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와 교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하나는 했던 소리 다시 또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항상 얻어 먹으면서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돌아와 부르는 타령은 언제나 똑같다. 또 항상 얻어먹지만 고맙다고 하기는 커녕 왜 이것 밖에 안주냐면서 더 달라고 조른다. 그동안 보아왔던 KBS수신료 인상 요구를 보고 있으면 KBS도 여기에 포함해야 할 듯 싶다.
지난 20년 동안 새로 집권한 정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수신료 인상을 시도했었다. 수신료라는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매번 돌아온 것이다. 또 경영 압박이 심해지고 수신료를 올려주면 공익성 높은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각설이 타령도 그대로다.
여기에 야당 시절에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여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KBS 타령에 박자를 맞추고 야당은 입장을 돌변해 과거 야당이 주장했던 방만한 경영이나 정치적 독립 같은 문제를 들어 극렬하게 반대한다. 이것 역시 공수(攻守)만 교체되었을 뿐 똑같은 각설이 타령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KBS 수신료 인상 명분을 보면 ‘얻어먹으면서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KBS는 지금도 가구당 월 2500원 씩 매년 6000억 원이 넘는 수신료를 받고 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이다. 여기에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적지 않은 광고수입과 유료방송과 콘텐츠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최근 인터넷이나 모바일 급성장으로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내 방송시장에서 가장 큰 빅플레이어임에 틀립없다. 그렇지만 KBS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공익성 높은 질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같은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KBS는 수신료를 더 내야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떼쓰는 형국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 때도 못했던 공영방송 역할을 돈 더 낸다고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급성장하면서 KBS 시청률과 영향력이 급추락하고 있다. 일부 종편 채널이나 유료방송 채널들보다 낮은 시청률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고, 심지어 1개 인기 유튜버보다도 못하다는 자조적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40대 이하 세대들은 KBS를 거의 시청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아예 TV 자체가 없는 ‘Zero TV 가구’도 급증하고 있다. 뉴스의 영향력도 인터넷 포털과 SNS에 밀려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여기에 현 정권 들어 노골적인 정치적 편파성은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 좁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공영방송 무용론’이 점점 더 커지는 수준을 넘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KBS 수신료 인상은 ‘지금 내는 수신료를 고마워하기는 커녕 더 달라고 떼쓰는 것’ 같은 형국이다. 이처럼 좋지 않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KBS가 수신료 인상을 과감하게 요구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근본 원인은 인터넷·모바일 급성장으로 점점 더해가는 경영 압박 때문일 것이다. 물론 경영 악화가 이 같은 외적 환경들 때문인지 방만한 경영과 비대한 조직 같은 내적 원인들 때문인지는 분명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KBS가 누가 뭐라든 자신 있게 수신료 인상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은 우리 공영방송 시스템과 수신료 제도가 가진 왜곡된 구조 때문일 것이다. 정치 논리 - 아니 집권 여당 - 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현행 공영방송 시스템과 수신료 제도에서 KBS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 이념을 구현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정권에 충성하는 공영방송을 존립·지원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치권력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제도적·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후견적 관계가 견고하게 구축된 상태에서 수신료 인상은 국민들의 인식이나 공영방송의 책무 같은 문제는 부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KBS의 수신료 인상 요구는 지난 3년간 보여준 현 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정권 홍보에 기여한 것에 대한 일종의 청구서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나쁜 수신료 인상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지만 간단히 ‘정치적 압력과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록 형태는 국가가 소유하지만 재원, 운영, 편성 등은 ‘상업적 시장’과 ‘정치적 통제’로부터 독립된 방송이라는 의미다. 물론 공영방송은 각 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BBC는 무엇보다 상업적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0% 수신료로 운영되고 수신료의 가치(Value for Money)에 대응하는 공익적이고 고품질 프로그램 제공을 지향하고 있다. 반면 독일의 공영방송 ZDF.ARD는 나치 같은 전체주의적 방송 통제를 예방하기 위해 정치적 독립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가가 관여할 수 없는 독립적인 수신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20% 내외의 광고수입도 허용하고 있다.
