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타파 부르짖는 '경계인'
지역주의 타파 부르짖는 '경계인'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11.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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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김부겸 전 국회의원
 

지난 6·4지방선거와 7·30보궐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정치인을 둘 꼽으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부겸 전 국회의원과 새누리당의 이정현 국회의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대구 경북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해 ‘진보 야당’ 후보로서는 26년만에 처음으로 당선에 근접한 43%를 득표했고, 이정현 의원은 광주 전남에서 출마해 ‘보수 여당’ 후보로는 역시 26년만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를 깨며 일약 전국적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24일 만난 김부겸 전 의원은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공화국을 갈라놓은 반헌법적 행위”라며 “강력한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의원은 서울대 재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으며 87년 6월 민주화항쟁에 앞장섰고, 대구-경북고 출신의 ‘TK 성골’ 이지만 꼬마민주당-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을 이어지는 ‘야권 민주계’에서 줄곧 정치활동을 해왔다.

1997년 조순의 꼬마민주당이 이회창의 신한국당과 합쳐지면서 ‘본의 아니게’ 한나라당 창당 멤버가 되면서 그것이 ‘원죄’가 돼 민주당 내에서도 줄곧 비주류 정치를 해온 비운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에서 모두 합리적이라며 칭찬받는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수와 진보 모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이방인이요 경계인이기도 하다. 그의 시국관과 정치역정에 대해 들어봤다.

-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으로서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많은 분들이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야당의 역할은 크게는 정부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죠. 그러면서도 정치집단으로서의 야당이 ‘대한민국을 이렇게 끌고 가겠다’는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한 겁니다.

비전은 리더를 통해 나타나는데 리더와 비전의 부재, 그리고 집단 전체의 진정성과 문제의식에 대한 치열성 부족이 문제라고 봐요. 또 하나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국민들로부터 멀어져 버렸다고 봐요.

▲ 지난 10월 24일 글로벌리더스포럼(회장 김성은)에서 강연 중인 김부겸 전 의원

 

야당에 리더와 비전이 없다

- 그러한 문제가 지금 갑자기 나타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러한 문제의식이 서서히 나타난 거죠. 처음에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리더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한 번 큰 위기가 있었죠. 의석수도 적었고요.

그러다가 우리 스스로가 확장하거나 풍부해지거나 치열해져서라기보다는 보수세력 내의 여러 가지 정책의 실패 같은 반사적 이익 때문에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소위 ‘재미’를 좀 봤죠. 그 효과죠.

그 효과 때문에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책임지겠다는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한 채 지속된 거예요. 그 결과가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이고요.

 

- 야당내의 이념 과잉의 문제, 종북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현재 새정치에 있는 의원들 중에서 국민의 상식에 어긋나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는 의원은 거의 없다고 봐요. 그 정도 문제가 되는 의원들은 새정치에 못 와요. 그러나 문제가 되는 의원들은 자신이 과거에 던졌던 말들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고 의심을 받고 있는 거예요.

또한 지난 총선 때 통진당과 연대를 했었죠. 그 때 했던 연대에 대해 지금 아무런 답이 없어요. ‘잘못 됐다’는 말도 없고, 그리고 이석기 사건이 났을 때 “동의하지 않는다” 정도로 그치다보니 국민들이 의심을 갖는 거죠.

정치 행태로 봤을 때 우리가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북한 핵문제에 대해 단호하지 못한 행동들, 그리고 북한 권력자들에 대한 명쾌한 입장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새정치의 의원들은 그렇지 않아요.

-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의원님 개인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통진당 해산문제에 대해서는요?

저는 UN의 북한인권결의안이 나올 때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당연하죠. 북한인권 문제는 남북 간의 특수 문제 사항이라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모른 체할 수 없죠.

통진당 문제는 그들의 뚜렷한 반헌법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있을 때 해산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아요. 아마 독일이 독일 공산당 해산할 때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봐요.

우리도 이게 선례로 잡히면 안 돼요. 그래서 지금 헌재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고 봐요.

- 지금까지 말씀만을 보면 새누리당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고도 보이는데, 그렇다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차별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기본적으로 경제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어디에 방점을 둘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고 봐요. 사회양극화를 보는 인식에도 차이가 있죠. 새정치는 사회양극화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고, 새누리당은 사회양극화는 어쩔 수 없고 낙수효과로 경제를 끌고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죠.

대북문제는 이미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대북문제에 대해 어설픈 유화론자는 없어요. 다만 북한을 우리가 옥죌 수 있는 무기가 없잖아요.

어쨌든 한미공조를 통해 혹은 중국과의 다자간 회의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밖에 없어요. 그것은 여야의 차이가 없어요. 그렇다보니 크게 보면 양 당 간의 많은 차이가 없어요. 이것들이 지역주의의 원흉이죠. 차이가 없다 보니 실력 없는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 김 의원님은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고 계시죠. 스스로 보시기에 김 의원님의 이념적 정체성, 색깔은 무엇입니까? 무슨 가족의 내력이 있으신 겁니까.

