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전쟁
미국과 러시아의 에너지 전쟁
  • 미래한국
  • 승인 2015.01.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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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최근 러시아와 미국이 제2의 냉전을 벌이고 있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작년 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이를 규탄하고는 있지만 별다른 행동을 벌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와 실질적인 분쟁은 야기되지 않고 있지만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냉랭해졌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1945년 이래 소련이 몰락할 때까지 약 40년 정도 지속되다가 1990년 소련의 붕괴로 인해 종식된 ‘냉전’의 본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작금 진행되는 러시아와 미국의 외교 안보 상황을 제2의 냉전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냉전이란 서로 도저히 전쟁을 벌일 수 없는 두 개의 초강대국들 사이에 전개되는, 전쟁도 아니며 그렇다고 평화라고 말할 수 없는 역사상 특정 시기의 예외적인 미소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작금의 미국과 러시아 관계를 냉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두 나라 특히 러시아가 미국과 전 지구적 차원에서 경쟁을 벌이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대등한 수준에서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나라가 아니다.

냉전 당시 러시아는 비록 경제력은 미국보다 약할지라도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과 대등하거나 혹은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였다. 소련은 어느 경우라도 미국을 전면 파멸시킬 수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막강했다.

그러나 오늘의 러시아는 경제력으로는 이탈리아 수준이며 군사력 역시 잔존한 핵무기를 일부 제외한다면 중국보다도 막강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나라다.


미국 석유가격 조작에 직격탄 맞은 소련

반면 미국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압도적인 패권국이다. 미국의 경제력은 아직도 2위인 중국의 2배에 이르며 미국의 군사력은 군사비 기준 중국의 5배가 넘는다.

미국 군사력이 약화됐다면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패권국의 기본적인 군사력인 해군은 막강하다. 미 해군은 지금 현재 미국 다음으로 강한 해군 14개국 해군을 다 합친 것만큼 강하다.

미국 다음으로 강한 14개 해군국 중 12개국은 미국과 동맹이거나 우호적인 나라이고 단 두 나라만이 미국과 적대적인 상황에 있다.

과거의 소련이 그리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꿔왔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향해 러시아의 막강함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 자신 막강한 대통령임을 과시하기 위해 과감한 외교정책을 벌이면서 동시에 웃통을 벗고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 등을 연출함으로써 막강함을 과시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국가의 ‘막강함’은 국가의 경제력과, 그 경제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군사력에 의거하는 것으로 과시하지 않아도 다른 나라들이 알아주게 돼 있다.

다만 지난 수년 동안 러시아는 석유 및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가격이 비교적 높게 유지됐던 덕택에 실제 러시아의 전략적 포지션보다 더 큰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고 푸틴 대통령도 국제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구소련 시절부터 막강한 산업능력보다는 방대한 지하자원을 경제력의 기본으로 삼았던 러시아는, 세계 경제 상황의 변화 혹은 미국의 석유 가격 조작에 의해 경제적으로 직접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소련군에게 지급할 동절기용 방한 군복을 제작하는 소련 봉제 공장의 여성들

이미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겠지만 소련이 망하던 해인 1990년 서울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50원 수준이었다. 2014년 서울 휘발유 1리터 가격이 2000원에 육박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석유 값의 변동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련제국의 붕괴를 기치로 내건 레이건 대통령 시절 CIA의 케이시(William Casey) 국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체크한 것이 국제유가라고 한다. 유가가 오른 것 같으면 당장 사우디아라비아에 전화를 걸어 석유를 더 증산할 것을 독촉했다.

국제 석유가격을 낮게 유지함으로써 소련으로 유입되는 달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석유가격을 조작, 소련을 붕괴시키려던 당시의 미국은 국제유가를 ‘장난질’ 할 수 있을 정도로 석유가 풍부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미국의 석유 장난질로 인한 경제파탄을 이겨내지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다.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원천적으로 허약한 기반에 구축된, 그것도 과학기술에 의거한 산업이 아니라 천연자원 채굴 및 수출에 의존하던 1차원적-즉 군사 차원만의-강대국 소련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2015년을 맞이하는 푸틴은 국민들을 향해 험난한 경제 파탄의 난국을 헤쳐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는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말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노력보다 미국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2014년 후반기 이후 갑자기 폭락하기 시작한 국제유가는 반년 사이에 반 토막이 나버렸다.

2014년 초반 배럴당 110달러 대를 유지했던 국제유가는 2015년 1월 현재 52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석유 1배럴당 가격이 100달러를 유지해야 재정수지가 맞는 나라인데 도무지 가망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유가 폭락은 미국에 그 원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소위 유가를 가지고 ‘장난질’을 쳤기 때문은 아니다.

▲ OPEC 회의 모습

미국의 용감한 석유업자들이 수십 년 이상 각고의 노력 끝에 채굴하는 데 성공한 ‘셰일 석유’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바람에, 미국은 2014년 그 이전 해보다 1일당 400만~500만 배럴 정도 석유를 덜 수입할 수 있었다.

일본이 매일 수입하는 양과 비슷한 양이 국제시장에 남게 된 것이다. 석유가격은 당연히 내려갈 것이다. 그런데 석유를 감산함으로써 이에 대응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셰일 석유 업자들을 파탄낼 요량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를 무제한 채굴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을 제어해줄 수 있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는 배럴 당 30달러 정도면 채굴할 수 있으니 배럴당 생산비가 평균 60달러가 드는 미국의 셰일 오일 업자들을 문 닫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직격탄을 맞은 것이 미국의 셰일 오일 업자들이 아니라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생산 단가가 비싼 나라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가 일반적인 상품이 아니라 전략 물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미국은 석유가격이 내려가면 수입을 해다 쓰면 되고, 석유 값이 오르면 다시 채굴을 시작하면 될 뿐이다. 땅속에 있는 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미국 땅에는 자료에 따라 약간씩 상이하기는 하지만 무려 3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무진장한 셰일 석유가 매장돼 있다. 미국은 러시아를 냉전시대처럼 고사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라이벌은 중국이지 러시아가 아니다. 미국은 오히려 러시아를 몰락하지 않도록 하는데 전략적 이익이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인도와 더불어 부상하는 중국을 제어해 줄 수 있는 나라다.

냉전 당시 미국은 소련을 붕괴 시키는 데 중국을 활용했다. 미국은 지금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기 위해 러시아를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2006년 푸틴은 러시아의 우화를 인용해 미국, 중국, 러시아의 관계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늑대와 여우와 토끼가 한 구렁텅이에 빠졌다. 여우가 늑대에게 말했다. “늑대 동무 누구부터 잡아먹어야 하는지 아시죠?” 늑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여우를 먼저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푸틴의 비유는, 늑대는 미국이고 여우는 구소련, 토끼는 중국이었다. 지금은 처지가 바뀌었다.

중국이 여우 신세가 됐고 토끼가 러시아이다. 미국은 아직도 늑대다. 문제는 토끼와 여우가 힘을 합쳐도 늑대를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이다. 푸틴의 비유처럼 늑대는 이번에도 토끼(러시아)를 먼저 먹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셰일 가스와 석유는 미국을 에너지 독립국으로 만들 것이며 에너지 독립국이 된 미국은 남들과 다투거나 경합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일에 관심을 꺼버린 나라가 될까봐 두렵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과대평가하고 미국과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옳지 않은 것이다. 대세, 즉 큰 흐름을 재빨리 읽을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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