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리 고성혁 미래한국 기자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속도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가운데(5.12. 기준 7.24% 세계 103위) 국민의힘은 최근 백신협력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 ‘백신스와프’와 ‘백신허브’ 협력 구상을 논의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논의됐고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 지난 5월 13~21일 백신협력 방미대표단(단장 박진 의원)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최형두 의원을 <미래한국>이 만나 한미 양국의 백신협력 관련 내용과 함께 워싱턴 한미정상회담과 국민의힘 전당대회 등 정치권 현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 이번에 국민의힘 백신협력 방미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에 다녀오셨습니다. 어떤 취지였습니까?
우리 당에서 미국과 ‘백신스와프’를 진행할 것을 정부에 처음 제안했습니다. 2008년 IMF 당시 국제결제통화인 달러 부족으로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해서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었으니 그 개념으로 백신스와프를 하자는 거였죠.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어려운 나라들이 많아 미국 정부가 우리에게 백신을 줄 수 없다고 했다는데 우리는 원조를 받으러 간 것이 아닙니다. 올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에 분기별로 백신이 1억 병씩 들어오기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상반기에 백신이 극도로 부족합니다. 정부 목표대로라고 해도 상반기 1300만 명이 1차 접종이 되는데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접종률이 70~75%가 되어야 합니다.
상반기 접종률을 높여야 경기회복도 빨라질 수 있고 경제적 손실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12월 들어오는 물량은 미국에 맡기고 미국에 여유분이 생긴 백신을 먼저 당겨 쓰자는 취지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8000만 명분을 외국에 원조한다는 것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백신스와프는 원조가 아니다”
- 개념이 언뜻 이해가 안 되는데요, 스와프(swap) 교환을 하려면 우리가 상대에게 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래의 선물(先物)을 주는 대신 현재의 현물을 받는다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이 제안을 처음 했을 때 여당쪽에서는 시큰둥했습니다.
국가 대 국가 거래인데 무슨 백화점 물건 사는 것처럼 말하느냐 하면서 무시했죠. 당시 정부 여당에서는 백신이 부작용도 많다고 하니 천천히 해도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완전히 잘못 판단한 거죠. 하지만 최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정부가 백신스와프를 검토했고 이를 미국측과도 협의했다고 인정했고 미국내 안보전문가들이 백악관에 한미 백신스와프 검토를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백신스와프는 우리가 주문한 물량이 하반기에 도착하니까 하반기에 도착할 물량을 미국에 맡기고 상반기에 먼저 받아 당겨 쓰자는 겁니다. 우리가 동맹국이기도 하니까요.
과거 통화스와프 때도 한국 경제가 흔들리면 미국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한 미국 정부가 우리 요청을 받아준 것이거든요. 백신이 입도선매처럼 거래돼 백신스와프가 가능한 것입니다.
백신은 유통기간과 조건이 있습니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저장조건이 마이너스 70도 이하여야 하고 얀센은 마이너스 20도 이하입니다. 마이너스 70도 이하로 보관할 장소는 많지 않지만 마이너스 20도는 어디든지 가능해서 집의 냉동고에 보관해도 되거든요.
화이자 백신은 저장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한데 지금 미국에는 필요 물량을 다 채우고도 남습니다. 생산을 계속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1000만 개가 잉여 물량인데 그것이 3월에 생산된 물량이라면 9월이 되면 사용 못 하게 됩니다.
그 물량을 우리가 받자는 것입니다. 하반기에 생산되는 물량은 대신 미국이 가져가면 되니까요. 서로 이익이죠.
- 한미 백신스와프 협력 구상에 대한 미국측 반응은 어땠습니까?
‘한국이 K-방역이 잘되었다면서 뭐 그리 급하냐’ 하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것은 좋게 말해서 하는 말이었고 실제는 ‘한국 같은 부자나라가 백신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에는 한국보다 훨씬 어려운 나라들이 많고 인도 남미 등은 백신 살 돈도 없는데 그런 나라부터 도와줘야지 잘사는 한국부터 도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인도의 경우가 가장 매우 급한데 미국이 6000만 명분을 인도에 줄 모양입니다. 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될 텐데 미국에서는 승인이 안 난 백신이지만 상온 보관이 용이하기에 인도에 적합한 백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이자는 보관 조건이 영하 70도 이하이니 잉여 물량 1000만 명 분을 인도나 남미 등에서 소화하기 힘들지만 한국은 제반 여건이 갖춰졌기에 가능하다. 하루에 150만 명 접종과 보관이 가능하니 mRNA 백신처럼 보관이 까다로운 백신 중에 유효기간이 임박한 잉여 물품의 경우 우리 한국 같은 국가에서 소진하는 것이 서로 윈윈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겁니다.
