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과연 ‘정상’인가?
남북정상회담, 과연 ‘정상’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1.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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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 3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연합

“그걸 하는 데 있어서 전제조건은 없습니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전제조건이 없다고 밝혔다. 전제조건이 없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만한 발표였다.

우리 내부에서의 논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북핵문제에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비정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유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북핵협상 원칙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때문이다.

‘전략적 인내’라는 것은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중단하고 국제 의무를 준수하며 핵개발에 관한 기존의 합의를 이행할 의지를 보여야 북한과 대화와 협상에 나서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다. 한미공조란 이러한 미국의 대북정책에 한국 정부가 협조해 주는 것을 말한다.

북한과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북핵폐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의 ‘무전제 정상회담’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비정상에 속한다. 그러니 대북정책에 한미간에 엇박자가 나온다는 관측이 등장한다. 그 배경을 들여다보자.


위험한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

2013년 미의회조사국(CRS)은 북핵문제에 관해 매우 예민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내용은 국내 언론에 상세하게 보도되지는 못했다. 본지 <미래한국>이 입수해 살펴 본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북한: 대미 관계와 핵 외교, 내부 상황>이라는 제목의 미의회 조사보고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이 핵개발에 진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만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보고서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음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계산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반문했다. 아울러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을 포함해, 미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는 북한의 역량으로 인해 미국의 군사적 대응 수위에 변화가 있었는지, 또 핵문제에 대한 6자회담 재개가 여전히 미국 정부의 목표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으로 인내를 하는 동안 북한은 할 것을 다 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 가운데 주목을 끄는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한 분석이었다.

보고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스스로 핵무기 폐기와 군축에 반드시 동의해야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좀 더 교섭을 추진할 경우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한국 사이에 틈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미국이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새로운 대북제재에 동의했지만 중국 지도부의 후속 발언들은 중국이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지적이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수사적으로 비핵화 목표에 충실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중국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이러한 인식은 중국의 북핵 위장전략에 남한 정부가 포섭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러한 문제로 인해 미국의 북핵 해결 문제가 더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북핵 폐기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북한과 관계 개선을 꾀할 경우 한미공조의 균열은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과 함께 지난해 11월 북한이 소니픽처스를 해킹하고 영화 <인터뷰>의 상영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와 같은 테러 경고를 함으로써 오바마 정부와 미의회의 인내력에 한계를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지난 1월 13일 미하원외교위원회 청문회장에서 민주당과 공화당할 것 없이 모두 북한을 성토하며 강공 대응 주문이 빗발친 상황에 대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지금까지 오바마 정부가 사용하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란 표현은 이제 워싱턴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미국은 대북강경노선을 이어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소니영화사 해킹 사건과 관련하여 추가 대북 제재를 담은 새 행정 명령을 즉각 승인한 바 있다.

북한의 입장은 최근 워싱턴의 대북 강경 입장의 부활로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11월 김정은 암살영화를 제작한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주범으로 북한이 지목되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 의회는 북한에 대해 ‘가능한 모든 제재’를 언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경 대응의 정도는 북한 김정일이 가장 크게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북한해외자금 동결을 포함했다. 실현 가능성으로는 미지수이지만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내 정치인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5·24 조치’ 해제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정상회담은 빠를수록 좋다’고 하면서도 ‘무조건적인 5·24조치는 안 된다’는 다소 역설적인 코멘트를 했다. 5·24조치는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같은 해 5월 24일 정부가 내놓은 대북제재조치다.

제재의 내용은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투자 금지, 대북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인도적 지원까지 모든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조치에 따르면 아무리 인도적인 목적이라 해도 사전에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대북지원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북한은 남한 당국에 이러한 5·24조치를 풀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압박해 왔다. 지난해 9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남한 당국이 각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실천적인 조치로 남북관계 개선의 장애를 스스로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이 발표되고 나서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등 30여 개 단체로 구성된 ‘5·24조치 해제를 위한 경협·종교·시민단체 연대’가 발족됐다.

