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가 발견한 지도자의 조건
막스 베버 가 발견한 지도자의 조건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8.03.0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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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학자 웨이너(Myron weiner)는 ‘진정한 리더십은 오직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맹목적인 상태가 아니라, 이성적인 입장에서 한 개인을 추종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한다’고 말했다. 리더십은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런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는 어떤 모습일까.

20세기 초반, 막스 베버는 독일과 영국 등 유럽 나라들을 둘러보며 이상적인 정치가의 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막스베버(1864~1920). 근대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 현대사회과학에 지대한 영항을 미쳤다.
막스베버(1864~1920). 근대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 현대사회과학에 지대한 영항을 미쳤다.

“정치란 정열과 통찰력을 동시에 가지고, 단단한 판자에 강하고 천천히 구멍을 뚫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도자임에 틀림없고, 지도자일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솔직히- 영웅일 수 밖에 없다. ... 세계가 그의 입장에서 보아 너무 어리석거나 또한 야비한 경우에도 좌절당하지 않을 사람, 무슨 일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오직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의 천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 의한 삶’, ‘정치를 위한 삶’

베버가 ‘정치에의 천직’을 주장하게 된 것은 그가 당시 독일의 정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인데, 베버는 정치가의 유형을 ‘정치에 의한 삶’과 ‘정치를 위한 삶’을 구분했다. 그는 이 둘이 서로 상보적이며 따라서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통찰을 발휘했다.

그 결론은 ‘지도자 민주주의’라는 것인데 베버는 여기에 국민투표를 통해 카리스마적 지도자, 즉 대중으로부터 갈채와 환호를 받는 로마의 시저와 같은 지도자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봤다. 베버는 이를 ‘지도자 선택의 시저주의적 전환’이라고 불렀다.  

베버는 20세기 초반 독일의 지독한 관료주의에 염증을 냈는데, 그가 보기에 모든 관료제는 자본주의라는 합리적 계산 시스템이 국가에 적용될 때 등장하는 당연한 결과였다.

베버는 이러한 관료적 시스템을 ‘머신(Machine)’이라고 불렀는데 이 기계적 머신은 산업 현장만이 아니라 정당에도 등장해서 정당과 의회, 그 자체가 몇몇 인물들을 중심으로 거수기 내지는 실행도구로 전락한 정치인들에 의해 영혼 없이 돌아가는 상황을 개탄한 것이다.

베버는 그러한 독일 정치 상황을 극복하고자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봤다. 물론 그러한 카리스마는 정치에 대해 천직으로서 소명을 받은 자여야 했다.

그러한 지도자는 국민투표에 의해 갈채를 받으며 민주주의를 ‘시저적인 전환’으로 돌리게 되고, 관료기구들을 그의 지도력에 복종시켜서 ‘머신을 가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베버에게 이상적인 지도자란 바로 주권자로부터 갈채를 받는 지도자를 의미했다. 베버는 국민투표에 의한 지도자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치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과 윤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 그는 타고난 전략과 지도력으로 프랑스의 독자적 세력화에 성공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 그는 타고난 전략과 지도력으로 프랑스의 독자적 세력화에 성공했다.

먼저 정치가는 세 가지 자질 즉 정열, 책임감, 통찰력을 가져야 하는데, 정열이란 사상성을 가진, 그래서 현실에 대한 정열적 헌신을 말한다. 한편 통찰력은 내적 침착과 평정에 의해서 현실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이는 사물과 인간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상황을 객관화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베버는 윤리에 관한 문제를 현실정치와 이상정치에 대한 조합적 특성으로 인식했다.

이는 ‘책임윤리’와 ‘심정윤리’라는 것인데, 책임윤리는 결과를 따지는 목적합리성을 말하며 심정윤리는 수단으로서 가치 합리성을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지도자의 자질로서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할 수 있는 점을 들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빵은 둘로 나눠도 여전히 빵이지만 아이는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자가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췄다는 것이다.

베버는 이러한 책임윤리와 심정윤리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이 둘을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정치에 천직’을 가진 진정한 인간이라 본 것이다. 따라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은 윤리를 알아야 한다고 베버는 주장한다.