제가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에 친야적 성향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죠. 그러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을 깰 때 제가 따라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한나라당 창당 멤버가 됐죠. 그런데 제가 한 5년을 버텨보니 정체성의 혼란이 왔어요. 그래서 탈당을 하게 됐죠.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책임 있는 자리를 국회에서 하다 보니 책임감이 생겼어요.

내 생각이 과거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고 책임감이 생기다 보니 이제 문제 제기자가 아니라 문제 책임자가 돼야 하잖아요. 문제의 방향을 잡고 해결을 해야 하는 위치가 된 것이죠.

그러니 말이라든가 모든 면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당 내에서는 보수화 됐다고 핀잔을 듣기도 하죠. 제 방식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철학이 생긴 것이죠.

-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김 의원님께서 주도하셨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사실관계가 어떻습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 당시 제가 선대본부장이었으니까 그 제보가 저한테 들어왔죠. 제보를 한 사람이 제 보좌관인 상황팀장에게 제보를 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여당의 타깃이 됐었던 겁니다.

- 최근 대구시장 선거를 하시면서 ‘박정희 박근혜 마케팅’을 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 두 분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무엇입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공과가 있는 대통령이라고 평가를 해왔어요. 수치상으로 말하자면 공이 더 큰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대구에 가서 보니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랑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분은 마케팅이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어요. 그건 인정하고 있고요. 한 지역의 수장이 되면 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지역 발전을 위해 대통령과 협력하겠다는 입장이었죠.

- 선거를 치른 후 특별히 느끼는 것이 있었나요?

전라도 지역에서 이정현 의원 당선이라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죠. 그래서 저의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지죠. 민중적 차원에서는 이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적절한 소구력 있는 무언가를 던지면 대구에서도 돌파가 가능하다고 봐요. 경상도민 다르고 전라도민 다르겠어요? 똑같잖아요. 그런 식으로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암 덩어리를 전부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걷어낼 계기는 만들 수는 있죠.

- 지금 야당을 중심으로 제3당 창당론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당위성에는 저도 공감을 해요. 이 정치 구조가 기득권 구조이기 때문에 구체제에 기대서는 새로운 체제는 없다는 국민들의 요구에 반응이 나오는 것에는 동의를 해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동안 정치를 해오며 겪었던 정치적 갈등, 현재의 나이, 젊을 때 2번이나 신당운동을 해봤던 경험을 미뤄봤을 때 제가 앞장서서는 못할 것 같고 또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 꽤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셨습니다. 현실정치로 25년, 운동권시절까지 합치면 30여년이죠.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까.

비결이라기 보다 아직 투지가 남아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통합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참 많은 씨름을 했습니다. 그 중에 제 정치적 스승이 고 제정구 의원인데, 제정구, 고 노무현, 김원기, 유인태 이렇게 다섯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을 갈랐을 때 따라가지 않고 국민통합추진회의라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 때 2년 동안 국민통합을 위해 고생을 했죠.

그 당시 그런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정치를 정리할 나이가 된 거예요. 그래서 정리하기 전에 꿨던 꿈을 정리하고자 해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어느 당에도 거부감은 없지만 어느 당에도 정체성이 모호한 어떻게 보면 경계인인데 경계인으로서 저의 숙제를 해야죠.

-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가장 잘 했다고 평가하는 것과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요?

역시 가장 열정적으로 움직였던 때는 6월항쟁 때죠. 그때 제가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 겸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의 상근 간사였어요. 우리 시대에 권위주의 정부를 물러나게 했으니까 가장 강력하고 성공적인 경험이죠.

후회되는 것은 열린우리당에서 믿음직스러운 정치그룹을 못 만들고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이죠. 국민들의 바람이 있었지만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어요.

그렇게 야권에게 정치적인 기회가 있었는데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회를 옥죄고 있는 미래를 향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실상 무너져버린 것이죠.

- 그것이 김 의원님의 개인적 잘못은 아니지 않나요?

아니죠, 제가 그때 다부지게 했더라면 그렇게 까지 끌려가면서 무너지지는 않았겠죠. 그때 타이밍을 놓쳤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몇 있었는데 항의도 하고 목소리도 냈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했죠.

그때가 노 전 대통령 임기 3년차였어요. 대연정 문제가 끝난 후예요. 전 그때 대연정에 찬성했죠. 노 전 대통령의 고민이 뭔지 알았기 때문이죠.

지금 보니 그때 문제가 지금 문제예요. 지역 때문에 통합이 안 된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은 알고 있었죠. 그래서 지역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다양한 정치색이 같이 살 수 있는 정치구도를 만들어 준다면 한나라당에 권력을 넘겨주겠다는 것이죠.

-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해결이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보수 진보를 떠나서 공적인 가치에 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개개인의 역량이 개발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격차가 존재하잖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격차를 좁혀주려는 노력을 공공성이라고 보는데, 잠시라도 우리가 게을리 하면 격차가 벌어집니다.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사진/정연호 객원기자 mychunsha@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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