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한국 vs 일본, 누가 국제법 위반하고 있는가?
[심층분석] 한국 vs 일본, 누가 국제법 위반하고 있는가?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9.08.0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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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분쟁은 사실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그것도 국내정치 문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부까지도 개입할 생각을 내비치지 않는 이유도 한국과 일본, 양쪽 모두 무역분쟁을 국내 정치에 사용하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서로 상대방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국제법이란 기본적으로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이다. 강제력은 없지만, 이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는다. 1994년 12월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일본이 국제법 위반한 것”

지난 7월 19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이 먼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김현종 2차장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비난했다. 고노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대사를 초치해 “한국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양국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중재위원회 설치에 나서라”고 강력히 비판한 것을 비난했다.

김현종 2차장은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일본 측의 계속된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 및 인권 침해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판결했고, 민주국가로서 한국은 이런 판결을 무시도, 폐기도 못 한다”고 주장했다.

김 차장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측과 외교 채널을 통한 협의를 지속했다”며 “그러나 일본은 일방적으로 수출규제 조치를 했고, 이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발언한 자유무역 원칙과 글로벌 가치 사슬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국제법을 위반한 주체는 일본”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김 차장은 일본을 맹비난한 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는 8월 기한이 만료되는 한일정보보호협정을 더 연장할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서 7월 21일 참의원 선거가 있다”며 일본 정부가 한일 간 분쟁을 국내 선거에 활용하려 한다는 듯이 풀이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맹비난하고 있는데, 여기서 쟁점이 되는 한일 청구권 협정 내용은 잘 소개되지 않고 있다. 해당 협정의 전문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은 2조 내용 때문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에는 “두 나라는 양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두 나라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한 일본과의 평화조약 제4조 A항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협정에서 말하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뒤 연합국과 일본 간에 맺은 조약으로, 전후 처리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조약 제4조 A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와 관련된 재산 처분 및 부채 정리를 해당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나라들과 협의해 정리한다는 내용이다. 이 항목은 “해당 지역에서의 어떤 연합국이나 그 국민의 재산이 반환되지 않았다면, 일본은 현존하는 상태로 행정 당국에 의해 반환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제4조 B항은 “일본은 언급된 지역에 있는 일본과 일본인의 자산에 대해, 미군정의 지침이나 이에 준해서 제정된 처분권의 적법성을 인정한다”고 돼 있다.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는 이어 1947년 8월 15일부터 협정 서명일까지 사이에 두 나라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이익,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이후 양국 국민이 서로 재산, 권리, 이익 등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취득하고, 양국 관할 아래 들어오게 된 것에 대해서는 청구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에 초치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가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외무상과 대화하고 있다. 일본이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을 한국정부는 사실상 거부했다. / 연합
일본 외무성에 초치된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가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외무상과 대화하고 있다. 일본이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을 한국정부는 사실상 거부했다. / 연합

일본이 한 “약속 지키라”고 말하는 근거

즉 청와대의 주장과 달리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이 서로에 대한 배상 청구 등을 하지 못하게 못 박았다. 만약 여기에 대한 문제 제기나 배상 청구가 있을 경우에는 협정 제3조에 따라 처리하도록 규정했다.

제3조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두 나라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고 지적한 뒤 “만약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은 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고, 두 나라는 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인다”고 돼 있다.

제3조에서 말하는 중재위원회 구성 절차는 이렇다. 먼저 어느 한 나라가 공문을 보내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나라는 이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중재위원 한 명씩을 임명한다. 임명된 중재위원들은 30일 이내에 다시 제3국 국적의 중재위원을 합의 하에 임명한다. 이렇게 3명으로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한일 간의 분쟁을 처리한다.

만약 한일 어느 나라든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 또는 두 나라가 제3국 중재위원을 정하지 못했을 때에는 두 나라가 30일 이내에 각각 다른 나라를 선정하고, 해당 국가 정부가 지명한 중재위원들로 위원회를 꾸려 분쟁을 심판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행동해 왔다. 일본은 지난 5월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 따라 중재위원을 임명하고, 한국 측에 중재위원 임명 및 제3국 중재위원을 포함한 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제안을 내놓은 지 한 달이 지난 6월까지도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았고,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구성도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국내 대법원에서 나온 판결을 근거로 “한일 청구권 협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즉 국제법적 관점에서 보면 약속을 어긴 쪽은 한국이 된다.

