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채택문제는 현재 미국의 반대로 답보상태에 있지만 6·25전쟁은 다른 전쟁에서는 볼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6·25전쟁의 교전당사자가 국제법상 4개의 서로 성격이 다른 주체들, 즉 남북한 두 나라와 유엔군, 그리고 중국의 ‘인민지원군’이라는 사실이다.
6·25전쟁은 발발단계에서부터 유엔에서 특이하게 받아들여졌다. 유엔이 미국 정부로부터 북한군의 남침을 통고받은 것은 6월 24일 밤 11시 30분경(한국시간 25일 낮 12시 30분경)이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노르웨이 출신의 트리그브 할브란 리는 미국 국무부의 유엔담당차관보 존 히커슨으로부터 북한군의 남침 소식과 아울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소집 요구를 전화로 통보받고는 “하느님 맙소사, 이건 유엔에 대한 전쟁이야!”라고 외쳤다는 미 국무부의 기록이 있다.
유엔 안보리는 이튿날(25일) 오후 2시경(한국시간 26일 새벽 3시경) 긴급 소집되어 4시간 동안의 토의 끝에 제82호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북한의 남침을 ‘평화파괴행위’라고 규정하고 북한군의 38선 이북으로의 즉각적인 철수를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결의안은 찬성 9표 대 반대 0표로 채택되었다. 유고슬로비아만 기권했다.
당시 유엔에는 대만(중화민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었는데 소련은 대만 대신 중공의 유엔대표권 인정을 요구하면서 안보리 출석을 보이콧하던 시기여서 이날도 계속 출석을 하지 않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이다,
북한정권이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고 남침을 계속하자 안보리는 다시 27일 오후 2시(한국시간 28일 오전 3시) 새로운 결의안 제83호를 채택했다. 그 내용은 유엔회원국들이 군사력으로 북한군을 즉각 격퇴할 것과 이를 위한 즉각적인 지원을 회원국들에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 결의는 유엔 창설 이후 집단안보제도를 실행에 옮긴 최초의 케이스였다. 이에 따라 유엔회원국들의 군사적 지원이 시작되었다.
트루먼 대통령, “유엔군은 강도와 싸우는 경찰활동”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29일 동경의 미국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보리의 한국지원결정을 ‘유엔의 경찰활동(Police Action under the United Nations)’이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은) 강도들의 기습(Bunch of Bandits)을 격퇴시키는 것을 도우기 위해 취해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입장은 미군의 한반도파견에 관한 트루먼행정부의 공식입장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은 선전포고권이 행정부에 있지 않고 상원에 있다. 트루먼은 유엔의 활동에 협조하는 외교정책의 하나로 파병문제를 처리함으로써 상원의 정식 선전포고를 기다리지 않고 미군을 해외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트루먼은 30일에는 맥아더가 건의한 지상군 2개 사단 파견도 승인해 북한군의 남침 5일 만에 미국은 전면적인 참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맥아더는 곧 유엔군최고사령관에 임명되어 참전 16개국 군대를 총지휘했다. 트리그브 리 유엔사무총장은 7월 14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을 통해 유엔기를 맥아더에게 전달하고, 3일후에는 알프레드 카친 유엔 사무차장을 한국에 보내 월튼 워커 미8군사령관에게 유엔기를 전달했다.
경찰과 도둑이 같이 휴전협정에 서명한 역사의 아이러니
6·25전쟁은 그 해 10월 중국의 개입에 따라 전쟁 양상이 크게 변했다. 유엔총회는 1951년 2월 1일자 제489(Ⅴ)호 결의로써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한국으로부터 중공군의 무조건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중공은 이를 거부함으로써 전쟁은 확대되고 장기화했다. 결국 3년 1개월간의 격전 끝에 쌍방 전투원만 도합 320여만 명에 이르는 많은 사상자들 내고 휴전에 합의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은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총사령관과 김일성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그리고 중국 인민지원군사령원 펑더화이 3인간에 조인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조인을 거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대한민국의 영토인 북한지역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불법단체로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정부의 기본정책으로 삼고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은 유엔군의 38선 돌파작전으로 모처럼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박탈하는 휴전협정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트루먼이 말한 ‘경찰’과 ‘강도’가 한 자리에서, 그리고 피해당사국인 대한민국은 빠진 채 휴전협정을 조인하는 희한한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이듬해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의 구 국제연맹 건물 회의장에서 재연되었다. 6·25전쟁 관련 19개국의 외상들이 참석한 제네바정치회의가 열린 것이다. 참석국은 유엔군 측에서 남아프리카 연방을 제외한 15개 참전국과 대한민국, 그리고 공산 측에서는 소련·중국·북한 등 3개국이다.
한국정부는 당초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회담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내세워 참석에 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한국 스스로가 거부한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줄 우려가 있다는 미국 측의 강력한 권고를 받아들여 방침을 바꾸기로 했다.
제네바정치회의는 한국의 평화적인 통일방안-즉 한반도 통일을 위한 선거 범위, 국제 감독, 외국군 철수, 유엔 권위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토의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양측의 현격한 입장차이로 회의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6·25전쟁 직후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던 이 회의의 결렬로 한반도는 휴전체제가 그대로 유지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문제는 1990년대에 이르러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계기로 다시 국제문제로 등장했다. 이번에는 남북한과 미중의 4자회담, 그리고 나중에는 여기에 일본과 러시아를 더한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북핵 폐기 문제와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문제도 논의되면서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4자회담과 6자회담 역시 약 20년간 시간만 낭비한 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성공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북한의 김정은은 작년 11월 ‘화성-15형’ ICBM 시험발사로 일단 핵 보유라는 소원을 성취했으나 즉각 안보리의 전면적인 경제제재에 직면해 새로운 체제 위기에 빠졌다. 이 때 구세군처럼 나타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었으나 현재 판세는 묘하게 뒤바뀌어 이제는 문 대통령이 도리어 미북 양측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샌드위치 처지가 되고 말았다.
8·15경축사를 통해 대담한 승부수를 보인 문 대통령
그 동안 미북 양측으로부터 압력을 받으면서도 나름대로 신중한 행보를 보인 문 대통령은 8·15경축사를 계기로 적극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전까지 그가 견지해온 ‘한반도운전석론’이 ‘한반도주인론’으로 격상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한반도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다음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9월 평양방문 계획을 밝히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경제지원을 결정하려던 종래의 방침을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북한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역전술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그는 그야 말로 ‘담대하게’ 남북한 철도 및 도로 연결과 북한 측 철도 및 도로의 현대화 프로젝트, 그리고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철도공동체 설립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한다는 계획도 아울러 발표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김정은 1차 판문점 회담에서 합의한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사용할 전력 공급선 개통은 지난 14일 이루어졌다.
문제는 미국 측의 반응이다. 트럼프 행정부 뿐 아니라 미국 학계와 언론의 반응이 냉담하다. 미 국무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평화체제 보다 한반도 비핵화이다”라고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은 “남북한 철도협력은 북한에 대한 유엔제재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조치가 선행되어야만 경제협력 또는 종전선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미국정부 방침을 보도했다.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문 대통령이 발표한 남북철도협력계획을 소개하면서 “남북경협 계획이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드디어 미국 측은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조차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문 대통령의 북한비핵화 정책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한 비핵화는 모든 남북 현안에 우선해야 할 것이며 대한민국은 유엔 제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측이 남측의 호의에 감동해 핵을 포기하리라고 보는 안이한 인식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의 멘토인 김대중과 노무현의 잘못된 북한정세 판단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8.8.20. 화정평화재단 이슈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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