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장준우는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많지만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뜻밖에도 음식과 요리에 매료되면서 유럽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에서 수학하고 시칠리아 주방에서 분투한 후 돌아와 현재는 국경을 넘나들며 글을 쓰고 요리하고 있다. 음식과 요리를 둘러싼 역사와 인문학적 맥락을 찾아 여행하고 공부할 때 가장 열정적이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그에게 ‘플레이버보이[flavor boy]’ 혹은 ‘미각소년[味覺少年]’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혀를 매혹시켜온 ‘바람난 맛[風味, flavor]’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 북유럽과 프랑스를 거쳐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 곳곳을 누볐다. 최고의 스테이크를 찾아 스페인의 광활한 도로를 달렸고, 이탈리아의 한 올리브 농장에서 쓰디쓴 올리브 열매가 어떻게 감칠맛 나는 열매로 바뀌는지 탐사했다. 한겨울에 북유럽 도시들을 찾아 척박한 삶을 견디게 해준 음식의 존재가치를 되새겼다. 요리를 하고 여행을 하는 틈틈이 신문이나 잡지에 음식문화 관련 글을 쓰고, [수요미식회] 등의 TV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대 문정훈 교수와 함께 히스토리 채널이 방영한 [위대한 계발자]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프랑스와 스페인을 돌며 닭 요리를 취재했다. 지은 책으로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가 있다.
이 책은 음식과 식재료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찾아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를 거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이르기까지 유럽 대륙을 종횡무진 질주한 어느 젊은 요리작가의 ‘음식 인문학 기행’이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내던지고 유럽으로 건너가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수료하고 마피아 소굴로 악명 높은 시칠리아의 한 레스토랑에서 분투했다. 그리고 다시 유럽 전역을 떠돌며 음식 문화의 원형을 탐사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혀를 매혹시켜온 ‘바람난 맛[風味, flavor]’을 찾아 국경을 넘으며 세계를 누볐다. 최고의 스테이크를 찾아 스페인의 광활한 도로를 달렸고, 이탈리아의 한 올리브 농장에서 쓰디쓴 올리브 열매가 어떻게 감칠맛 나는 열매로 바뀌는지 목도했다. 한겨울에 도착한 북유럽의 도시에서 척박한 삶을 견디게 해준 음식의 존재가치를 되새겼다. 지구촌 곳곳에서 만난 식재료의 명인(artisan, 아티장)들에게서는, 맛의 기본이란 세월을 견뎌내는 인내에서 비롯됨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음식과 조우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글을 썼고, 바로 그 순간순간의 기록들이 한 데 묶여 책이 됐다. 이 책 『플레이버 보이[flavor boy]』는 음식의 풍미[flavor]를 통해 인생의 맛을 체화해가는 한 미각소년[味覺少年]의 성장일기이다.
음식의 맛이란 무엇인가?
음식의 풍미에 담긴 함의를 되새기다!
음식의 맛을 전달하는 건 뜻밖에도 바람[風]이다. 음식의 맛은 공기 중 바람을 타고 특유의 향[香]을 발산하며 인간의 감각을 달뜨게 한다. 그래서일까, ‘음식의 고상하고 우아한 맛’이란 사전적 의미를 지닌 ‘풍미[風味]’가 한자어 그대로 ‘바람난(의) 맛’으로 읽혀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이상할 게 없다.
