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맛의 배신...우리는 언제부터 단짠단짠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신간] 맛의 배신...우리는 언제부터 단짠단짠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 김민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8.05.2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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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에 환호하고 ‘단짠단짠’에 열광하는 현대인들. 우리가 음식 앞에 이렇게 약해진 것은 음식이 맛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사실 우리 주변의 식재료 대부분은 본연의 맛을 잃고 갈수록 밍밍해져가고 있다. 할아버지 세대들이 오렌지 한 개에서 섭취하던 비타민 A와 같은 양을 얻으려면 지금은 오렌지 여덟 개를 먹어야 한다. 영양과 맛이 희석화된 것이다. 

미국의 쿠시연구소Kushi Institute는 1975년부터 1997년 사이에 채소 12종에서 칼슘은 27퍼센트, 철분은 37퍼센트, 비타민 A는 21퍼센트, 비타민 C는 30퍼센트가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1930년과 1980년 사이에 영국에서 생산된 채소 20종에서 칼슘은 19퍼센트, 철분은 22퍼센트, 포타슘은 14퍼센트 감소했다

닭고기에 향미가 부족한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 닭이 영계인 데 있다. 닭이 근육에 향미를 축적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긴 시간 성장해야 하는데 요즘 닭은 35일 만에 출하된다. 가금류 과학 잡지의 한 논문에서는 요즘 육계의 성장 속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만약 사람이 요즘 육계처럼 빨리 자란다면 막 태어난 신생아는 2개월 후 300킬로그램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거대한 병아리를 먹는 셈이다. 

현대적 축산과 작물 재배로 인해 이렇게 필수 영양분은 줄어들고 맛은 묽어진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우리는 맛있다며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조리법이 발달해서일까? 그러나 또한 많은 셰프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요리란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돕는 일일 뿐’이라고.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밍밍해진 재료와 맛에 탐닉하며 과식을 일삼고 끝내 비만에 이르는 우리의 식생활 사이의 관계가? 『맛의 배신』은 바로 이 의문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맛 산업이 정교하게 짜놓은 거대한 가짜 맛의 매트릭스를 직시하고 음식과 인간 간의 건강한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20년 가까이 환경 다큐 전문 PD로 일해온 저자는 원래 마른 체형이었음에도 중년이 되면서 배가 나오고 갈수록 음식의 유혹을 참지 못하는 원인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먼저 자신의 몸을 실험 도구로 삼아 5년간 각종 다이어트와 건강식 실험을 해본다. 끝없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다. 

무과당 식단 실험에서 최대 고비는 2월 14일, 막내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 날 찾아왔다. 무과당 식단 두 달여 만에 처음 가족 외식을 했다. 중식에 한번 실패했던 터라 메뉴는 한정식으로 정했다. 많은 반찬 중 내가 먹을 만한 게 적어도 절반은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영양 고춧가루와 신안 소금만 고집한다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한식집이었다. (중략) 그러나 내 생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첫 접시인 샐러드는 달콤한 소스로 버무려져 있었다. 생선회는 달콤한 간장소스에 살짝 담겨 나왔고 가지생선튀김은 달달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으며 오징어볶음은 고추장 양념을 설탕으로 폭격한 것 같았다. (중략) 결국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밥과 된장찌개, 들깨수제비 세 가지뿐이었다. 

실험과 함께 저자는 온갖 최신 논문을 뒤지고 세계 각지의 식품 연구자들과 장수촌을 탐방하면서 맛의 원리를 추적한다. 다큐 PD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식물 2차화합물의 역할을 발견한다. 식물은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잘 익은 열매를 알려 씨를 퍼뜨리기 위해 2차화합물을 만들고 이 화합물의 종류에 따라 고유의 독특한 향미가 형성된다.

포도가 열리기 시작하면 농부들은 커다랗고 보기 좋은 열매들은 솎아 내고 작고 볼품없는 것들만 남겨서 이것들이 화학적으로 더 강해지게 한다. 와인의 열성 팬들은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해에 생산된 같은 품종의 와인이 농장에 따라 어떻게 향이 다른지도 구별할 수 있다. 가령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 와인 중에서 ‘로마네 콩티Romane-Conti’라는 농장에서 생산된 와인은 바로 옆 농장의 같은 와인보다 수백만 원을 더 주고도 구하기가 어렵다. 로마네 콩티의 특별함은 결국 이차화합물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 향미는 자연이 만든 진짜 맛이자, 우리 몸이 요구하는 미량영양소를 섭취하게 만드는 촉진제이며 동시에 필요한 양을 채우면 스스로 알아서 수저를 내려놓게 만드는 조절자이기도 하다. 영양소가 줄어든 음식을 먹으면서 과식하게 되는 중요한 열쇠가 여기에 있었다. 향미는 우리가 잃어버린 연결고리였다.

얼마 후 프레드 프로벤자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처했던 상황이 음식 중독을 비롯한 과식 문제의 핵심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파이토케미컬이나 생화학 성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으면 과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을 먹으면 우리 세포와 신체 기관들의 피드백 메커니즘이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도로 정제된 식품을 먹을 때는 세포와 신체 기관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습니다. 정제된 식품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조금밖에 들어 있지 않아 우리 몸에서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식하게 됩니다.”