정치가의 카리스마

막스 베버는 특히 정치가의 카리스마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예외적 상황’과 ‘사명’을 강조했다. 예외적 상황이 필요와 흥분의 상태를 결정한다고 생각한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출현할 때 사람들에게 희망이 생기고 그래서 흥분하게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카리스마는 그 자신의 비일상성으로 인해 일상성과 마찰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무기력으로부터 행동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합리화된 세계에서는 카리스마가 퇴조하게 된다. 결국 카리스마는 전통적인 방법이든, 합법적인 방법이든 기존 질서를 지배하는 모든 법칙을 돌파해내는 추진력이며 창조력이 된다. 베버는 이와 같은 정치인의 윤리와 카리스마가 제도화된 일상의 관행이든, 합리적 규율에 의한 관행과 대립되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막스 베버는‘지도자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지도자의 천직으로서 소명을 강조했다. 그러한 점에서 박정희와 김영삼은 정적이라기 보다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경쟁하던 시기의 두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막스 베버는‘지도자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지도자의 천직으로서 소명을 강조했다. 그러한 점에서 박정희와 김영삼은 정적이라기 보다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경쟁하던 시기의 두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위대한 카리스마적 자질을 가진 정치가’라는 베버의 용어는 지도자란 시대의 운명을 인간답게 견디는, 그래서 인생에서 당면하는 난관들과 투쟁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고상한 인격’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학자 뢰벤슈타인의 분석은 흥미롭다. 그에 의하면 비스마르크는 그 지배의 폭에서 볼 때 시저주의적이라 할 만하지만 국민투표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군주의 신임에 의존했기에 전형적인 시저주의적 정당성을 결여했으며 또한 정치지도자로서 엄청난 퍼스낼리티를 소유했으나 카리스마를 갖지 못했다.

마하트마 간디나 네루는 카리스마적 마력은 가졌으나 그들의 카리스마는 비정치적 기반 위에 위치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지도자들과는 달리, 드골은 자신에 대한 정당화를 국민투표와 환호에 의해 확인했던 진정한 지도자였는데, 그는 동시에 권력 장악과 통치행위에 있어서도 진정으로 시저주의적인 면모를 발휘했다는 것.

뢰벤슈타인은 다만 드골의 지배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중심리와 선동정치의 모든 계략에 대한 정통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베버의 통찰을 바탕으로 이해한다면, 드골의 그러한 선동과 대중심리 역시 드골이 가진 카리스마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지 그러한 카리스마가 위압적이지 않고 매혹적이었던 것 뿐이다.

베버는 ‘지도자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국민투표를 제안했지만, 그에게 국민투표란 사실 선거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 그 자체가 환호와 갈채를 통한 ‘시저주의적 수단’이 된다고 본 것이다. 오늘날 흔히 우리가 선거를 ‘국민적 축제’라고 하는 이유는 이러한 정치철학적 배경이 깔려 있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정치 지도자의 신앙 고백을 듣는 것이다.

베버는 ‘지도자는 인격 그 자체에 대한 추종자들의 신뢰와 헌신에 의해 지배된다’고 정의했다. 로마사 분야 최고 권위자인 몸젠은 “베버는 반자유주의적이 되었던 독일 대중사회에 직면해서 형식적으로 민주적 시저주의로 변화하는 열광적인 귀족주의적 자유주의를 베버는 추구했다”고 평가했다.

독일의 1919년 국민투표는 베버의 ‘지도자 민주주의’ 개념이 만들어 낸 것이다. 베버의 지도자론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그가 직업 정치인이 가진 ‘소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베버는 여기에서 ‘사상성’을 매우 중요하게 언급했다. 사상성, 즉 정치적 지도자는 이념에 투철해야 현실에 헌신적으로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지도자의 열정이 자칫 빗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과 거리를 두는 통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막스 베버의 ‘지도자 민주주의’, 즉 ‘지도자 선택의 시저주의적 전환’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통해 히틀러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결국 통치는 법치(法治)가 아니라, 어쩌면 그 본질에서는 인치(人治)라는 주장은 다시 한번 정치적 지도자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은닉된 지혜(Uncommon Knowledge)’인지도 모를 일이다.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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