▲ 5‧24 조치해제를 촉구하는 진보좌파진영의 행사 포스터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있던 다음날 광화문광장에서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촉구 남북경협기업인 선언 및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시위였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문재인 의원도 5·24조치 해제를 적극 주장하며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에도 5.24조치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느냐”라고 날선 공격에 나섰다.

천호선 대표가 지목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김태호, 유기준, 이인제 등 새누리당 지도부 의원들이다. 지난해 8월에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이들은 “드레스덴 구상 등 현 정부의 통일정책을 본격적으로 펴려면 5·24조치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적극 제시했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남북관계 물꼬를 트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5·24조치”라고 했고, 이인제 최고위원도 5·24조치는 “시효가 지난 정책”이라고 타박했으며 유기준 의원은 “5·24조치는 지금 효력을 상실했다”고 단정했다. 이러한 야당과 시민단체, 새누리당의 태도에 정용석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매서운 비판을 가한다.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5·24조치가 아닙니다. 북한이 천안함 격침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은 때문이죠. 북한이 사과하면 5·24 제재는 즉시 해제되고 남북관계 물꼬는 자연스럽게 터지기 마련입니다.”

정용석 교수는 여당 의원들의 5·24 해제 요구는 남북관계 물꼬를 트는 게 아니고 북한의 도발 물꼬를 터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위험한 발상’으로 규정한다.


먼저 북한이 천안함 폭침 사과해야

사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5.24조치 해제를 건의하는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 “그러면 (회담이) 가능하겠느냐”고 완곡한 어법으로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문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딴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실망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요구하는 5·24조치 해제를 거부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에 “전제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일까. 대통령의 말실수가 아니라면 그것은 북한에게 ‘전제를 두지 말고 만나자’는 메시지와 같다.

북한으로서는 호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이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남북정상회담을 중국이 부추기면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하는 6자회담에 반대한다. 북한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명분이다.

미국의 대북강경노선은 5·24조치를 해제하면서까지 북한과 대화협상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엇박자를 만들어 낸다.

도대체 한미공조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이러한 상황은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 미국보다는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는 상황에 대한 반작용내지 경고로 읽히게 된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 볼 때 미국과 북한간의 회담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은 한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정상회담에 집착하면 할수록 이를 남남갈등을 위한 통일전선전술로 활용할 가치가 높아진다.

개성공단 남북경협기업들이 나서서 5.24조치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러한 상황이다. 더구나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지, 대북전단 살포 중지 등의 요구를 해옴으로써 남한 국민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도들을 이미 노출했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아무런 전제가 없다’고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일까. 이미 북한은 자신들에게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대북전단에 대해 살포중단 요구를 남한 정부에 관철시켰다. 남북정상회담이 비정상으로 가는 이러한 신호탄은 결국 미북 관계의 악화 속에서 북한 입장만 들어주는 상황으로 가버렸다.

 

정부는 여기에 대규모 북한지원을 인도주의라는 명목으로 추진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무엇보다 북한인권법은 여전히 북한 눈치를 보며 국회에서 입법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5.24조치의 해제는 국제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시 정용석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북한의 사과 없이 5·24를 해제해 준다면 한국의 국제적 신뢰는 끝없이 추락되고 맙니다. 국제사회는 박근혜 정부를 5.24 제재도 관철시키지 못하고 북한의 버티기와 협박에 무릎 꿇고 말았다며 허약한 정부로 얕잡아볼 게 분명하죠. 미국은 물론 일본도 심지어는 중국조차도 한국을 얕잡아보게 될 것입니다. 외교적 재앙이 아닐 수 없어요.”

냉전시기에 현실적 국제관계론으로 석학 반열에 올랐던 이사야 벌린은 ‘여우와 고슴도치’로 외교의 본질을 설명한다. 즉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여우의 모습과 자국의 이익을 고수하는 고슴도치의 가시를 가지고 있어야 성공적인 국제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여우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전략을 이미 세워 놓았다. 그렇다면 고슴도치로서 가질 대한민국의 이익은 북한에 대해 무엇인가. 어떤 것이 포기될 수 없는 것인가. DMZ평화공원인가.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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