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빛나는 건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존경
영화보다 더 빛나는 건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존경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8.03.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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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최고 목표는 묘사하는 내용이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리얼리티를 극단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의 일이든, 과거의 일이든, 상상의 일이든 가리지 않는다.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마주하는 위기와 고난의 시기를 주목한다.

그러나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는 하지만 처칠의 활동 중 2차 세계대전 중의 일부를 비출 뿐이고, 그 마저도 영화적으로 각색되어 있다. 사실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을 어떻게 조명하는가의 문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각을 반영한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이 마주한 극단적 고난의 시기를 다루지만 당시 영국 국민들이 처칠을 믿고 따랐던 것처럼, 지금의 국민들이나 영화인들 조차 그의 위대한 리더십을 존경하고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존재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준 ‘파이니스트 아워’(finest hour)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밤낮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윈스턴 처칠 역시 위대함 못지않게 약점과 실수가 많은 캐릭터였고 정치적으로는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더 많았다. 1차세계대전 당시 터키의 갈리폴리 항구 점령 작전의 실패는 처칠의 치명적 패배로 기록되어 있다.

터키 영토 안에 있는 갈리폴리 항구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바라보는 지리적 요건 때문에 전략적인 가치가 매우 높았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길이 60km, 너비 1∼6km, 평균 수심 약 54m로 동쪽의 소아시아 연안과 서쪽의 유럽으로 돌출된 갈리폴리 반도 사이에 끼여 있다. 유럽과 아시아,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전략 요충지다.

지중해의 지배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다르다넬스 해협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갈리폴리 요새를 먼저 확보해야 했다. 1915년 2월 19일과 25일, 3월 25일에 걸쳐 영국 ·프랑스의 연합함대가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 연안의 방비시설을 포격했으나 포대(砲臺)의 맹렬한 반격과 기뢰(機雷) 등으로 3척의 전함이 격침되고 3척은 대파되었다.

연합군은 4월 25일 갈리폴리 주변에 겨우 상륙했으나 제대로 공격해보지도 못한 채 터키군의 반격에 밀려 후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로 연합군 전사상자(戰死傷者)가 25만 2000명에 이르렀으며, 터키군 사상자도 25만 1000명이나 되었다. 피해는 양측 모두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심리적 사기 면에서는 터키의 압도적 승리, 영·프 연합군의 대참패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미래한국 고재영
@미래한국 고재영

이 작전을 지휘한 최고 책임자는 영국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 적을 만만하게 보고 해군력을 과신했으며 육군과 협력 없이 해군 단독으로 진행한 작전으로 인해 전략적으로도 실패하고 기능적으로도 전력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치명적 작전 실패였다. 결과는 그야말로 ‘묵사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처칠은 해군성 장관에서 물러났다.

위기에서 빛난 위대한 지도자

그런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의 새로운 총리가 되었다. 그를 신뢰하는 분위기보다는 불안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시선이 더 많았다. 처칠이 영국 총리에 취임한 것은 1940년 5월 10일. 당시 히틀러가 군사력을 앞세우며 유럽을 전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지만 영국은 그의 야욕을 막을 힘도 없었고, 주변 국가들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프랑스는 독일군에게 함락된 상태고 미국은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영국이 섬이었던 것처럼 처칠의 정치적 상황도 홀로 불안한 싸움을 해야 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보수당의 주류 세력들은 히틀러와 전쟁을 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한 평화 유지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오직 처칠만이 히틀러의 전략을 꿰뚫고 있었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맞서 싸워야 하다는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처칠이 가진 것은 어떤 위기 상황에도 무릎 꿇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 청중을 격동시킬 수 있는 뛰어난 언변 정도가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맨주먹 만이 무기였을 뿐이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처칠의 신념 덕분이었는지, 히틀러의 오판이었는지 전시 상황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칠의 총리 재임시절에 진행된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독일과의 공중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덩케르크'(1964) '공군대전략' (1969)의 영화포스터.(
처칠의 총리 재임시절에 진행된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독일과의 공중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덩케르크'(1964) '공군대전략' (1969)의 영화포스터.(

1940년 5월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 33만 5000명(프랑스군 12만 명 포함)은 궤멸 직전 구사일생으로 민간 선박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고립 상태에서 영국군이 무너졌다면 영국은 육상 병력을 모두 잃어버리는 셈이었고, 히틀러에게 반격할 수 있는 힘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6월부터 9월 사이에 벌어진 영국 공군과 독일 공군의 치열한 전투는 영국의 승리로 기울고,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미국도 전쟁에 개입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처칠’ 영화들  

1941년 3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를 설득해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통과시키고 서명했다. 미국 방위에 필요하다면 어떤 나라에도 무기를 공급할 수 있는 법안이었다. 이 법으로 영국은 31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는 처칠이 새로운 총리로 임명되고 영국이 극단적인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는 1-2년 간에 집중한다.

최근에 나온 처칠의 영화들. '다키스트아워' (2017)
최근에 나온 처칠의 영화들. '다키스트아워' (2017)

그 때 처칠 총리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보여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가 처칠의 동선을 따라 가는 것은 그의 일생 전부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처칠은 진작부터 히틀러가 독일의 지도자로 등장하는 과정에 주목했고, 그의 캐릭터를 경계했다.

