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한·일 통상갈등 극복 가능한가?
[심층분석] 한·일 통상갈등 극복 가능한가?
  • 박성현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 승인 2019.09.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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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제가 또 심각한 위기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지난 20여 년 간 우리가 경험한 큰 경제 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이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의 협조와 우리 국민의 단합된 의지로 이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우리의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의하면 지난 7월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고, 이런 감소 추세는 작년 11월 이후 연속 8개월 감소한 것으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또한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의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작년 8월부터 연속 11개월 마이너스를 기록해 역대 최장 ‘불황의 터널’에 갇혀 있다.

그나마 우리 경제를 받쳐주고 있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도, 일본이 이 산업에 필수적인 3가지 소재(리지스트(대일 의존도 91.9%), 에칭가스(43.9%), 플루오드폴리이미드(93.7%))에 대한 수출제한조치(7월 1일)를 내리고,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전략물자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8월 28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해, 일본으로부터 수입실적이 있는 품목 1383개에 대한 수출 규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의 산업구조는 글로벌 자유무역 기조로 형성된 분업구조 아래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의 주력산업을 키워왔다. 우리 기업들은 소재·부품·장비 등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이나 미국 기업에 의존해 소재와 부품 등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외국에 파는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급망이 와해되면 우리 산업이 겪는 타격은 클 수 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생명줄인 수출이 급감하고, 제조업 생산능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고, 여기에 일본의 경제보복이 겹쳐 우리 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IMF 외환위기를 맞기 바로 전에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이 좋아 위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다가, 결국 구제금융 신청을 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인 것은 확실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고 근본적 성장세는 건전하다”고 언급했다. 어떤 통계적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우리 산업에 주는 타격은 얼마나 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국력을 비교해 보고, 한일 간 통상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지 고찰해 보자.
 

韓日 간 경제력·군사력 비교

한국과 일본의 규모와 경제력을 우선 비교하여 보자. <표 1>에서 보면 일본이 한국과 비교하여 인구는 2.4배, 면적은 3.8배이고, GDP 규모도 3.1배로, 대략 일본이 한국보다 3배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인당 GDP 차이는 1.3배 차이로 별로 크지 않다. 1인당 GDP 차이는 2010년 이후 좁혀지고 있다. 2010년에 1인당 GDP는 한국이 2만 2087 달러이고 일본이 4만 4057 달러였으니 2.0배였다. 한일 양국 간 1인당 GDP 격차가 좁혀진 데는 일본의 경제 둔화와 한국의 반도체 특수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겪은 후 2년간 총 GDP의 30% 정도를 잃었고, 이후 일본판 양적 완화인 ‘아베노믹스’를 통해 회복 가도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대지진 전으로 회복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2010년 이후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업 등의 수출 활성화에 힘입어 성장하면서 1인당 GDP가 크게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는 연간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면서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일본이 수출 규제의 첫 포문으로 반도체 소재를 지정한 것은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막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총수출액의 차이는 일본이 한국의 1.2배 수준으로 별로 크지 않으나, 경상흑자는 일본이 한국의 2.8배로 큰 차이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은 2018년 한국(2.7%)이 일본(0.7%)보다 많이 높다.
 

군사력의 질에서 한국 앞지른 일본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면서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일본의 경제보복 등 분쟁의 단초가 될 만한 사안이 많다. 자칫 군사 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미국 GFP(Global Fire Power)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세계 군사력 순위는 각각 7위와 6위로 큰 차이는 없다. 병력 규모는 한국이 62만 명으로 일본의 25만 명보다는 약 2.5배 많으나, 한국은 주로 사병들이고, 일본은 대부분 부사관, 장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병력의 질적인 면에서 일본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 일본의 해상 전력도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 해상 전투의 핵심 전력인 구축함은 한국이 12척인 데 비해 일본은 38척을 가지고 있다. 최첨단 이지스 전투체계를 소화할 수 있는 이지스함은 한국이 3척이나 일본은 7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특히 국방비는 일본이 한국의 1.2배 정도이나 최근 들어 급격히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 한국 국방비의 대부분을 인건비에 사용하고 있으나 일본은 신무기 도입과 개발에 사용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의 군사력이 한국을 많이 앞설 것이다. 현재의 평가로는 한일 간 군사력의 차이가 존재하며, 만약 독도 무력충돌 시에는 한국이 열세에 놓일 것이 자명하다.

한일 무역분쟁을 푸는 열쇠는 과학기술력이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2019. 8. 1. 기준)은 11개(소재 나노, 기계 제조, 국방 등) 분야 120개 중점과학기술을 선별하여 각국의 기술력을 분석한 결과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에 비하여 전체 평균으로 EU는 0.7년, 일본은 1.9년, 한국과 중국은 3.8년이 뒤진다고 발표하였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에 1.9년 뒤진 것이다. 반도체, 휴대폰, 가전, 조선 등에서는 한국이 약간 앞서가지만, 소재·부품·장비 산업이나 정밀기계 산업 등에서는 한국이 뒤처져 있다.
 