서양에서도 풍미를 뜻하는 ‘flaveur’[영어식 표기 : flavor]란 단어의 속살을 뜯어보면 단순히 ‘맛’이란 말로 한정해 설명하지 않는다. 세계 3대 백과사전인 『라루스 백과사전, Grand Larousse Encyclopedique』의 요리편에는, “어떤 음식으로부터 후각적, 미각적으로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인지의 총체로서 경우에 따라 온도, 촉각, 화학적 느낌을 포함한다”라고 풍미를 뜻하는 flaveur를 정의한다. 그렇다. 인간이란 미각과 후각에 더해 시각과 청각, 촉각까지 무려 다섯 가지 감각을 지닌 꽤 섬세하고 까다로운 존재이다. 결국 풍미 안에는 맛과 향 말고도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분자[分子]들이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그가 이탈리안 셰프의 길을 뒤로 하고
플레이버 보이가 되어 길 위에 선 이유
매우 섬세한 인간의 감각은 그들을 다양한 종(種)으로 진화시켰고 다양한 문명을 낳았으며, 또 다양한 민족과 국가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제각각 먹는 음식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폼 나는 이탈리안 셰프를 꿈꾸며 유학길에 올랐던 저자는, 음식에 담긴 문화사적 함의에 빠진 뒤 결국 꿈을 수정하고 말았다.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는 요리사에서 음식의 맛을 탐사하고 글을 쓰는 요리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혀를 매혹시켜온 ‘바람난 맛[風味, flavor]’을 찾아 국경을 넘으며 세계를 누볐다. 최고의 스테이크를 찾아 스페인의 광활한 도로를 달렸고, 이탈리아의 한 올리브 농장에서 쓰디쓴 올리브 열매가 어떻게 감칠맛 나는 열매로 바뀌는지 목도했다. 한겨울에 도착한 북유럽의 도시에서 척박한 삶을 견디게 해준 음식의 존재가치를 되새겼다.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만난 식재료의 명인(artisan, 아티장)들에게서는, 맛의 기본이란 세월을 견뎌내는 인내에서 비롯됨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음식과 조우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글을 썼고, 바로 그 순간순간의 기록들이 한 데 묶여 책이 됐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와 기술을 찾아
저자가 길 위에서 만난 첫 번째 풍미는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는 작은 해안도시 트라파니의 염전과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에 위치한 앤초비 가공업체 ‘엘 카프리초’에서 음식의 맛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를 제대로 맛보았다. 그것은 바로 ‘짠맛’과 ‘감칠맛’이다.
“요리라는 행위는 날것의 식재료를 먹을 만한 것으로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요소가 필요한 데 바로 짠맛과 감칠맛이다. 요리를 잘 한다는 이면에는 짠맛과 감칠맛을 적절히 잘 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체로 음식이 맛없다고 느끼는 건 이 두 가지 중 하나 혹은 모두가 부족해서 생기는 비극이다. 결국 요리사에게는 짠맛과 감칠맛을 적절히 불어넣어 주는 것이 하나의 숙제인 셈이다.”(34쪽)
실제로 ‘분자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 셰프는 소금을 가리켜 “요리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물질”이라 했다. 소금은 식재료의 불쾌한 맛을 가려 주고 식재료 본연의 풍미를 더욱 선명하게 북돋워 줌으로써 감칠맛을 완성시킨다(71쪽).
음식의 풍미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짠맛과 감칠맛이라면, 핵심 기술은 ‘숙성’이다. 세월을 견뎌내는 인내 없이 풍미 가득한 식재료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 창세신화에 나오는 농사의 신 ‘신농(神農)’도 울고 갈 만큼 지독하게 쓴 올리브가 감칠맛 나는 열매로 바뀔 수 있는 비결도 발효의 마술 덕이다(46쪽). 요리의 표정을 바꾸는 한 방울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식초다. 기원전 4000년 경 인간은 술을 만들면서 식초도 함께 제조했다. 당이 있는 포도나 곡물을 발효시키면 술이 되고 술이 발효되면 식초가 된다는 사실을 인간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식초는 입맛을 돋우는 양념으로서 뿐 만 아니라 소금과 함께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까지 꽤 훌륭한 보존제로 사용돼 왔다(52쪽). 이밖에도 치즈와 햄 등 서양음식사를 뒤바꿔놓은 숙성의 지혜는 시대와 문명을 달리하며 진화해왔다.
