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自由가 전제돼야 하는 사람들”
“과학자는 自由가 전제돼야 하는 사람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10.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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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자 구제활동 펼치는 민동필 서울대 교수·전 과학기술협력 대사
 

“그래도 지구는 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는 ‘反성경적’이라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갈릴레이는 재판정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타협을 하고 풀려났다. 몇 개월간의 재판에 지친 그가 마차를 타고 혼자 중얼거렸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이 사실인지 논쟁이 거듭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말에서 한 과학자의 비참한 심정을 느낄 수 있다.

과학기술자의 자유는 무엇이며 그들의 직업적 양심은 어떻게 보호돼야 할까. 이러한 문제를 안고 과학자들의 부당한 인권침해 구제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 외교부 과학기술협력 대사 민동필 서울대 교수(핵물리학)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유엔에서 과학자들의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과학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 과학자들과 함께 UN이라는 기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느냐는 문제에 과학적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UN에 30개의 인권 조항으로 이뤄진 보편적 인권선언으로 UDHR(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이죠. 최근 과학기술한림원을 통해 국제적인 과학자 인권보호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됐습니다.

- ‘과학자’와 ‘인권’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다소 생경하게 들리는 데요. 과학자들의 인권 문제가 좀 더 특별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먼저 과학자의 ‘권익’과 ‘인권’을 혼돈하면 안 됩니다. 권익이라는 것은 자기 이해관계의 권리적 측면이고, 인권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자신이 양심껏 행동했을 때의 자유를 말합니다.

과학자의 인권을 달리 봐야 하는 이유는 과학자는 자유가 전제가 돼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유정신으로 교육받고 길러졌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항의를 하게 되죠. 이 때문에 소리 없는 핍박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권 침해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과학자들을 흔드는 ‘소리 없는 핍박’

- 과학기술자들의 부당한 인권 침해를 구제하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가요?

세계인권과학자연합회에서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 공학,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자신의 과학적인 올바른 판단에 의해 행동했는데 구금 또는 감금을 당했다거나 인권 침해 사례가 있는 경우, 소위 말하는 ‘언론플레이’ 같은 공개적 방법이 아니라 권위 있는 과학자가 나서서 정부 인사와 접촉하는 활동을 통해 구제하는 전략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300명 이상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구출됐습니다.

- 대단히 흥미로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이탈리아에서 과학자들이 지진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고소를 당했지요. 30년 동안 감옥에 가게 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과학자가 양심껏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룰에 저촉됐을 경우에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룰의 문제이지 인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권의 마지노선이 침해됐다고 판단했을 때 어려운 상황에 있는 과학자들을 구출하는 것이지요.

인권 침해가 아닌 과학자의 권익에 의한 일이라면 심사를 통해 돕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결과를 낸다면 결과는 하나입니다. 물론 과학에 오류도 있습니다만, 과학적 객관성으로 판단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이 배후에 깔려 있는 경우에는 구제할 수 있습니다.

- 실정법에 저촉되더라도 구제할 수 있습니까?

나라마다 실정법이 다르지만 UN 인권선언의 정신에 어긋난 경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마저 침해 당하는 경우 UN 인권법을 근거로 해서 구제합니다.


때로는 시민들도 함께 고민해 줘야

과학기술자의 직업적 양심이 부당한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민동필 교수. 그렇다면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사회적 책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을까.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연구가 선과 악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아인슈타인의 E=MC²라는 공식은 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의 제조원리가 됐다. 만일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물리학이 무기 제조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자신의 연구를 중단하는 것이 옳았을까.

- 과학기술자들이 사회윤리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예측이 가능한 경우에도 과학자는 그 연구를 계속 진행해야 합니까?

과학자는 순수한 과학적 탐구로 연구를 하는데 그 지식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결과를 예측한다면 사회에서 조절을 해줘야 합니다. 원자탄을 예를 들면 과학적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지식을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쓰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재앙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복제 연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확한 연구 결과는 아직 없기 때문에 연구는 계속돼야 합니다. 그렇지만 과학적 지식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집단에 지식이 넘어가지 않게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겠죠.

- ‘역사의 종언’을 쓴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지식으로서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지목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러한 것을 연구하고 개발할 자유가 있을까요?

제 소견으로 봐도 굉장히 위험스럽고 불안합니다. 뇌의 기능을 조정하고 다시 환상을 만들고 그 환상을 움직이게 하는 아바타와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현실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또한 거부한다고 연구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러한 연구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우려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문제들은 과학자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인류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과학정책 몰입에 어려움 많을 것”

- 과학계의 오랜 논란에 기후변화 문제가 있습니다. 지구의 기후변화는 인류가 없던 시절에도 자생적으로 있었기에 일부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위험을 강조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후변화는 데이터가 광활하고 상황과 변수가 많기에 모든 데이터를 실험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연구가 맞고 어떠한 연구가 틀리다고 쉽게 단정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요. 그래서 각자 지지하는 연구가 있을 뿐이고 기후 예측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최근 100년간의 지구 내 이산화탄소 증가율을 보면 확실히 그 이전의 자생적 증가율보다 가파릅니다. 이른바 ‘하키스틱 모형’이라고 하죠. 지구 온난화에 인류가 생성한 이산화탄소의 영향이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민동필 교수는 과학기술자의 객관적 지식 추구가 설령 인류에게 재앙을 줄 수 있는 지식으로 발전하더라도 그 책임을 과학자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한 문제는 과학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들의 문제이며 동시에 시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세금이 투여되는 국책연구소는 어떠해야 하는가.

- 정부의 과학기술정책과 과학기술자들의 ‘자유’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왜 정부가 과학정책에 대해서 개선 노력을 하는데도 문제가 나아지지 않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입장에서 과학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저의 관심 밖의 일입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불평이나 개선점을 이야기한다는 데 좌절을 느낍니다.

- 정부 정책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과학정책을 평가하는 가치의 잣대는 긴 시간을 통해 평가돼야 하는데 이전의 정권은 정책에 대한 힘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사회로 변모해 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소리가 다양해서 정부가 과학정책에 몰입하기엔 어려운 실정임을 느낍니다. 그만큼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죠.

- 그럼에도 과학기술자들은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해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가 가장 중요하다고 사회에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성장 중인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과학계의 상황은 나쁘지 않고 과학자들의 목소리도 높이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과학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지적하고 싶군요. 과학자는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먼저 겸손하고 정직해야 하며 성실해야 합니다. 지금은 과학계가 그런 점에서 자성을 할 때입니다.


‘존경받는’ 과학자여야 권리 주장도 할 수 있다

- 과학계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새롭게 들립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과학계에서 중요한 건 자유입니다. 과학자가 돈이 필요해서 정부에서 돈을 받는데 그로 인해서 자유가 없어지면 솔직히 받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돈이 필요하면 무조건 돈을 받고 제약을 받으면 불평을 합니다. 과학자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과학자는 서로 보완적이고 타협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에 5억이 필요한데 10억을 불필요하게 받고 불평불만을 하는 과학자들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죠.

결국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주체적인 행동과 선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동필 교수의 생각이었다. 과학기술자들의 문제를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민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지켜져야 하는 과학기술자들의 자유와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편성과 평등성이 적용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비전문가들에게는 과학기술자들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제대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더 양심적이고 엄격한 도덕심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존경받는 과학기술자들이어야 국민들도 그들의 자유와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인터뷰 /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정리 / 정미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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