2차 접종을 끝냈다 하더라도 백신은 계속 필요합니다. 변종이 나올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나중에 나올 한국 물량과 이미 잉여 물량이 되는 미국 물량이 스와프가 가능한 것이죠.
- ‘백신허브’라는 개념으로도 미국측을 설득한 것으로 압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제론 김 국제백신센터 사무총장, 톰 프리든 전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국장 등 글로벌 백신전문가들과 출국 전부터 화상회의를 통해 많은 논의를 하면서 백신허브의 개념을 설명했습니다.
한동안은 미국도 백신이 부족하다면서 수출 금지를 해서 국수주의로 간다는 비난을 받았죠. 하지만 미국도 자국내 접종이 완료되면 전 세계적으로 접종을 확대하고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 접종을 하지 않으면 미국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신을 생산해 작은 병에 담는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려 병목현상이 생깁니다. 여기에서 한국이 백신 생산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mRNA 백신 생산의 공동허브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주요 제약회사들이 mRNA 백신 허브를 위한 시설, 인적 자원, 뉴클레오타이드 생산, 품질 보증 등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 받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한국을 백신허브로 만들 경우 2022년 50억 도즈 이상 백신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미 미국과 함께 허브 기능을 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독일은 미국과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했습니다. 인도도 쿼드 국가로서 상당수 백신을 생산하고 있죠.
“백신허브 되면 내년까지 50억 도즈 백신 생산 가능”
- 백신스와프, 백신허브 협력 구상에 대해 실제로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백신만 놓고 본다면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백신 계약은 국가 간 거래이자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신허브가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가 논의된 것은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으로 백신은 국내외 정세과 국민들의 삶에 상수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백신을 계속 맞아야 하니까요.
이 기회에 우리가 백신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삼성바이오라든가 SK신약 같은 경우 잠재능력이 매우 큽니다. 우리가 초기 백신 개발에서는 늦었지만 백신 양산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원천기술과 우리의 생산능력을 합치자고 제안한 겁니다.
정부 관계자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정상회담이라고 해도 1시간 회담할 때 통역시간 빼고 나면 잘해야 실질 회담은 20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시간에 백신 관련 이러한 내용을 다 설명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들은 미국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에게 한미 백신스와프와 백신허브의 백신동맹을 통해 협력이 어떻게 가능한지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미 FTA 협정 조약 제5장 의약품과 보건에 대한 협력 조항이 있습니다. 이번에 함께 간 박진 의원이 외통위원장 때 그 조약을 통과시켰죠.
- 국민의힘 방미단의 활동 직후 문재인-바이든 대통령간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이뤄졌는데 어떻게 보면 양국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협력을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더 빨리 가서 초당파적으로 했으면 좋았겠죠.
우리는 민주당이 동참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집권 여당은 야당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면서 거부한 겁니다. 정부는 백신이 잘 들어오고 있다고 말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구매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정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함께 노력해서 백신스와프를 제안했는데 정부는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뿌리친 것입니다. 청와대는 더 나아가 예의도 없다고 우리를 힐난했었죠.
- 야당으로서 백신외교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황교안 전 대표가 한발 앞서 미국을 방문해 활동하는 모습이 어색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야당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나 협력도 받을 수 없었고 저와 박진 의원은 자비로 미국에 갔습니다. 박 의원이 외통위원장 출신이고 영어에 능통하고 저도 워싱턴 특파원 출신이라 별도의 의전이나 통역 없이 우리가 대부분 미팅 일정을 정했습니다.
황교안 전 대표는 그래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했던 국가 지도자급이니까 미국에서는 여야를 떠나 어느 정도 예우를 합니다. 황 대표는 북한인권 문제 때문에 출장을 갔고 주로 그런 부분과 관련해 논의한 것으로 압니다.
주제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끝부분에 백신 문제를 언급하면서 조금 혼란이 있었죠.
