응한다는 것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 공의로운 심판의 기본적 기준으로 제시된다.

바울은 또 사업가 루디아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누가복음 19장의 므나 비유는 더 자본주의적이다. 금 다섯 달란트는 무게로 102~170kg에 해당하며 오늘날의 가치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매우 큰 자본이다.

이러한 통 큰 자본의 투입을 예로 드시는 주님께서는 적어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적대적이 아니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100%의 이익을 거둔 종은 큰 칭찬을 받고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종은 맡겼던 달란트까지 빼앗겼다. 그 비유 중에 은행과 이자를 인정하시는 장면도 나온다.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자본주의적이다. 투자 금액은 달란트 비유에 비해 작지만 첫 번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보고하고 있다.

기간이 얼마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000%의 수익률은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다. 또 주인은 수익률에 따라 내리는 상급에 차등을 둔다.

이러한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이 자본주의자라고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적대시하셨다면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들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도 마지막 날에는 폐기처분될 것이다.

천국에는 경제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 시스템이 필요하다. 공평한 분배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시장제도이다.

(다음 호에 계속)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규호 2022-02-16 23:59:22
사회주의는 가격을 시장처럼 발견못한다.
이제 ai로 한다고 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나?
그리고 불환화폐의 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