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한국 백신여권, EU와 중국 사이 눈치보기
[이슈] 한국 백신여권, EU와 중국 사이 눈치보기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21.04.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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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접종이 늘면서 전 세계는 ‘백신여권’ 도입을 준비 중이다. 한국 또한 지난 3월 3일 백신여권 도입계획을 밝혔다. 지난 19일에는 관련 실무회의도 가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느 쪽이랑 백신여권 상호인증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7일(현지시간) ‘EU 코로나 카드·디지털 인증서’ 도입을 위한 입법 절차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코로나 백신 접종자 수가 증가하고 있고, 역내 여행 및 외국인 고용 허용을 통해 회원국의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백신여권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내총생산에서 여행산업의 비중이 큰 그리스가 백신여권 도입에 앞장섰다.


백신여권에는 접종한 백신 종류, 접종 후 PCR 검사 결과, 감염 여부, 완치 또는 항체 보유 여부 등의 내용을 담게 된다. 이 가운데 백신은 유럽의약품청(EMA)이 승인한 백신만 된다. 디디에 레인더스 EU 법무담당 집행위원은 “회원국이 여러 종류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허용하고 있지만 백신여권을 받으려면 반드시 EMA사 승인한 백신을 접종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MA가 승인한 코로나 백신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존슨앤존슨(얀센)뿐이다.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는 현재 승인 심사를 받고 있다. 중국산 백신은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는 “EMA가 중국산 백신을 승인해주지 않은 것은 지정학적 차별”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중국산 백신의 유효성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국영기업들이 만든 코로나 백신을 자국 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했다. 이유는 중국인들이 중국산 백신을 맞지 않으려 한 때문이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페루, 브라질 등에서 실시한 임상시험은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국가에서는 폭로도 벌어졌다. 


페루 안디나통신은 지난 6일(현지시간) 분자생물학자 에르네스토 부스타만테 박사와 페루 보건부 간 공방을 전했다. 이날 페루 보건부(MINSA)는 부스타만테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성명을 내고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실시한 중국산 코로나 백신 임상 3상 시험에서 나타난 효율이 79.34%에 이른다”며 “중국산 백신 효율이 턱없이 낮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은 백신여권 도입을 검토 중이다. EMA가 승인한 백신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존슨앤존슨(얀센) 뿐이다.
유럽연합은 백신여권 도입을 검토 중이다. EMA가 승인한 백신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존슨앤존슨(얀센) 뿐이다.

EU “백신여권 도입법안 제출…인증 못 받은 중국산 백신은 제외”

그러나 “페루 보건부가 제시한 자료는 중국 베이징 생물학연구소에서 내놓은 시노팜 백신 임상시험 결과”라며 “페루에서의 임상시험 결과는 내놓지 않았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통신은 “에르네스토 부스타만테 박사가 전날 지역 TV 방송국에 출연해 ‘중국산 백신의 효율성이 최대 33%, 최소 11.5%에 불과하다’고 말하자 보건부가 반박 성명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분자생물학자인 부스타만테 박사에 따르면 중국산 백신은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에는 33%, 베이징 변종 바이러스에는 11.5%의 효율성을 보였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백신 최소기준(효율성 5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부스타만테 박사는 “문제는 중국산 백신을 이미 의료진에게 접종했다는 점”이라며 “상황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중국산 백신은 사실 지난 2월 페루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당시 페루 정부는 이전 정권 고위층이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뒤 임상시험을 빙자해 ‘백신 접종 새치기’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과 이전 정권 장관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부정부패로 탄핵을 당한 비스카라 정권이 도입한 백신인 탓에 국민들도 효능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중국산 백신 효율성이 50%도 안 된다는 지적은 브라질에서도 나왔다. 브라질 한 연구기관의 발표가 나온 뒤 중국 당국은 “거짓말”이라고 비난했지만 중국산 백신을 유·무상으로 받은 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이 “국민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라며 접종을 연기했다. 베트남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러시아 백신을 대량 구매했고 미국 모더나 백신 수입도 검토 중이다. 중국산 백신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자국산 백신의 유효성이 90% 이상이라고 주장하며 백신여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상호인증을 통해 이를 이용하려는 중이다. 


