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여당 발의의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김승원 의원 등)’의 핵심 내용은 신문 종사자의 편집권을 규정하고 사용자와 종사자로 구성되는 편집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편집위원회 설치에 관한 오래된 주장이 정권말에 다시 등장한 것은 작년 총선으로 여당이 다수가 되어 여당 단독으로 어떤 법도 입법할 수 있게 된 현실과 무관치 않다. 개정안은 편집위원회를 설치하면 우선적으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는데, 여당이 추가로 발의한 같은 법 개정안(이수진 의원 등)은 편집위원회를 두지 않으면 진흥기금 지원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를 정부지원과 연결시키고 있다.
편집의 권한은 신문 등 매체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매체의 논조와 방향을 결정한다. 연혁적으로 매체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내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편집의 권리는 매체의 사주 즉 발행인에게 있다. 신문 종사자와 사용자가 참여하는 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종사자에게 편집에 참여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 개정안의 편집위원회 설치의 이유다. 이는 매체 종사자에게 원천적으로 편집권이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개정안은 매체 종사자의 편집권을 전제로 편집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함으로써 신문매체의 편집권을 발행인에게서 빼앗아 편집위원회로 이관하고 있다. 개정안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적극적인 요구에 의해 여당이 발의한 것인데, 신문협회 등 신문사업자는 개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근대 지식 혁명의 원천이 되는 인쇄출판물은 근대적 개인의 출발과 함께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의 실현 수단으로 출현했다. 매체의 내용을 결정하는 편집의 권리가 매체를 발행하는 발행인에게 있음은 이러한 기원에 유래한다. 신문 등 출판물의 내용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사적인 영역으로 보장되는 것이고 이러한 실천이 정치적 자유의 기반이 되었다. 매체의 내용을 결정하는 편집권은 언론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되었는데 헌법상 언론의 자유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언론기관의 자유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론 현실에서 언론기관 내부의 종사자에게 편집권을 부여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며 더구나 편집권의 부여와 귀속을 법으로 규정해 강제하는 경우는 더 찾기 어렵다.
편집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법으로 규정할 것은 아니다. 편집권의 주체를 법으로 못박는 것은 사적인 영역에 대한 침범이다. 편집위원회의 설치와 구성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사적 자치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데 이를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지극히 의문이다. 개정안에서 언론진흥기금의 관리와 운용의 주체를 언론진흥재단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이관하고 편집위원회 설치를 하는 경우에 우선적으로 지원하거나 또는 지원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에서 개정안의 의도가 드러난다. 편집위원회 설치를 한 경우에만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편집위원회 설치를 통해 정부가 언론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있다. 2018년 제정된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부 및 공공기관의 광고에 대한 총괄적인 권한을 갖게 된 것과 함께 정부가 지원을 미끼로 언론에 대한 고삐를 잡게 될 것이다. 신문법이 진흥체제로 편입된 이래 언론 자유를 대표하는 신문의 영역이 실질적으로 정부 지원의 영역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미끼로 한 언론 통제법
이러한 전환은 정부 여당의 신문에 대한 관점이 배경에 있다. 개정안이 신문의 공정성과 공익성에 대한 규정을 신설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개정안의 이유에서 신문의 공적인 기능의 확대라는 표현과 심지어 신문이 공공재라는 표현에 이르러서는 신문매체를 공공의 재산으로 보는 관점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규제법인 방송법에서 규제 근거로서 공정성의 근거가 전파의 공공재 이론이다. 개정안은 공공재 주장으로 신문을 규제 영역에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며 정치적 자유의 중요한 수단으로서 언론 출판의 자유는 공공성을 구성하기 위한 상위의 개념이지 공공성 아래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불공정한 보도를 시정하는 수단으로서 편집권의 배분과 편집위원회 설치라는 편집 시스템의 구조변경을 한다고 해서 공정성과 공익성이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과 공익성을 제시하는 주장은 정부 개입을 의도하고 있다.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공정성 개념의 불명확성과 객관적 기준 설정의 어려움으로 언론에서 공정성 논의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그치기 쉽다. 공정성(fairness)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으로 우선적으로 채택되기 어려운 것은 공정성의 추상성인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를 검증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 공정성을 앞장세우면 언론의 위축 효과를 가져오고 정부 개입의 근거가 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방송에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공정성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지한 것도 그런 이유다. 언론의 영역에 있어 공정성 원칙은 제1원칙으로 고려되기는 부적절하고 더구나 그것이 법제화되는 것은 자유의 영역인 언론의 영역에 대한 간섭이 되고, 공정이라는 명목하에 규제의 덫이 설치될 수 있다. 특히나 정파적으로 현저히 분열된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 주장은 상대를 공격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정파적 수단으로 악용이 되고 있다. 공정성원칙이 법제화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을 초래한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언론의 영역에서 규제 근거가 될 우려가 있는 공정성 개념이 들어오는 것은 부적절하다.
