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규모로 차별하지 말아야
기업을 규모로 차별하지 말아야
  •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21.12.09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기업 규제로 시작된 성장동력의 상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1987년 이후 한 번도 상승한 적이 없이 계속해서 하락했다. 30년이 넘도록 잠재성장률이 하락한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경제 성장동력을 상실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전략을 실시해 고도성장기를 이끌었다. 1987년 이후 성장동력의 한 축인 대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면서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렸다.

1987년 1월 1일 공정거래법은 대기업 집단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했다. 대기업집단지정제도를 실시해 지주회사 설립을 금지하고 상호출자도 금지했다.

출자총액제한과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를 실시했다. 잠재성장률 하락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성장동력 상실의 신호탄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 71곳을 공시대상기업 집단으로 지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 71곳을 공시대상기업 집단으로 지정했다.

1992년 3차 개정을 통해 채무보증금지제도 또한 도입되었다. 이는 대기업집단의 사업 위험분산 행위를 금지한 정책이다. 사업을 확장하거나 신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위험이 자본시장에서 분담돼야 하지만,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대기업집단 내에서 위험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이 발전하기도 전에 위험 분담 메커니즘을 막음으로써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장애물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기업들이 위험이 높은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본시장의 도움 없이 많은 자금을 동원하고 위험을 부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4년 4차 개정으로 출자총액제도를 강화했다. 1987년 이후 각종 규제가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와 환율정책 실패로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1998년 6차 개정을 통해 출자총액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자본시장이 발달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도입된 대기업 규제가 실패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자의적인 규제 기준

대기업 규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기준에 의해 상호출자금지기업집단이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되면, 의결권 제한, 사적 거래에 대한 제약, 해외 계열사 공시 등 다양한 규제를 받게 된다.

재산권이 제약되고 사적 자치의 원칙도 침해된다. 대기업집단의 경제 활동을 제약해서 얻는 공익은 불분명한 데 반하여 제재로 침해되는 사적 이익의 규모는 매우 크다.

대기업집단의 관련 기업들은 공정거래법상의 제재만이 아니라 총 41개 법률의 제재를 받게 된다. 수산업법에 의해 어업면허가 금지된다. 소프트웨어산업법에 의해 공공발주사업에 참여하는 데 제한받는다.

유통산업발전법, 벤처기업육성법, 중소기업 창업지원법 등 경제 성장동력을 찾는 분야에서도 제재를 받는다. 자본시장법, 대부업법 등의 제재로 사업이 제한되거나 주식 소유가 제한된다.

고용보험법, 세법 등에서 혜택이 배제되고 자산관리법 등에서도 강한 제약을 받는다. 크다는 이유만으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힌다. 경제가 성장할 길이 없다.

공정거래법에서 사용되는 경제력 집중이라는 개념도 불분명하다. 경제력 집중이라는 개념은 소수의 집단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될 때 사용된다. 자산 규모 5조 원이라는 절대적 기준이 전체 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자산 규모인지에 대한 근거도 없고 경제력의 소수 집중이라는 상대적 개념과 거리가 먼 기준이다.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수단도 불합리하다.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기업집단들이 형성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이에 속한 개별기업집단의 경영을 제약하는 것을 합리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개별기업집단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그 기업집단이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졌느냐를 평가해야 한다. 분류 기준이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경제력을 남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시장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지도 않고 경제 활동의 범위를 확정하지도 않고, 자산 규모로 시장 독점이나 경제력 집중을 따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 활동 과정에서 부등가교환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 활동에서는 거래 당사자 모두 승자가 된다.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창출된 이윤을 축적함으로써 자산 규모가 증가한다.

자산 규모가 크다는 것은 경제에 많이 공헌했다는 증거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여 해외에서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해도 자산 규모는 커진다.

자산 규모를 경제력 집중의 잣대로 삼으면 국내 경제와는 관련 없이 해외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기업집단도 집중된 경제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자산 규모 5조 원이라는 기준은 국내 경제력 집중을 평가하기에는 자의적인 기준에 불과하다.

현재의 공정거래법은 기업의 규모가 큰 것 자체를 규제한다. 이와 같은 법체계가 과연 실증적 증거를 바탕으로 구축된 것인지도 의문이다. 객관적 근거가 없다 보니 1987년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시작된 이후 그 기준과 규제 방식이 자의적으로 변경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자산 총액에서 자산 순위로, 그리고 다시 자산 총액으로 지정 기준 자체가 변경됐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대한 기준도 다르다.

1987년에는 자산 규모 4000억 원을 기준으로, 1993년에는 30대 기업집단으로, 2002년에는 자산 규모 2조 원으로, 2008년에는 5조 원으로, 2016년에는 상호출자금지기업집단은 10조 원, 공시대상기업집단은 5조 원으로 제재 기준이 수시로 변경됐다. 경제행위를 제재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규제되는 행위의 해악을 규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을 규제하는 법 체제는 이러한 합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합리적 근거도 없이 기업들이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경제력 집중에 관한 법률은 경제 전체의 경제력 집중도와 특정기업집단의 경제력 개념이 혼재되어 제재에 관한 기준을 정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어떤 경제가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경제력 집중도를 계산한다.