한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미국의 PBS는 1965년 카네기위원회가 결정한 재정적으로 독립된 비상업적 교육방송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회에서 결정된 정부지원금과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지원금은 의회 구성 상황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받는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경제적으로 독립된 재원 구조가 절대 중요하다. 국가 예산은 정치권력의 통제 위험성이 있고 상업광고는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재원 구조가 바로 공영방송 수신료이다. 실제로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 같은 대표적인 공영방송들은 100% 수신료로 운영되고 있고 독일,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의 공영방송도 수신료를 주 재원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영방송 수신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공영성 책무와 공익성 제고 같은 문제와 당연히 연동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KBS 수신료 인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 원인은 우리 공영방송 시스템과 수신료 제도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예속성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우리 공영방송은 ‘정치적 지배구조’가 공영방송의 ‘상업적 이해’과 결탁되어 구조화된 ‘정치·경제학적’ 토대 위에 존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조는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신군부세력이 언론 통제를 위장한 허위의 공영방송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어 정치권 이해관계 때문에 40년 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적폐 중의 적폐’가 공영방송이라 할 수도 있다.
특히 1988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방송법이 부활되었을 때 기존의 명목상의 공영방송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주인만 방송 종사자들로 이른바 노영방송체제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공영방송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기구’와 ‘종사자의 경제적 기득권 보호’가 결합된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몇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공영방송 노조는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보장해주는 정파에 올인하면서 정치적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특히 방송·통신 융합과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로 ‘공영방송 위기’가 심화되면서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는 더 심화된다.
공영방송은 정권에 충성하고 그 대가로 제도적 독점 보장과 재정적 지원을 받는 ‘정치적 도구화 + 공기업의 병폐’라는 불순한 계약결혼 관계가 고착된 것이다. 지금도 비판받고 있는 공영방송 조직 비대화와 방만한 경영도 이러한 불순한 관계가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현 문재인 정권은 조합주의(정권+노동조합)와 후견인제도(clientalism)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역대급 권력밀착형 공영방송체제를 구축했다. 우선 노동조합(언론노조)을 통해 공영방송의 경영권과 편성권을 장악하게 된다.
KBS의 정치적 편향성이 만악의 근원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 사장에 노조 출신을 앉히고 임원과 주요 직책을 노조 출신으로 배치하는 반면 비협력 종사자들은 적폐 청산, ‘진실과 미래위원회’ 같은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배제 혹은 퇴출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송체제를 이용해 친정부 프로그램 편성을 확대하고 친정부 인사들을 대거 방송에 진출하게 하는 등의 편파 방송을 마구 자행해왔다. 그렇지만 이처럼 노동조합을 매개로 조합주의 통제방식은 제3자들이 보면 자율규제처럼 보여 저항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간접통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공영방송의 정권 홍보에 대해 정치권력은 후견인으로서 보상 및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은 제도나 경제지원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지상파방송사들의 숙원이었던 중간광고가 허용됐고, 유튜브 같은 경쟁 매체들도 가짜뉴스 등으로 규제해 적극적인 지상파 방송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KBS 수신료 인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법개정이나 국회 의결 절차가 필요 없는 지원책부터 시행하다가 상대적으로 절차가 복잡한 수신료 인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수신료 인상이 성사되면 위헌 소지가 있는 인터넷·유튜브 규제법안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수신료 인상은 구성면에서 집권 여당에서 절대 유리한 KBS 이사회,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국회라는 3단계를 거친다는 점에서 KBS 입장에서는 정권에 더 충성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의석수 180석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KBS 입장에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KBS가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일 수 있는 배경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KBS 수신료 인상에 성공한다면 공영방송 KBS의 정치적 편향성은 더 심해질 것이고, 향후에도 수신료 인상을 위해 정치권력에 충성해야 한다는 잘못된 전례를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정치예속화를 가속화시키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KBS의 수신료 인상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도리어 네 차례 수신료 인상 시도는 수신료 문제를 갈수록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갈등 구조에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한 유료방송사업자와 신문사들의 이해까지 맞물리면서 풀기 쉽지 않은 난제가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인터넷·모바일 광고시장이 급증하면서 미디어사업자간 갈등 양상은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수신료 인상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근본적으로 공영방송과 수신료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이다.