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와 싸워 이긴 의사 ‘켄트’
에볼라와 싸워 이긴 의사 ‘켄트’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5.01.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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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포트] 미국을 울린 휴먼 스토리
▲ 에볼라 감염에서 살아난 켄트 블랜틀리

의사 켄트 브랜틀리는 미국인 최초로 에볼라에 감염됐다가 살아난 사람이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의료선교사로 에볼라 환자들을 치료하다 에볼라에 감염돼 지난해 8월 2일 미국으로 후송돼올 때 서부 아프리카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로부터 그가 살아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었다.

그리고 3주 뒤인 8월 21일 의사 켄트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이기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 켄트 의사는 에볼라에 감염된 다른 미국인들에게 에볼라 바이러스 항체가 있는 자신의 혈장(血漿, plasma)을 기부하며 그들의 생명을 구해 칭송을 받고 있다.

텍사스의 한 병원에서 에볼라에 감염된 라이베리아 출신 환자를 치료하다 에볼라에 감염된 간호사 니나 팜은, 켄트 의사의 혈장을 받고 완쾌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켄트 의사는 이타적인 분으로 천사와 같다. 그분은 제게 두 번째 삶을 주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력 잡지인 타임은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에볼라와 싸우는 사람들’ 중 대표 인물로 켄트 의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손길 덕분에’ 기적같이 살아나

기독교인인 켄트는 어려서부터 우간다, 온두라스, 탄자니아, 하이티 등에 단기 선교활동을 다니면서 의료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의사가 된 그는 2013년 10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의료선교사로 나갔다. 미국 기독교 선교구호 단체인 ‘사마리아인의 지갑’(Samaritan’s purse) 소속으로 당시 라이베리아 몬로비아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의료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간 그는 2014년 3월 말 에볼라가 그 지역에서 발생 후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됐다.

에볼라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어 켄트는 늘어나는 에볼라 환자들을 격리시켜 확산을 막으면서 환자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7월 23일 그는 고열을 느끼고 말라리아라고 생각했다. 천만 다행인 것은 당시 아내와 두 자녀는 가족 결혼으로 미국에 있었다.

고열을 앓고 있던 켄트는 검사 결과 말라리아는 아니었고, 혹시 에볼라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동료 의료팀을 통해 테스트를 받았다. 3일 뒤 팀 리더는 켄트의 침대방 밖에서 창문을 통해 그가 에볼라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 순간, 정말 깊은 평안 가운데 있었다.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평안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켄트는 알겠다며 다음 계획이 뭔지 차분히 물었으며,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날 저녁 다른 선교단체 소속으로 에볼라 병동에서는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를 돕던 59세의 미국인 낸시 라이볼도 에볼라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졌다.

▲ 에볼라 감염에서 나온 미국인들. 이들 중 3명이 켄트 의사가 제공한 혈장을 통해 완쾌됐다

켄트가 속한 단체인 ‘사마리아인의 지갑’은 그가 좀 더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 나라로 이송하려고 했지만 에볼라에 감염된 화자를 비행기에 태우지 않으려는 항공회사들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이들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국립건강연구소(NIH)를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신체면역시스템을 강화시키는 ‘ZMapp’이라는 약을 실험한 과학자들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이 약은 원숭이에 임상실험을 했지만 인간에게는 한 적이 없어 효능과 안전도가 검증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이 약은 라이베리아 이웃나라인 시에라 리온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이런 이유로 이 약을 쓰지 않기로 한 상태였다.

‘사마리아인의 지갑’은 시간이 급한 데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약을 쓰기로 하고 시에라 리온에 있던 약을 긴급 공수했다. 켄트 역시 그 약의 투여를 받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약의 양이 한 사람에게만 쓸 수 있을 만큼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켄트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상태가 더 좋지 않았던 낸시에게 그 약을 사용하라며 양보했다. 그날 밤 켄트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열이 화씨 105도(섭씨 40도)까지 올랐고 숨을 1분에 30여 차례 거칠게 쉬는 등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를 지켜보던 팀 리더는 낸시에게 투여하려던 약을 나눠서 켄트에게도 사용하자고 결정했고 마침내 켄트는 그 약을 투여받게 됐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들을 주실 것”

약이 투여된 후 심한 경련이 있었다. 약 1시간 뒤 경련이 멈추면서 열은 내려갔고 숨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낸시 역시 약을 투여받은 후 많이 좋아졌다. 며칠 뒤 조지아 애틀란타에 있는 에모리 병원으로 후송할 비행기가 도착했고 켄트는 걸어서 앰뷸런스를 타고 비행기에 탑승할 정도가 됐다.

켄트는 지난 9월 가족들과 함께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인 ‘사마리아인의 지갑’을 방문했다. 그는 자신이 에볼라에 감염됐을 때 자신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 여러 방법들을 찾았던 단체 관계자들에게 앞에서, 아내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아들에게 ‘10,000 reasons’이라는 제목의 복음성가 앞부분을 불렀다.

“The sun comes up, it's a new day dawning, It's time to sing Your song again, Whatever may pass, and whatever lies before me, Let me be singing when the evening comes, Bless the Lord, O my soul” (태양이 뜨고 새 날의 새벽이 오면 다시 하나님을 찬송할 시간이 된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 앞에 무슨 일이 놓여 있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계속 찬송할 것이다. 내 영혼아, 하나님을 송축하라)

치사율 90%의 에볼라에 걸렸다가 기적같이 나은 자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는 그의 고백이었고 또 그렇게 살라는 당부를 아들에게 했던 것이다.

켄트는 “나는 에볼라에서 나은 이 이야기를 계속 말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라며 “당신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말하고 격려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 자신이 속한 '사마리아인의 지갑' 단체 대표인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로부터 새 의사 가운을 받은 켄트

‘사마리인의 지갑’ 단체 대표로 세계적 복음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이날 켄트에게 그의 이름이 새겨진 새 의사 가운을 주며 계속 의료선교활동을 이어갈 것을 격려했다.

그래함 목사는 “우리는 켄트를 보며 세밀한 부분까지 일하신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었다”며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할 아들을 보냈고 아들은 피 흘려 죽으며 우리 모두를 구원했다. 하나님과 같은 신이 없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신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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