길 위에서 맛본 최고의 풍미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와 지혜가 갖춰지면 최상의 풍미를 내는 최고의 음식이 완성된다. 저자는 최고의 음식을 찾아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를 거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국경을 넘으며 유럽 대륙을 누볐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차를 달려 네 시간이나 걸리는 시골 마을 ‘히메네스 데 하무스’를 찾은 것도 최고의 스테이크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저자는 호세 고르돈(Jose Gordon) 셰프를 만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 키운 소를 도축해 최상의 건조 숙성을 거쳐 고기를 구워내는 과정을 지켜봤다(102쪽).
파리에서 왕복 600km가 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캉칼’이라는 작은 어촌을 찾은 것은 프랑스 굴의 독보적인 명성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굴만큼 영욕의 세월을 보낸 식재료도 드물다. 예사롭지 않은 생김새 탓에 지식인들은 굴에 대해 혹평을 쏟아 냈다. 『삼총사』를 쓴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굴을 가리켜 “연체동물 가운데 자연의 혜택을 가장 받지 못했다”고 했고,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는 “굴을 가장 먼저 먹은 사람은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세네카(Seneca)와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식도락가들은 굴의 풍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118쪽).
이밖에도 저자는 이탈리아의 산촌에서 맛본 포르치니 버섯요리(148쪽), 가히 ‘천국의 맛’이라 부를만한 벨기에 브뤼셀의 수도원 맥주(134쪽),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명물로 꼽히는 문어요리 ‘풀포 아 페이라’(176쪽), 지중해 바다에서 잡힌 갑각류의 껍질로 만든 ‘비스크 소스’(115쪽) 등 유럽 곳곳을 돌며 최고의 음식과 풍미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탐사했다.
아티장(artisan)이라 불리는 식재료의 명인들과의 조우
인기가수와 그의 노래 못지않게 유명 셰프와 그가 만든 음식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대가 왔다. ‘쿡방’, ‘먹방’ 같은 신조어가 생겨났고, 가수가 TV에 나와 노래 부르는 모습보다 스타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는 장면이 더 익숙해졌다. 바야흐로 음식 콘텐츠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아쉬운 건 음식의 원석(原石)에 해당하는 식재료는 여전히 찬밥 신세라는 사실이다. 식재료의 처지를 보면 식재료를 생산하는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보이지 않는 가치는 늘 뒷전인 세태다.
“주방에서 식재료를 존중하라는 말은 귀에 박히듯 들었지만 사실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산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생산자가 어떤 노력으로 생산물을 만드는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면서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게 됐다.”(머리말 6쪽)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그가 이 책에서 집중해 다룬 건 음식 자체보다는 그것에 담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식재료와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는 파리의 정육업자 우고 드누아이에(Hugo Desnoyer)와 교토의 정육업자 가토 겐이치를 찾았고(128쪽, 88쪽),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으로 넘어가 앤초비를 가공하는 세자르와 호세 카프리초 형제를 만났다(32쪽). 이탈리아의 영세한 치즈 생산 현장에서 세월을 견디며 묵묵히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그라노 파다노 치즈를 숙성시키는 젊은이들을 취재했으며(76쪽), 어두컴컴한 저장소에서 식초 발효에 한평생을 보낸 노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50쪽).
저자는 이들을 가리켜 ‘아티장(artisan)’, 우리말로 ‘장인(匠人)’ 아니 ‘명인(名人)’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다고 한다. 품질에 대한 철저한 고집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가 미각소년으로 사는 이유
“200가지가 넘는 치즈를 먹는 이 나라 국민을 도대체 어떻게 다스려야한단 말인가!” 프랑스의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가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한 말이다. 한편,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으로 알려진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장군은, “이탈리아인들을 뭉치게 한 통일의 주역은 단언컨대 파스타”라고 말했다(228쪽).
음식은 때로는 제각각인 인간의 서로 다른 취향을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 데 묶어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촉매제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음식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속성을 지닌 인간이 사는 세상을 그대로 투영한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만큼이나 음식도 복잡하고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음식을 공부하고 알아간다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음식의 맛을 통해 인생의 맛을 터득해 나간다는 저자가 미각소년으로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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