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자유가 폭정 종식과 문명사회의 시작인 이유
종교 자유가 폭정 종식과 문명사회의 시작인 이유
  •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나라정책연구원장
  • 승인 2018.12.06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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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하게 종교 탄압과 종교인에 대한 공개 처형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대외 선전을 위해 만들어진 성당, 교회 등 몇 개의 종교 시설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신자 및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허위 신자를 동원한 구걸 행각을 할 때만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웜비어는 사망을 앞두고 풀려났지만 김동철, 임현수 목사 등은 지금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의 북한 방문을 요청하는 어처구니없는 난센스를 펼쳤다. 연이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염수정 추기경을 만나 교황 방문이 성사되도록 가톨릭이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정치 구호로 삼아 살아오던 세력들이 70년 계속된 상황의 본질은 거론하지 않고 마치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거짓 선전을 천연덕스럽게 대행하고 있다. 인권 탄압과 종교 학살을 저질러온 북한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데 바쳐진 문재인 정부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미 국무부도 매년 세계 각국의 종교 탄압의 수준을 평가한다. 북한은 수단, 쿠바,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를 탄압하는 나라로 분류되어 왔고 단 한 번도 최악이란 상황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실로 민족사 최악이다. 천주교 박해는 물론 개신교 탄압까지 가혹했던 봉건 왕조적 조선에서도 이미 150년 전부터 종교 자유의 길을 열었다. 심지어 군국주의적 일제 식민지배 때도 선교사 활동과 종교 자유는 허용되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태동과 확산은 대부분 1930년대 식민시대 때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150년 전의 조선이나, 90년 전의 식민지배 수준도 벗어나지 못한 종교 탄압과 문명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 가톨릭 독점의 유럽에서 개신교가 본격 허용된 계기가 된 1648년 베트스팔렌조약과 비교하면 400년 가까운 역사 변화를 외면하는 처절한 신정 정치적 전제군주(專制君主)의 지배에 있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민주주의 척도

종교 자유는 결코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 및 자유경제 제도와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종교 자유의 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이 정확하게 비례하고, 종교 자유 수준과 시장경제 수준이 거의 비례한다는 것은 각종 통계와 지표로도 확인된다. 실제 역사적으로나 현실에서나 특정 사회의 종교 자유 수준이 곧 그 나라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준이다. 소득이나 경제 성장과 달리 중국이 보여주는 종교 탄압의 수준은 곧 공산당 독점의 중국의 정치 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폭정(暴政)적 독재는 인민의 사상까지도 지배하고자 한다. 독재 체제가 종교를 탄압하는 첫째 이유는 통치 대상인 인민들이 독재자 자신을 제외한 다른 대상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스스로가 종교적 숭배 혹은 종교 지도자의 위치까지도 독점하려 하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펼쳐졌던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사회가 다 쓰던 수법이고, 근대 이후 중국, 북한은 물론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대부분의 종교 탄압 국가는 종교적 신앙의 위치에 권력을 대신 갖다 놓고 숭배하게 하거나, 종교를 지배의 수단으로 삼는다. 공산주의와 공산당이 종교를 ‘아편’으로 여기고 종교를 부정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자리에 공산당과 독재자를 대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일성은 스스로를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만들며 신의 위치에 자기 자신을 갖다놓는 신정(神政) 체제를 만들었다.

따라서 종교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더 이상 신격화된 존재로서의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 자유란 그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국민의 비판 대상이 되고, 권력이 국민 선택의 대상이 되는 근대사회로 가는 출발점이자 시금석이다. 고대 찬란했던 문명을 상징했던 로마시대 이후로 유럽이 몇 백 년간 중세 암흑기(暗黑期)로 빠져 들어간 것도 바로 단일 종교가 모든 사상을 지배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하며 종교 교리 이외의 다른 선택과 삶의 방식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종교가 정치권력이 되고 종교가 사상의 지배 수단이 되어 다른 가치와 다른 제도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 지배의 단면이다.

그런 차원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유럽이 암흑시대를 벗어던지는 계기가 된 것도 16세기 이후 종교 자유였다. 15세기 이후 가톨릭 구교와 프로테스탄트 간의 싸움과 전쟁은 비록 그 형식은 종교전쟁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상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둘러싼 전쟁이었고, 또한 종교와 분리된 주권체계를 만들겠다는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의 독립전쟁이기도 했다.

북한 민주화는 종교 자유로부터 시작돼야

중국도 그렇지만 북한에서 펼쳐지는 가혹한 종교 탄압은 종교 자유가 곧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물론이고, 개인들에게 정치적 선택의 자유로 이어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체제와 사상에 대한 선택은 물론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선택의 자유까지 연결되는 문제가 되는, 곧 민주주의 문제인 것이다. 중국과 북한이 무슬림이든 기독교든, 종교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신격화되어 무오류와 무비판 대상이 되어온 독재자와 책임지지 않는 무한 권력의 담지자인 공산당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자유화와 민주화는 종교의 자유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 자유가 허용될 때 비로소 ‘백두혈통’이라는 김정은의 신격화된 위상이 땅으로 떨어지고, 북한 인민들도 김정은과 폭정 체제를 거부하는 자유 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북한의 종교 탄압을 감추며 북한에 종교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한국 국민과 전 세계를 속이는 것이야말로 보편 가치와 민족 가치를 저버리며 전체주의 독재와 야합하는 행동일 뿐이다. 북한에 종교 자유가 주어지도록 하는 활동에 나서고, 북한 인민을 직접적 대상으로 하여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가능한 방안을 강구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자유와 민주주의 투쟁이다.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장
전 MBC 방문진 이사
자유민주연구학회장 역임
고려대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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