전문가들 “한국에 승산 없는 싸움”

그렇다면 한일 간 분쟁에서 한국에 승산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나온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을 이길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적인 무역분쟁은 무역수지가 적자인 나라가 흑자인 나라에 쓰는 건데 이번에 일본은 무역수지가 아니라 상대방의 산업공급사슬을 붕괴시키려는, 새로운 양상의 무역분쟁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무역분쟁에서 승패를 가를 요인들을 점검한 결과 한일 양국 간 분쟁에서 한국의 승산은 매우 낮다”며 “한국에는 수출 규제로 일본을 압박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관세율을 비교해 볼 때 일본은 인상 여력이 있지만 한국은 이미 높은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경제적 펀더멘털도 일본이 한국보다 월등히 탄탄하며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 양국 수출입을 비교해도 일본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것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은 국내 핵심사업의 부품과 소재, 장비 위주여서 일본은 한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지만 한국은 일본에 그렇게 못하는 ‘비대칭 무역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하면 생산이 불가능해지는데 최악의 경우 하청업체 종사자 170여만 명이 실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일본에 대한 부채가 일본에 있는 자산의 2.1배나 되는 게 현실”이라며 “만약 일본이 한국에 금융제재를 가하면, 한국은 자금이탈과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면서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피해를 입은 것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일본이 한국에 가한 수출 규제는 그들이 가진 수많은 무기 가운데 일부만 살짝 보여준 수준에 불과했다”며 “그에 반해 우리는 우리 무기, 보복수단이 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라고 지적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정말 그렇게 대응 수단이 없느냐”고 여러 차례 묻자 조 선임연구위원은 “제가 아무리 연구해도 못 찾았다”면서 “만약 제가 (일본에 대한) 보복수단을 찾게 되면 여기 오신 의원들께 먼저 알려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현재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 강경 발언이 계속 나오고, 국민들은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어 완충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며 “지금 상황으로는 한일 갈등이 점차 커져 일본이 금융제재를 가하거나 다른 측면에서 분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 한국이 겪는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한일 무역분쟁의 해결 방안으로 미국이 개입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에 “대중국 전략을 실행하려면 한일 관계가 좋아지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정부와 민간이 나서 일본 국내에서도 “지금 중국이 부상 중인데 한국의 탈일본화가 진행되면 일본에도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설득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미국이 한일 간 분쟁을 중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다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중국의 시장지배력 증가를 견제하고, 한미일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회의장에 한국 팻말과일본 팻말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회의장에 한국 팻말과일본 팻말이 나란히 배치돼 있다.

한일 분쟁, 과연 국내 문제가 원인일까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재미있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한일 분쟁을 한국이 먼저 일으킨 점, 그리고 이를 더 극대화하려는 세력들을 보면 북한의 대남적화전술인 ‘갓끈 이론’이 떠오른다는 지적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사회를 맡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1969년 김일성이 간첩 양성기관인 김정일 정치군사대학 졸업식에 가서 주장한 게 바로 ‘갓끈 이론’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일성은 간첩 후보생 졸업생들에게 “남조선 혁명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은 갓끈과 같다. 둘 중에 하나만 끊어지면 갓은 입김에도 떨어지게 된다”며 “따라서 여러분은 대남사업을 하면서 반미·반일 투쟁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동열 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라는 갓끈이 서서히 풀리더니 지금은 일본이라는 갓끈도 위태롭다”며 “이번 정부가 북한이 말하는 ‘갓끈 전술’의 실현을 지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유 원장이 만들어 낸 게 아니다. 작고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2007년 ‘자유북한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갓끈 이론’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친북세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반일·반미 세력이 계속 강화되고 있다”며 “이를 보면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황장엽 비서는 “김일성은 대남통일전선전략을 세울 때 ‘남한 정권은 갓을 쓴 정권’이라며, 갓 끈의 한 쪽은 미국과의 동맹, 다른 한 쪽은 일본과의 우호관계라며, 갓이라는 게 어느 한 쪽이든 그 끈만 떼 놓으면 입으로 불어도 날아간다고 말하면서, 대남적화를 위한 전략적 공격 목표로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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