“외교정책에서 여야 공조 필요”
- 여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면서 이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거리에 일제히 내걸었던데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가 기존의 정부 여당의 외교정책 방향과는 많이 달라 아이러니했습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정상회담은 바이든 행정부가 능숙한 외교력으로 한미동맹을 복원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죠. 우리 쪽에서 요구하는 것도 많이 들어줬습니다. 예를 들면 판문점회담이나 싱가포르회담 같은 것인데 미국이 합의의 정신이나 기초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원칙론이죠. 그 대신 미국은 자신의 의지를 공동성명문에 많이 반영시켰습니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양국 협력, 그리고 중국이 거북해하는 대만해협 문제와 안전 부분을 넣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했는지 우리 외교팀의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동안 너무 친중적이었던 것을 불식시켰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나 백신 부분에서는 성과가 없었다고 봐야죠. 그래도 종합적으로 국민들은 이번 회담을 한 60% 정도는 성공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미동맹을 복원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죠. 국가적 차원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정쟁보다는 최대한 협력을 하고자 합니다.
- 아무래도 최근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입니다. 유례 없는 열기로 전 국민적 관심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죠. 보수 야당의 전당대회가 이렇게 국민의 관심을 끈 적이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40대 기수론 이후로는 아마 처음일 겁니다. 이는 아무래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 때문이죠.
중진들만의 경쟁이었다면 집안 내 조그만 잔치로 끝났을 겁니다. 지금은 이준석 한사람으로 좁혀졌지만 특정 후보를 떠나 국민들이 새로운 돌풍,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신인들의 정치 변화에 호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김웅 김은혜 초선 의원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도전한 셈입니다. 국민들은 집권 여당 민주당의 내로남불도 싫어하고 야당의 반대만 하는듯한 목소리도 싫어합니다.
진일보하고 기존 정치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는 무엇인가를 기대하는데 이번에 국민의힘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국민들의 관심이 다 모인 것 같습니다.
“YS-DJ ‘40대 기수론’ 이후 역대 최고 흥행 전당대회”
- 기존 당조직의 경우 젊은 당대표가 되면 자신들의 역할이 축소될 것을 우려한 저항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막상 젊은 사람이 대표가 된다 하더라도 대선에서 이기려면 굉장히 많은 직능조직, 세대별, 지역별로 아주 치밀한 종횡의 전략과 인맥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변화의 바람을 수용해 대선에서 이기는 당의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직적 노력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변화의 바람은 소멸될 수도 있기에 중진들의 역할이 앞으로도 중요할 겁니다.
변화에 대한 일부의 저항은 아직 과거의 문법에 젖어 있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 의원님은 지역구가 경남 마산인데 영남의 분위기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탄핵을 주도했던 유승민 김무성 전 의원에 대한 부정적 정서라든지.
4·15 총선이 끝난 다음 한겨레신문 보도를 보면 헤드 타이틀이 지역주의가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부산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40%가 넘었습니다. 물론 바람 탓도 있었겠지만 지금 보면 그것이 어느 정도는 고착화 된 것 같습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경남도 37%가 민주당 지지였습니다. 어느 지역처럼 특정 정당에 90% 이상 지지가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이제는 당심과 민심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이제 영남의 당심이라는 것도 전국적 민심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보구요. 저는 우리 당원들만큼 나라 걱정이 많고 애국충정이 넘치는 분들이 없고, 게다가 정치의식도 매우 높아 당심과 민심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인사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중진일수록 정치적 흔적이 뚜렷합니다. 그것이 자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부채이기도 합니다. 부채가 자산보다 높아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국민의힘 당내 초선의원들이 과반수인데 그간 역할과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초선들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에 도전하면서 거대한 바람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봅니다. 당대표 선거에 3명이 나갔고 최고위원에는 초선이 5명이나 도전했습니다.
초선들이 모여서 결의하는 내용뿐 아니라 약자와의 동행 등 정책실천 모임에서는 다양한 현장 행보를 합니다.
운동권 경력과 시대의 변화
- 의원님은 과거 언론인으로 오래 활동하셨고 그 전에는 좌파 운동권 활동에 깊숙이 관여했던 것으로 압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 된 지 만 1년이 됐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국민의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량을 모은 통합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화의 경험, 정보화의 경험도 있고 민주화의 경험도 있습니다.
우리 당내 많은 의원님들 특히 16대 총선 신한국당 시절 굉장히 많은 민주화운동의 적통들이 들어왔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본인이 민주화의 큰 기둥이었죠. 원희룡 지사라든가 과거 운동권 이력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시대의 변화를 남보다 빨리 몸으로 익힌 분들입니다.