이때 경제력 집중도는 정해진 수의 기업집단이 그 경제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가지고 계산된다. 부가가치기준이나 매출액기준 등은 당연히 통일돼야 한다. 기업집단이 누구인지는 관계가 없다. 순위가 바뀌어도 특정기업집단과 관련이 없이 경제력 집중도가 계산된다.

특정기업집단이 집중된 경제력을 가졌는가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경제력 집중도가 아니라 개별기업집단의 경제력 비중이 계산돼야 한다. 제재 대상이 개별기업집단이기 때문에, 그 특정기업집단이 얼마나 집중된 경제력을 가졌느냐가 평가돼야 하고, 규제 수준의 집중된 경제력이 경제에 얼마나 해악을 미쳤느냐를 분석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늘어갈 수록 경제 활력은 떨어진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늘어갈 수록 경제 활력은 떨어진다.

정치놀음으로 왜곡된 대기업 규제

개념의 혼란 속에서 대기업 규제는 정치놀음으로 전락했다. 규제를 받는 대기업집단 대상을 정하기 위해 자의적인 기준들이 동원됐다. 기준이 자의적인 만큼 정치권에서의 논란도 심각하게 진행됐다.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되면 각종 재산권의 침해를 받게 되고 사업 확장 등의 규제로 미래의 수익 창출까지 제한받게 된다. 자의적 기준이지만 규제 대상이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분명하게 차별화되기 때문에 대기업은 정치권의 먹이가 된다.

GDP를 기준으로 자산 규모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문제다. 이 기준도 합리적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의 자산 규모와 GDP와의 관계는 업종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 입법례로서 거론되는 재정건전화법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재정은 GDP와 연동되어 결정되기 때문에 기준을 GDP와 연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업의 자산 규모는 기업의 업종에 따라 다르며, 자산 규모와 매출액의 관계, 그리고 부가가치와의 관계도 기업마다 다르다.

더욱이 자산 규모를 GDP와 연계한다는 발상 자체가 타당한지도 검증 대상이다. 공정거래법은 자산 규모 5조 원의 기준으로 기업집단을 제재한다.

이 기준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이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이 개별적으로 어느 정도의 집중된 경제력을 가졌는지가 평가되고, 집중된 경제력으로 얼마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는지가 분석돼야 한다. 검증도 안 된 규제 기준으로는 정치적으로 기업집단을 규제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대기업 규제가 객관적으로 타당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지주회사를 금지했다가 다시 지주회사를 허용하는 등 규제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화했다.

애당초 사례도 찾기 힘들고 공익 증진의 근거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공정거래와 경쟁이라는 본질과도 관계없는 대기업 규제였다. 결과적으로 대기업 규제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외면하고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정치를 위한 규제로 변했다.

현재 공정거래법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에는 사전적 규제 및 사후적 규제가 있으나 이들 규제의 헌법적 근거는 없다. 헌법 제119조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한다는 문항이 경제력 집중 그 자체를 불법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력 집중이 비효율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산 규모가 큰 기업들을 제재한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 경영이 비효율적이었다면 기업이 커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규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력의 측정도 문제가 되지만 경제력이 클수록 비효율성이 증가한다는 주장도 검증이 필요하다. 이미 기업집단의 소유권을 제약하고 있고, 여러 원용된 법들에 의해 관수 시장으로의 진입을 금지하고 사업 확장을 금지하거나 사업 범위를 제한하는 등, 경영상의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실증분석의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있고 더 많은 수출을 하는 기업들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에게 국내 시장을 내줘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둘째, 경제력을 남용한다는 근거도 없이 대기업집단을 규제하는 것도 문제다. 특정기업집단이 경제력 집중으로 경제에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를 규명해야 규제 근거가 마련된다.

셋째, 규모에 따라 다른 잣대로 동일한 행동에 대해 사익편취로 낙인을 찍는 것도 합리적인 법치의 영역인지 의문이다.

넷째, 소유가 점점 분산되어 가는 추세에서 대기업의 자산 규모를 가지고 경제력 집중을 따지는 것도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10억 원 규모의 기업을 100명이 분산 소유하는 경우와 1억 원 규모의 기업을 단독 소유하고 있는 경우를 비교하여 어느 경우가 더 경제력이 집중됐는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다시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 기업 규모에 따라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행위에 따라 제재하는 정책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 제119조 ①항에서는 기업의 자유와 창의 존중, ②항에서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가 규정돼 있다. 헌법 126조에서는 기업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정책 기조로 정하고 있다.

현재 대기업 규제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규정이 아니다. 경제력 남용을 판단하기 이전에 자의적인 잣대로 규제 대상을 규정하고 경영에 개입함으로써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박탈하고 있다.

헌법 정신에 기초한 대기업집단 규제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행위를 구체적인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이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대한 기준을 폐기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주회사 등이 경제력 남용의 기반이 되는지를 별도로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정거래법은 경쟁 촉진과 시장 지배 및 경제력 남용을 금지하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대한 기준을 원용하여 사업의 진출, 확장, 투자 등을 막는 다양한 법들은 구체적인 시장 지배력과 경제력 남용의 기준을 설정하도록 전면 개정돼야 한다. 현재 대기업 규제는 헌법상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의롭지도 못한 규제다.

효과적이지도 않다. 구체적인 법률안에서 기업 규모로 기업을 차별하는 용어는 사라져야 한다. 마녀사냥이 아니라 불법행위를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는 법체제를 만들어야 21세기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국가로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돌볼 수 있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