한일 간의 과학기술력 비교

그러나 기초과학 분야의 기술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약 15년 정도 한국이 일본에 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노벨과학상(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을 일본은 이미 21개(일본 출신의 외국 국적 수상자를 합치면 23개) 수상했고, 한국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산업 기술력은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원천이 되는 기초과학 기술력은 고등교육 시스템과 R&D 방법 등에 연관되어 있어 근본적인 혁신이 없으면 단기간에 개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노벨과학상 수상자 한 명 없이도 이 정도의 산업 기술력을 확보한 것도 다른 나라에 없는 대단한 능력이며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세계 과학경쟁력은 2016년 일본은 2위이나 한국은 8위로 차이가 있다. 비슷한 조사인 기술경쟁력 평가는 일본이 10위, 한국이 15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인 과학기술력을 평가할 때 한국이 일본에 뒤진 것은 사실이나 큰 격차가 아니므로 따라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보인다.
 

※자료 :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자료 : 한국과학기술평가원

기업자유 확대와 호혜적 외교 노력 필요

한일 간의 규모, 경제력, 군사력, 과학기술력 등을 비교하여 볼 때 한국이 일본에 뒤져 있다. 그러나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뒤처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통상 갈등을 극복하면서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그 몇 가지 지혜를 생각하여 보자.

일본은 반도체 소재 3종 수출규제 이외에도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여 1000여개 제품에 대한 수출규제를 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우리나라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여 수출규제를 할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상호 백색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더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이것은 당연 한국이 더 큰 피해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소재와 부품 등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외국에 파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고, 일본의 소재와 부품을 대체할 방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로부터 완제품을 주로 수입하는데, 이를 한국에서 사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감정에 치우쳐 반일감정에 호소하면서 일본과 ‘강대 강’ 대결을 하지 말고, 우리의 국력이 조금 더 강해질 때까지는 묵묵히 참아내고 우리 산업을 보호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즉,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유연한 외교·정치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의 길 나오면 기꺼이 손 잡겠다”라고 언급하면서 통상 분쟁에 대하여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OECD 세계 경제 전망’을 보면 한국은 2019년과 2020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2.4%, 2.5%로 예측하고 있으나, 일본은 각각 0.7%, 0.6%로 우리보다 1/3 정도의 수준이다. 2018년 현재 한일 간 명목 1인당 GDP의 차이는 1.3배이나, 이 차이는 <그림 2>에서 예측되는 바와 같이 더 줄어들 것이다. 한국이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추월하는 순간이 조만간 올 수도 있으며, 이때가 되면 일본에 대하여 우리도 좀 더 큰 소리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규제를 완화해주고 R&D 세제 지원의 폭을 넓혀 준다면, 기업은 스스로 소재·부품·장비를 비롯하여 일본의 수출규제를 무색하게 하는 핵심소재의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업 환경에는 법인세 인하, 최저임금의 동결, 주 52시간 근무제의 완화, 상속세 인하, 기업 압수수색의 최소화 , 정부의 간섭 배제 등이 포함된다. 기업인들에 의하면, 만약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 이번에 일본이 대표적으로 수출규제 하는 반도체의 3가지 소재 개발은 우리 기업들이 1∼2년 내에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려면 주력산업의 원천적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 육성과 연구개발력의 제고가 시급하다. 초기에 일본 경제보복의 대상이 되고 있는 3개의 반도체 소재는 꾸준한 기초과학연구와 그 결과를 응용하는 재료공학, 화학공학 등의 투자에 의하여 만들어질 수 있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의 허약한 기초과학·연구개발 역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란다. 연구개발은 출연연구소, 대학, 기업의 연구소들이 산·학·연 협동이 잘 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시스템이 운영되어야 한다.

출연연구소의 예를 들면, 이미 오래 전부터 KIST에서는 차세대반도체 원천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중장기 불화수소 연구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연구와 관련된 대학 연구와 기업의 연구가 상호 개방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협동정신을 발휘하면 일본을 뛰어넘는 기술력이 확보될 것이다.
 

박성현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박성현 미래한국 편집위원·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4차 산업혁명 위해 기초과학 육성과 인재 개발해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우리의 발 빠른 대응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기술경쟁력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에 있다. 이들을 위하여 개인정보의 활용의 길을 열어 빅데이터 산업을 진흥시키고, 인공지능 활용을 장려하고, 차량 공유 등의 공유경제를 활성화하며, 원격진료도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을 육성하고, 빅데이터·인공지능 전문 인력을 과감하고 혁신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일본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에서 앞서가면 궁극적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우리에게 위기를 주지만 또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은 독한 마음을 먹고 4차 산업혁명의 발전을 막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나가 일본을 앞질러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발전해 왔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를 우리 국민들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위축되지 말고, 반일감정에 호소하는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말고,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우리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과학기술력을 키우고, 기업인들을 도와 우리에게 취약한 소재·부품 개발에 나서고, 더 나아가 함께 산업 진흥에 나설 때 우리는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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