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표팀 감독 선임…결론은 신태용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63ㆍ독일)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축구국가대표팀(이하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7월 4일 신태용 전 U-20월드컵 대표팀 감독(46)을 후임자로 내정했다.
▲ 독일 위르겐 클린스만 (Jurgen Klinsmann) 감독(좌)과 신태용 감독(우)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이 막바지에 이르며 외국인 감독의 선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즉시 투입 가능한 국내 지도자의 수를 고려하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이제 새 감독이 선임되었으니 한국 축구의 앞날에는 과연 밝은 서광만 비치게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바람과는 달리 녹록지 않다. 당장 신태용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를 가리게 될 8월 31일 이란전(홈), 9월 5일 우즈벡전(원정)을 대비해야 한다. 일정도 촉박하지만 현재 대표팀이 처한 위기 상황을 고려해보면 부담은 더 가중된다.
현재 남아 있는 두 경기는 그 중요성 측면에서 한국 축구의 단기적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감독 교체로 인한 혼선 및 승리에 대한 극심한 부담감에 직면한 선수단을 잘 수습해서 우선 급한 불을 진화해야 한다. 특히나 대표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 축구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만약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경우의 후폭풍은 상상 이상의 규모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신임 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가 아니라 차라리 ‘독배’에 가깝다. 2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리는 중차대한 2연전을 벌여야 하고 실수를 범하는 경우 전임 감독의 책임까지 덤터기를 쓸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자신의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험난한 도전에 나선 신태용 감독에게는 무엇보다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신태용이 특급 소방수라면 방화범은 누구인가?
신태용 감독은 본래 슈틸리케호 출범 당시 수석코치로 기용되었으나 2015년 초 리우올림픽팀을 이끌던 고 이광종 감독이 투병을 위해 사임한 뒤 후임 감독으로 긴급 차출되었다. 결국 이전 대회에서 동메달 획득에 성공한 홍명보호의 성적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올림픽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 1위(2승1무)를 차지하며 8강에 오르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올림픽 종료 이후 신 감독은 슈틸리케호에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U-20 월드컵을 앞두고 안익수 U-20 대표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대회 개최를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에 다시 호출된 것은 ‘특급 소방수’ 신태용이었다. 완성도 있는 살림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거니와 20세 이하 선수들과 일면식도 없던 그는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취임한 시점은 비시즌인 겨울이었기에 선수들의 폼은 현저히 떨어지고 실전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체크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는 백지 상태에서 34명의 대규모 예비 엔트리를 소집하고 이들을 경쟁시켰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실패한 전임 감독의 시스템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고 그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빛을 발하며 이 대회에서 16강행에 성공했다.
각 연령별 팀마다 지도 방식은 상이하다. 특히 20세 이하 선수들의 경우 심적인 측면에서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성인팀을 지도하듯 선수들을 다루면 곧바로 균열이 발생한다. 특히 일상 속에서 연봉과 대우의 격차를 경험하는 성인 선수들과는 달리 청소년팀은 소수의 플레이어가 관심을 독차지하는 경우 나머지 선수들의 사기가 급속도로 저하되기에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이번 U-20 월드컵의 보이지 않는 적은 이승우와 백승호에게만 집중된 언론과 대중의 일방적인 관심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올림픽과 U-20 월드컵에서 거둔 성적과 그의 지도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자신의 팀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닌 불을 끄라는 일방적인 요구뿐이었다. 그가 소방수라면 과연 불을 지른 방화범은 누구일까? 협회 관계자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반복되는 대표팀 감독 수난사, 그들만의 책임인가?
신태용 감독은 우리 대표팀의 79번째 감독이다. 대표팀을 상시 전담하는 전임감독제가 실시된 1992년 이전의 기록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 이후 감독들의 평균 임기는 1년 6개월로서 지도자가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팀을 만들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허정무 감독(4년 9개월), 슈틸리케 감독(2년 9개월)처럼 장기간 재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 감독들의 실제 재임 기간은 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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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제주 유나이티드와 전북 현대의 경기, 제주 이창민이 측면을 돌파하고 있다. / 연합 |
전임감독제 시행 이후 15명의 감독 중 7명만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마쳤고 8명이 경질 또는 사임을 하게 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박수를 받으며 물러난 지도자는 모두가 기억하듯 2002년 월드컵의 사령탑인 거스 히딩크 감독뿐이며, 2010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한 허정무 감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더 나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는 팬들의 비난에 시달린 끝에 계약기간을 연장하지 않았다.
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 정도가 아니라 ‘독배’에 가깝다고 묘사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간 협회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항상 감독 교체라는 임시 방편으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했는데 이때마다 스타 선수 출신의 인물들이 지도자로서 채 무르익기도 전에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며 희생양으로 소모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차범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홍명보 감독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신태용 감독 역시도 비슷한 형태로 희생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대표팀 감독 선발에 대한 권한이 협회에 있는 상황에서는 결국 대표팀 운영에 대한 책임도 협회와 감독 공동의 몫으로 봄이 타당하다. 하지만 그간 협회는 대표팀의 저조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기는 커녕 감독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데 급급했다.
완성된 지도자 영입인가? 양성인가?
우리 협회는 지명도 있는 외국인 명장을 영입하기 어려운 이유로 빠듯한 재정 상태를 꼽는다. 중국 프로리그의 성장세와 더불어 유명 감독들이 일제히 중국으로 향함에 따라 그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우리 대표팀의 경우 요구조건이 까다로운 탓에 어지간한 사명감을 가지지 않는 이상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지도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협회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 대표팀 감독직은 외국인에게는 얻을 것은 적고 부담은 큰 비효율적인 자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답은 쉽게 나온다. 원하는 작물을 수입할 수 없으면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어서 그 결실을 수확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농사를 지을 때 가장 귀한 것은 종자(種子)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투자나 관리 없이 국내파 지도자 육성을 부르짖는 것은 명백한 ‘공염불’이다. 이러다가 정작 종자를 다 소모하고 나면 다시금 수입만이 답이라고 외치며 검증되지도 않은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지는 않을지 여전한 의구심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대표팀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단기적인 성적과는 별개로 신태용 감독이 자기 색깔을 가진 팀을 완성할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호흡하는 코치진이 훗날 대표팀 감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작업에도 힘써야 한다.
현재 세계 최강인 독일 대표팀에도 마냥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의 침체기는 독일 축구를 강타했고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들은 흔들림 없이 훌륭한 지도자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현재 독일을 11년째 지휘 중인 요아힘 뢰브 감독은 전임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 시절 수석코치였고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지휘봉을 넘겨받은 인물이다. 감독에 대한 믿음을 중시하고 틀림없이 정확한 인물을 그 자리에 기용하는 독일의 역대 대표팀 감독은 뢰브를 포함해 총 10명뿐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 숫자보다도 적다.)
2004년 12월 우리 대표팀은 1.5군 수준의 멤버를 가지고 정예 멤버로 구성된 독일 대표팀을 3대1로 격파한 바 있다. 당시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은 끝나지 않았다며 기뻐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독일은 확고부동한 세계 최강이 되어 있고, 우리는 지금도 어떤 감독이 좋은 감독인지에 대한 답을 찾느라 바쁘다. 우리 협회에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다. 좋은 협회가 있다면 그 안에서 반드시 좋은 감독은 나오게 마련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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