현대적 음식 산업의 한쪽에서는 실험실에서의 화학 연구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는 바닐라 원액이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바닐라향이 들어갈 뿐이다. 처음 화학자들이 바닐라향을 합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 현대 식품 산업은 이제 단 몇 주면 자연의 거의 모든 맛과 향을 모방할 수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맥코믹의 바닐라 원액은 1온스에 22달러, 이미테이션 바닐라는 1온스에 3센트다. 미국 루이지애나 배턴루지에는 이미테이션 바닐라의 주원료인 바닐린을 톤 단위로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바닐린 공장이 있다. 원료였던 솔방울은 펄프로 바뀌었다가 요즘은 쌀겨가 사용된다. 쌀겨 같은 천연 재료에서 화합물을 추출하면 천연향이라고 라벨에 쓸 수 있다. 그래서 이미테이션 바닐라도 천연향으로 표기된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닐라 제품의 99퍼센트에는 이미테이션 바닐라가 들어간다. 

이렇게 화학 합성으로 만들어진 가짜 향은 밍밍해진 식재료를 맛있는 식품으로 위장하는 기가 막힌 수단이 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음식과 음료에 이 합성 향미료가 들어간다. 결국 우리는 합성 향미료에 속아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며 섭취하지만, 미량영양소가 결여된 식재료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든든하지 않고 계속 먹을 것을 갈구하게 된다. 

합성 향미료는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원물과 함께 쓰일 때도 있다. 커피에 합성 커피향을 넣어 향미를 강화하는 것이 그 예다. 외국인들이 그 맛을 칭찬해 마지않는 의외의 먹을거리 중 하나인 거리의 자판기 커피에는 커피에 더해서 합성 커피향이 들어간다. 물론 시판 중인 일부 커피 음료에도 합성 커피향이 들어 있다. 초콜릿에도 카카오와 함께 초콜릿향이 첨가된다. 딸기 요구르트에는 진짜 딸기와 함께 딸기향이 첨가된다. 합성 향미료는 음료나 디저트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사용된다. 합성 향미료는 한식의 근간인 육수에까지 진출했다.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 ‘소고기 가루’라고 불리는 제품이 있다. 은색의 커다란 통에 든 흰색 가루인데 제품명은 ‘소고기 맛 분말 시즈닝’이다. 

인스턴트 햄버거나 프렌치프라이가 정크 푸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정크 푸드임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이들 음식도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합성 향미료는 우리 몸의 향미 시스템을 파괴시키고 오작동하게 만들어 과식과 비만을 조장한다. 건강을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자체에 내재된 잘못된 정보로 인해 건강을 파괴할 때까지 먹게 만드는 음식을 ‘프랑켄푸드’라고 저자는 칭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프랑켄푸드와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현대 맛 산업이 만들어낸 거대한 인공 맛의 세계, 가짜 맛의 매트릭스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의 탐색은 자연적인 맛에 대한 상찬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도 맛과 향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음식과 인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과학적 탐색이 이 책의 주 내용을 채우는 이유이다. 

뇌가 커지자 자연선택은 입과 코 안을 포함해서 사람의 머리 전체를 재설계했다. 이때 후각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대부분 포유류는 가로판이라는 뼈가 코 안을 둘로 나눈다. 음식물을 씹으면 입 뒤쪽에서 향이 퍼지지만, 이 뼈가 향이 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동물은 주변 냄새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유인원은 진화하면서 가로판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 입에서 비강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쪼그라들었다. 그래 봤자 그 차이는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이 덕분에 우리 조상은 향미를 경험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음식을 씹을 때, 이 뒤쪽 통로를 통해 휘발성 화합물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면서 후각 수용기에 도달한다. 음식을 씹고 삼킬 때 숨을 내쉼으로써 향미 화합물로 가득 찬 공기가 비강으로 내보내진다. 코의 뒤쪽에 전달된 음식의 냄새는 혀에서 오는 미각과 합쳐져 향미를 구성했다. 

영양학은 음식을 일종의 연료로 생각한다. 반면 우리 선조들은 음식을 신성시했고 먹는 것은 성스러운 행위였다. 음식은 그것이 만들어진 토양과 바다의 미세 환경 정보를 내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음식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운반해 주는 언어에 가깝다. 음식이 세포에 도달했을 때 이 메시지에 손상이 없어야 우리는 건강할 수 있다. 

식품산업이 가진 향미 기술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있다. 식품업계는 이 게임을 고작 50년 조금 넘게 했을 뿐이다. 그들은 바닐라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데는 성공했다. (중략) 버터 맛 감자칩, 나초치즈 맛 도리토스는 1그램당 5칼로리다. 딸기맛 요구르트는 1그램당 1.2칼로리다. 그에 비해 진짜 딸기는 1그램당 0.32칼로리다. 진짜 딸기는 향미 엔지니어링의 걸작이다. 1리터로 100킬로미터를 가는 자동차와 동급이다. 인간은 이렇게 쥐꼬리만 한 칼로리로 이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지혜를 회복하는 것이 가짜 맛의 매트릭스를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단언한다. 달콤한 가상의 맛 세계에 안주할 것인지, 고통스럽더라도 향미가 인도하는 진짜 맛의 지도를 찾아 나설 것인지,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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