중국은 지난 8일 ‘국제여행건강증명서’라는 백신여권을 내놨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8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기자회견에서 “중국판 국제여행용 건강증명 전자서류를 내놓을 예정”이라며 “다른 나라와 코로나 백신접종을 서로 인증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의사가 있다. 코로나 PCR 검사와 백신접종 정보의 상호 인증을 실현하면 안전한 인적 왕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공산당 고위층 인사도 이날 백신여권에 대해 발언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이하 정협) 위원인 주정푸 변호사협회 부회장은 “중국 정부는 인민들에게 (코로나) 백신 접종을 장려하고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여행증명을 발급할 수 있다”면서 “(백신여권을) 우선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해 이곳에서 본토로 입국할 때 14일 간의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타임스는 “백신접종 정보와 출입국가 건강정보를 다른 나라와 서로 인증하는 것은 중국이 세계와 교류를 재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YTN 사이언스는 “중국이 조만간 ‘백신여권’과 관련해 우리나라와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9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은 “왕이 부장이 중국의 백신여권 도입 의사를 직접 밝힌 만큼 우리나라와도 관련 소통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중국과 한국 사이의 백신여권을 올 상반기 내로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홍콩, 마카오에 이어 한국과 백신여권 상호인증을 협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한국 정부를 향해 대놓고 “중국산 백신의 효용성이 높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앞서 EU 의회처럼 백신여권이 통용되려면 먼저 다른 나라와 상호인증이 필요하다. EU는 EMA의 인증을 받은 백신 접종만을 인정할 예정이다. 반면 중국은 중국산 백신만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15일 자국산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은 외국인에게만 비자 발급을 간소화해준다고 밝혔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국경 간 인적교류를 회복하기 위해 15일부터 주한 중국공관은 중국산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고 접종증명서를 소지한 입국비자 신청자에게는 편의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비자신청대행업체 등에 공지했다.


해당 공지에 따르면 중국에 상업무역·교류방문·개인사무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사람이 중국산 백신 접종증명서를 갖고 있으면 ‘초청장’ 제출 의무를 면제한다. 지금까지는 중국에 입국하려면 현지 당국에서 발급한 초청장이 필수였다. 보통 발급대행업체를 통해 초청장을 발급받으려면 수십만 원이 필요했다. 중국은 이를 백신 접종증명서로 대체한 것이다. 중국은 전 세계 공관을 통해 이 같은 조치를 공지했다. 일본·파키스탄·태국 등에도 같은 공지가 전해졌다. 다만 중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PCR 검사 증명서를 제출하고 중국 도착 후 자가격리 지침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중국은 자국산 백신을 미는 분위기다. 한국이 이런 중국과 백신여권 상호인증을 한다는 것은 “중국산 백신이 코로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된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백신여권 상호인증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중국은 이를 성공사례로 삼아 다른 나라에도 상호인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해외 각국과 협의해 백신여권 상호인증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경우 EU를 비롯해 미국, 호주 등은 한국과 백신여권 상호인증을 거부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서방 국가 가운데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 국가들 또한 접종을 미루고 있다. 불투명한 효능 문제 때문에 승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중국산 백신을 인정한 한국과 서방국가들이 백신여권을 상호인증할지는 의문이다.

중국도 백신여권을 내놨지만 중국산 백신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다.
중국도 백신여권을 내놨지만 중국산 백신 효능은 검증되지 않았다.

중국, 국제기구 통해 자국산 백신 확산하려 혈안

중국은 현재 자국산 백신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 혈안이다. 지난 8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백신여권에 대해 설명하면서 “중국산 백신은 이미 69개 개발도상국에 제공됐고 43개국에 수출까지 됐다”며 “중국산 백신의 효능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백신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도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주장이 나온 지 사흘 뒤인 11일 온라인으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뜬금없는 제안을 내놨다. “중국산 백신을 올림픽 선수와 관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중국 올림픽위원회가 올해 도쿄올림픽과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관계자에게 중국산 코로나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며 “모든 비용은 IOC가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는 중국 측 제안에 감사한다”고 바흐 위원장은 덧붙였다.