결국 처칠과 히틀러는 전쟁 상황에서 마주쳤고, 처칠은 이겼다. 선동과 웅변으로 권력을 잡고 유럽을 전쟁의 광풍 속에 밀어 넣은 히틀러의 가장 큰 불행은 처칠을 적으로 만났다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다키스트 아워>가 윈스턴 처칠의 비장한 모습을 그린 경우로 주목받고 있지만, 처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200여 편에 이른다.

'처칠의 비밀' 2017
'처칠의 비밀' 2017

주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만든 작품들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의 지도자적 위대함을 부각한다. <다키스트 아워>가 공개된 2017년에도 <처칠>(Churchill)이란 영화가 나왔다. 브라이언 콕스가 연기한 처칠은 1944년 연합군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하기 직전 전쟁 수뇌부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다룬다.

역시 처칠의 리더십에 대한 묘사가 중심을 이룬다. 같은 제목으로 나온 2015년 영화 <처칠>은 <다키스트 아워>처럼 2차 세계대전 중 긴박한 위기에 몰린 영국을 짊어지고 용기와 신념으로 헤쳐 나가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조명한다. <폭풍전야>(The gathering storm, 2002)나 <결전의 시간>(In to the storm, 2009)은 TV 용으로 제작한 미니시리즈. 역시 2차 세계대전의 전황과 위기에 빠진 영국을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전시 지도자의 모습을 장엄하게 다루고 있다.

처칠-2015
처칠-2015

단편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전개에 여유가 있는 TV인 만큼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나 당시 상황에 대한 입체적 묘사가 좀 더 자세히 접근한다. 처칠이 국민들을 설득하고 다가서는 모습도 더 길게 다룬다. 영국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에서도 처칠은 비관과 절망 대신 비장한 희망과 불굴의 용기를 선택했다.

<다키스트 아워>를 비롯한 ‘처칠 영화들’ 역시 처칠의 약점이나 실패를 부각하는 대신 역경 속에서 일어서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조명한다. 처칠의 재임 중 역사적 성공으로 평가되는 ‘덩케르크’ 철수 작전 역시 위기를 새로운 성공으로 바꾼 사례로 꼽힌다. 최근 상영한 <덩케르크>는 처칠이 필사적으로 편 구조 작업을 현장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다.

결전의 시간-2009
결전의 시간-2009

‘덩케르크’ 철수 작전 역시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흑백 시절에 만든 영국영화 <던커크>(1958), 프랑스 군 입장에서 만든 <덩케르크>(1964)가 있었다. 영국이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한 1940년 6월 전후의 공군 전투는 <공군대전략>(Battle of Britain, 1969)이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공통점은 위기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고 불굴의 투지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부각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며 위기를 이겨낸 모든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다. 다만 어느 부분을 어떤 시각에서 조명하는가에 따라 사회를 통합하고 국가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거름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는 도구로 동원될 수도 있다.

폭풍전야-2002
폭풍전야-2002

이른바 샘물을 양이 마시면 젖을 만들고 독사가 마시면 독을 만든다는 것처럼 특정한 인물이나 기록은 객관적인 대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분열 조장하는 한국 영화들

최근에 등장하는 한국 영화들 중 일부는 한국 사회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데 더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다키스트 아워> 같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긍정의 노력과 크게 대조된다.

최근 개봉한 <1987>의 경우 지난 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벌어진 반정부 학생운동 중 경찰에 잡혀 취조를 받던 중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아 결국 숨진 연세대 이한열 사망사건을 소재로 다루면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대해 부각하지만 정작 박종철이나 이한열이 어떤 성향을 가진 운동가였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영화만으로 본다면 두 청년은 한없이 순박하고 오로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해 민주주의 실현을 염원하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러 증언이나 기록을 살펴보면 박종철이나 이한열은 인민민주주의에 경도된 좌파운동권 멤버들로 보인다. 그들이 지향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무너트리고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화 뒤에 숨은 좌파 운동

마찬기지로 1987년의 ‘민주화’는 일반 시민들이 염원했던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자유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그 외피 속에 포진한 친북적 좌파 세력들의 위장 민주화라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그런데도 <1987>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내막, 맥락을 배제한 채 오로지 선과 악의 대결처럼 묘사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부정하는 조직화된 학생운동권의 주변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방어하는 경찰 조직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폭력 조직처럼 묘사할 뿐이다. 결국 영화 만으로는 이념적 가치가 사라진 채 적과 아군의 개념이 전복되어 있을 뿐이다. 5·18 광주 사건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2017)나 <화려한 휴가>(2007) 같은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영화 속에서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 군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학살자들처럼 묘사하고, 각종 무기로 무장한 채 군인들과 대치하며 전투 상황을 벌인 무장 시민들은 악에 대항하는 의적처럼 그린다. 광주 사건의 객관적인 상황은 사라지고 오로지 선이 악에 짓밟히는 것 같은 아수라 상황만 부각할 뿐이다.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도, 어떤 화해와 치유도 제시하지 못한 채 더 지독한 증오와 분노만 부추기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다키스트 아워>를 통해 관객이 영화 속에서 보는 것은 위기 상황을 불굴의 의지로 헤쳐 나가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이지만, 밖에서 보는 것은 위대한 정치인을 선양하려는 영국이나 미국민들의 존경심이다.

영화는 처칠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 보는 내내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처칠보다 더 위대했으면 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기념할 만한 영화나 흔적은 언제쯤이나 보게 될까? 

= 조희문 미래한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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