오히려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70년대 프레임으로 아직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독선적인 구도로 적대적 문법으로 해석하죠. 대표적으로 ‘토착왜구’같은 표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도쿄에 집 사놓은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 민주당의 큰 시대적 착오는 한미 FTA를 반대한 겁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고 우리 당이 뒷받침했던 한미 FTA로 인해 결국 동등한 한미관계에서 우리에게 큰 경제력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 것 아닙니까?
이런 변화를 볼 수 있는 당이 우리 당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변화를 보지 못하고 무시하는 당이 현재의 민주당입니다. 민주당은 강경한 목소리에 잡혀 소신 있는 목소리가 힘이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당선된 송영길 당대표는 나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뜻을 받아 한미 FTA에 찬성했는데 당시 송 대표는 ‘송완용’이라고 지탄을 받기도 했었죠.
- 의원님 개인적으로 소위 전향이랄까, 일련의 사상적 변화의 과정이 있었나요?
저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정치권에 바로 들어온 케이스가 아니고 신문사에서도 오래 일해보고 현장 목소리를 가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변화를 몸으로 경험해 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 시절의 특정 이념에 갇혀 있지 않는거죠. 제가 운동권 시절 주장한 것은 ‘대통령을 왜 우리 손으로 직접 못 뽑느냐, 왜 국회의원 선거에서 피선거권을 제한하느냐, 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느냐’를 두고 싸우다가 감옥에 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 아닙니까? 당시 미국 인권단체에서도 우리를 지지했었죠. 작년말 필리버스터에서도 이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대북전단법 이슈를 보면, 과거 김대중 김근태 선배가 권력에 의해 고초를 당하고 있을 때 이 분들을 구해줬던 미국의 인권단체가 왜 대북전단법을 반대하는지 민주당 여러분들이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향각서를 쓴다든가 한 적이 없습니다. 후회도 없지요. 저의 바람대로 우리나라도 민주화가 이뤄졌고 노동 현장도 마찬가지죠. 저는 처음에는 무역상사에 가서 달러를 벌 생각도 했었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박종철 고문사건 특종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저도 당시 대공분실에서 가혹한 처사를 당했거든요. 만약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위태로울 수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자유, 이를 지키기 위한 동아일보의 투쟁, 그리고 당시 중앙일보가 특종을 했어요. 그래서 두 언론에 있는 선배들한테 나중에 고맙다고 했습니다.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껴 언론사에서 20년 동안 일을 했지요. 언론에서 세상의 변화를 이념이 아니라 사실과 통계, 객관적인 흐름들을 쫓아가는데 그것이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한 것 같습니다.
-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형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미 민주화된 세상 아닙니까? 지금의 이념 관련 단층선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한미 FTA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두 번째는 북한의 대남정책과 조선민주주의공화국과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존립하고 나라가 발전하기 위한 조건으로 볼 때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도 위대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미 FTA를 추진했다는 측면에서입니다.
당시 어느 경제학자가 그랬어요. 한미 FTA 하면 멕시코처럼 미국의 경제 식민지 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멕시코가 미국 식민지입니까? 터무니없는 생각이잖아요.
폐쇄적이고, 독단적이고, 지나치게 피해망상적이고, 그런데 그것을 깨친 글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FTA 담화문입니다. 명문입니다.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봐야 합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로부터 외롭게 됐지만 그러나 지금은 영원히 다시 살아나는 길로 초당파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미동맹이 복원돼 정말 다행입니다. 한때 너무 위태로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과 너무 거리를 둬서도 안 됩니다. 중국의 자기장이 너무 세기 때문입니다. 숙명적인 선린관계를 이어가야 합니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 한미동맹은 우리 이념의 단층선을 만드는 것으로 저는 직접 체험하고 책도 쓰고 했죠. 저도 해방 전후사의 인식 세대인데 미국 특파원하고 미국 유학하면서 미국의 비밀문서, 미국의 기록들, 특히 한미 FTA를 거치면서 미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략적으로 붙들어야 할 동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념의 단층선-한미 FTA와 북한에 대한 입장
- 송영길 민주당 대표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얘기하셨는데 민주당의 변화 가능성을 높이 보십니까?
민주당은 우리보다 훨씬 강한 핵심당원들이 주축으로 있습니다. 이것은 큰 장점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큰 단점이자 질곡일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당심과 민심에서 큰 단층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조국의 시간’이 민주당을 다시 당혹스럽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상당히 고통스럽겠다고 생각하는데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민주당도 빨리 질곡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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