당황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 사회는 “중국산 백신을 도입한다는 게 사실이냐”며 스가 정부를 비난했다. 이에 가토 가쓰노부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12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IOC와 사전 논의는 없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되지 않았다”며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가토 장관은 “일본 정부는 백신 접종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올림픽을 치르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루카와 다마요 올림픽 담당 장관은 “바흐 회장의 말은 아마도 중국산 백신을 승인한 나라에서의 접종을 말하는 것 같다”며 “원칙적으로 일본 선수들은 (중국산 백신의) 접종 대상이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영국과 이스라엘은 이미 사실상의 백신여권을 사용 중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앱 형태의 백신여권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에서는 ‘백신접종 확인증’을 가진 사람에게 폭넓은 활동을 허용한다. 이 조치가 성과를 거두자 영국 정부는 국민보건서비스(NHS·건강보험공단에 해당) 앱에 코로나 백신 접종 및 검사 이력을 넣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더타임스 등이 2월 24일 보도했다. 백신을 접종 받았거나 코로나 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는 술집·식당·극장 등 다중집합시설 출입도 허용할 예정이다. 


인구 대비 백신 접종률이 60%를 넘긴 이스라엘은 ‘그린패스’라는 백신여권을 사용 중이다. 오는 4월 말까지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목표를 세운 이스라엘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과 감염 후 완치자, PCR 검사 음성 확인자에게 그린패스를 발급했다. 그린패스 소지자는 호텔·쇼핑몰 등 다중집합시설은 물론 헬스클럽·수영장 등 문화·체육시설도 이용 가능하다. 항공기 탑승도 자유롭다. 


영국과 이스라엘의 사례를 눈여겨본 다른 나라들도 백신여권 도입을 서두르는 중이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1월 이미 백신여권을 도입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백신여권 도입을 결정했다. 스위스·그리스·스페인처럼 관광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EU 차원의 백신여권 도입에 선봉을 맡았다. 
IATA는 개발이 거의 마무리된 백신여권 앱이 곧 세계항공여행 산업을 되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싱가포르항공이 지난해 12월부터 시범적으로 이 앱을 사용 중이며 에미리트항공·카타르항공·에어뉴질랜드 등 세계 20여 항공사가 백신여권 앱 시범운영에 동참했다고 IATA는 밝혔다. 

백신여권 성공사례 영국·이스라엘, 화이자-모더나 백신 사용

IATA 측은 “백신여권 앱을 사용하면 세계 각국에 흩어진 데이터를 별도의 표준화작업 없이도 취합, 정리할 수 있어 입·출국 절차를 간편하게 진행 가능한 것은 물론 여행객의 신체 상태와 관련한 정보의 정확도와 입·출국업무 효율을 모두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여행을 꺼리는) 가장 큰 문제는 감염 우려”라고 지적한 IATA는 “여행객 스스로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신체 정보를 갖고 있다면 (해외에 가도 자가격리할 필요가 없으므로) 여행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과 이스라엘, IATA가 말하는 백신여권의 전제조건은 미국 또는 EU로부터 인증을 받은 백신 접종이다. 두 나라 모두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주로 접종했다. 한국이 세계 대부분의 국가로부터 백신여권 승인을 얻으려면 이들처럼 미국 또는 EU 인증을 받은 백신 사용국과만 상호인증을 해야 한다. 


반공 중화권 매체 에포크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지금까지 수출 또는 기부를 통해 전 세계에 중국산 백신 4억6300만 개를 공급했다. 파키스탄·캄보디아·페루·브라질·UAE·바레인·세르비아·짐바브웨·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중국산 백신을 공급받았다. 


한국이 중국과 백신여권을 상호인증 하느냐 여부는 앞으로 한국인이 오갈 수 있는 나라가 어디가 될지를 고르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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