미디어 관련 많은 여당의 입법안에서 매체의 구조에 있어서의 권한의 배분과 참여라는 구조적 설계의 방식으로 공정성이 달성될 수 있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방송법 개정안에서 공영방송사의 이사 선임에 있어 여야 추천 또는 추천 주체의 다양화로 인한 추천권의 배분의 논의처럼 신문에 있어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구성원의 참여라는 권한의 배분을 논하는 것 등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정파적으로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고 권력의 향배에 따라 상대방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공정성을 앞장세우는 논의는 또 하나의 정파적 분열 도구로 공정성 시비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정파적으로 극단적 대립 상황은 시민단체나 노조 같은 비정부조직에도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극심한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정파적 입장을 유독 고수하면서 전체 시민이나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공정성 달성이라는 이상에 치우친 시도가 법으로 강제될 때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자유의 영역에 정부 개입을 초래하는 결과가 된다.
여당 발의의 신문법 개정안의 목적은 분명하다.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언론노조가 언론 종사자의 구체적인 의사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산별노조 민노총의 정치적 지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개정법안의 입법을 적극 요구하는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는 정부 여당과 동일한 정치적 입장을 공공연히 취하고 있다. 개정안은 언론노조가 종사자의 대표라는 명목으로 편집위원회를 통해서 신문을 장악하여 신문 내용을 좌지우지되는 결과에 이를 것이 확연하다. 이런 현실은 이미 방송계에서 확인되었다.
2016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의 방송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방송 종사자의 방송편성권과 노사 동수의 방송편성위원회의 설치였다. 2017년초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는 이 법안의 통과를 강력히 요구했는데 그후 정권이 바뀌어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되고 이어 공영방송의 사장이 축출되고 여당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세운 이후에는 이 논의가 사라졌다. 방송법은 개정되지 않았지만 2018년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방송 재허가시에 방통위는 방송편성워원회 설치를 재허가 조건으로 부과함으로써 편성위원회 설치는 실현되었다. 위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된 직후인 올해 여당 발의의 방송사에 편성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송법개정안(정필모의원등)이 발의되었다.
문재인 정권에 의한 공영방송 장악은 공영방송의 정권 방송화로 이어졌고 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됨으로써 방송의 공정성이 파괴되었다. 콘텐츠 내용을 결정하는 권한이 편집위원회 설치를 통해 실질적으로 언론노조에 넘어갈 때 정파적으로 편향된 언론노조의 시각으로 정권에 유리한 내용의 보도가 예상되며 더 이상 공정한 신문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방송에 이어 신문까지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고 견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신문법 개정안이 마치 신문사 내부의 편집 절차와 편집 방법에 관한 편집체제의 구조에 대한 논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권력에 대한 견제의 역할을 무력화하게 해서 신문의 비판 기능을 말살하게 될 우려가 있다.
언론노조가 편집위원회를 통해 신문 장악할 우려
방송법이 규제를 중심으로 한 법체계임에 반해 신문과 출판은 자유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미디어의 중심이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전환됨에 따라 신문에서 방송의 시대로 바뀌어 갔고 그후 인터넷의 등장은 방송 외의 영상콘텐츠의 시대로 바뀌어 갔다. 신문의 경쟁력 상실은 신문법이 진흥법 체계로 편입되는 이유가 되었지만 신문과 출판은 자유의 영역으로 언론 자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위가 지켜져야 한다. 정부 지원을 미끼로 하여 신문이 규제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은 곤란하다. 대표적인 규제법인 방송법에서의 공정성 논의가 전체 미디어로 확산되어 공정성 논의를 근거로 언론의 자유 영역이 규제 영역으로 전환되는 변화의 상황을 보고 있다. 자유 영역은 자유 영역으로서 보호되고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정권말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신문 편집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꾼다는 중요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금까지의 21대 국회 입법과정에서 여당의 태도를 볼 때 여당 독주의 밀어붙이기식 입법의 우려가 있다,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도 불구하고 내년 3월 선거 이전에 어쩌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언론 분야에서 먼저 도래할 것이다, 공영방송에 이어 신문도 정권에 의해 장악될 우려가 있다. 구조적 개편 논의로 보이는 개정안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 및 언론 자유의 침해와 법제화를 통한 언론 자유 침해 상황의 고착화라는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규제의 논리가 신문에까지 미치고 정부 지원이라는 수단에 의해 구조화된다면 펜(pen)은 자유의 도구로서 역할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소중하게 지켜져야 할 자유민주사회의 핵심적인 가치로서 자유민주사회를 만들어가는 견제와 균형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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