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보는 눈] 포용과 연합의 윤리
[시대를 보는 눈] 포용과 연합의 윤리
  •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 승인 2019.07.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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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면서 예수님의 일행을 따라오지는 아니함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그에게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지 말라’ 고 금하였다. 그러나 요한의 한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 귀신 쫓아내는 일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하여 모두가 고향을 버리고 사도들처럼 복음 전파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받은 은혜와 재능과 사명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

사도 요한은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관계인지 모르나 이 기사가 보이는 대로 그는 생활의 원칙보다 지엽적인 문제에까지 과도히 남의 허물을 찾아 내려 하는 좁은 마음을 나타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원칙에 있어 또는 그 원칙을 보수하는 데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일들에 있어 서로 일치하게 됨을 원할 것이나, 그 밖의 문제에 있어 실수와 차이점을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소(些少)한 문제에 있어 남의 실수를 과히 따지는 것은 진리 파수에도 해롭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냄에 있어서도 크게 부족한 것이다. 남의 사적(私的) 허물을 보게 된 것부터도 나 자신의 불행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남에게 있는 그런 허물은 얼마든지 가려주려고 힘을 다해야 한다.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이종윤 미래한국 상임고문, 한국기독교학술원 원장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는 그들의 덕을 찾아보려고 할 것이고 자신에 대하여는 허물을 찾아보려고 하여야 된다.’ 중대한 진리 문제로 갈라진 교회는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교회가 그 모체 교회에 있어 중대한 진리를 위해 증거하다가 냉대(冷待)를 받았으니 만큼 그렇게 냉대를 받으며 증거하는 동안 진리 분별과 파수에 있어 대단히 날카로워졌기 때문에 갈라진 후에도 자체 내에서 과도히 서로 비판할 위험성이 있다. 요한은 자기 일행을 따라오지 않는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다 하여 그것을 금하였으니 그 행동은 다소 분수를 넘은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죄를 범했다면 그것은 금할 만하다. 그러나 귀신을 내쫓는 선한 일을 금할 권세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우리와 다소 다른 걸음을 걷는 이들을 보게 된다. 만일 그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탈선된 일을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우리도 온유, 겸비하게 지적하여 그것이 잘못이라고 증거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로 하는 일도 있다면 우리는 그것까지 비방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소위 DJP연합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물과 기름처럼 연합할 수 없는 이들이 야합을 하여 정권을 창출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경쟁보다 서로 연합하여 분열된 여론을 모아 집권에 성공했다는 칭찬도 있다. 오늘날 우리 정당들이 서로 찢어져서는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보수가 승산이 없으니 비록 색깔이 다르고 질이 다르더라도 연합하여 이기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세론이 지배적이다.

헌법을 보수한다는 것은 보수세력뿐 아니라 진보세력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9:40, 눅9:50)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포용의 원리를 갖고 어느 선택이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발전해 가는 길인지를 분별하는 애국 ·애족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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