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수신료를 사용하는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까지 비판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 논쟁은 수신료의 법적 근거에서부터 시작해 자칭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공영방송 무용론 혹은 수신료 인상 불가론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광고 수익원인 2TV의 상업성이나 선정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수신료만 인상해주면 공익성을 높이겠다는 주장과 공익적 책무에 우선 충실해야 한다는 이른바 ‘닭과 달걀 논쟁’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는 사람도 크게 줄어들고 상업방송과 별 차이도 없는 공영방송을 국가가 제도로 보장하고 재원을 지원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번 KBS 수신료 인상 논의는 공영방송 무용론과 수신료 폐지론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KBS가 내세우고 있는 수신료 인상 근거에 대한 불신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KBS 구조개선 방안이나 경영 합리화에 대해 불신은 여전히 높다. 다른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실태가 드러나면서 사실상 공기업인 KBS에 대한 구조 개선 목소리도 높다. 특히 견제 받지 않는 언론 권력이라는 점에서 부실·방만 경영이 더 심할 것이라는 의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04년부터 4차례에 걸쳐 실시된 감사원 감사 결과는 KBS의 고임금·비효율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지속 혹은 반복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위직 인력 축소 및 조정은 20년 넘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고 특별성과금, 퇴직격려금 같은 과도한 복리후생제도들은 명칭을 달리해서 끝없이 편법으로 부활되고 있다. 적자가 눈덩이같이 불어나고 있다면서도 절반 가까운 직원들이 연봉 1억 원을 넘고 그들 중 상당수가 무보직자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도리어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우리 회사 들어와 봐’하는 오만방자한 말까지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어쩌면 단순한 방만한 경영이 문제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신뢰할 수도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KBS가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는 주체라는 것은 인상을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수신료 인상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주장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통제를 정당화하려는 편법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공영방송 수신료 접근법
이 같은 수신료 제도의 의미와 우리의 왜곡된 공영방송 구조, 수신료 인상과 관련된 정치적 역학관계 등을 고려해볼 때 KBS 수신료에 대한 몇 가지 소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를 원천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상업적 방송들과 차별화된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원하는(want) 프로그램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need) 프로그램이 공영방송의 책무다. 정치적으로 독립되고 공정한 방송이어야 하고, 상업적 이해득실에서 벗어나 공공의 가치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차별화가 이뤄질 수 없다면 모든 국민들이 별도의 수신료까지 내면서 공영방송을 유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용적으로 상업방송과 차별화될 수 있는 공영방송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수신료 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KBS처럼 정치적으로도 독립되지 못하고 상업방송과도 구별되지 않는 공영방송체제는 수신료 문제가 아니라 존립 근거부터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앞의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 아래 수신료와 관련된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수신료는 법적 근거가 애매한 ‘KBS수신료’로서 진정한 공영방송 수신료라고 보기 어렵다. 당연히 애매한 법적 근거 때문에 수신료의 법적 성격, 징수 주체, 징수 방법, 분배, 수신료 사용, 감독 등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법·제도적 근거도 전무한 상태이다.
애매한 특별부담금 형태가 아니라 조세 혹은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지불하는 계약 형태도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실제로 전체 시청자의 98% 이상이 유료방송을 통해 공영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상파 공영방송 시청 여부를 선택적 추가비용 지불 방식으로 전환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시점이 되었다. 인터넷 등으로 미디어 노출 행태가 변화되는 환경에서 시청자들의 선택의지와 시청의지가 비용을 지불하는 근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공영방송 수신료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고 징수, 분배 그리고 수신료 사용을 상시 감시할 수 있는 전문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독일의 KEF(수신료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해, 지금처럼 KBS가 독단적으로 수신료를 징수해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수신료 지불 주체인 국민들이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신료의 가치(value for money)’를 내걸고 수신료로 운영되는 BBC처럼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자 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신료위원회’ 설치안)을 제안한다.
넷째, KBS 수신료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KBS 내부 개혁과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KBS 수신료와 관련 있는 전문가나 관계자들은 수신료 제도가 난맥상을 보이는 이유로 ‘정치적 독립성 같은 정치구조적 문제’ ‘법·제도적 절차의 문제’와 함께 ‘KBS의 방만한 경영’과 ‘공적 책무’ 같은 내부 문제들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내부적으로 과감한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수신료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지금처럼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 ‘조직이기주의’ 혹은 ‘종사자이기주의’에 집착한다면 수신료 인상은 물론 KBS의 존립 근거마저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수신료 인상의 해법은 KBS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공영방송 종사자로서의 특질을 KBS 스스로 회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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