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잔재 청산’의 길을 묻다
‘사회주의 잔재 청산’의 길을 묻다
  • 정용승
  • 승인 2014.10.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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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일 SED 독재청산재건시민연합 헬무트 니콜라우스 변호사

평화통일은 이제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강한 의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북한의 상황이 북한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의 건강이 안 좋다는 언론보도부터 내부에서의 권력투쟁, 그리고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 상황 등이 그렇다.

문제는 통일 이후다. 북한의 상황을 끌어안아야 하는 남한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씨 독재 정권 아래에서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지원해야 하는 남한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들의 피해를 인정하고 도움을 줘야 할까. 또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돌봐줘야 할까.

이에 대한 모범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1990년 통일을 이뤄낸 독일도 우리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 동독의 정권 아래에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을 도와줘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을 도와주는 단체가 있다. SED 독재청산재건시민연합(이하 SED연합)이다. 본지는 지난 9월 18일 SED연합 사무소에서 통일 후 벌어질 상황에 대한 질문을 SED연합 사무소 헬무트 니콜라우스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 SED연합은 독일 통일 후 동독 공산정권 청산을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활동 및 성과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SED연합 설립은 어떤 인권 운동가의 거실에서 시작됐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전임자였던 헬무트 콜 전 총리와 사회주의통일당의 피해자들을 돕고자 했던 인권가들, 서독 정치인들이 모여 만든 단체죠. 피해자들을 위해 심리치료와 법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출발했고 현재는 언론활동을 통해 진상규명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까지 같이 하고 있습니다.

- 피해자들이 당했던 사례들을 말씀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두 살배기 어린이의 사례가 기억납니다. 어린이집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감옥과도 다름없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죠. 아이의 부모들이 동독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4명의 형제들과 같이 있었는데 서로가 형제지간인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동베를린에서 살고 있었던 15세 여자아이는 펑크족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정신병동에 가둬진 경우도 있었죠. 그 일로 인해 그녀는 깊은 트라우마를 갖게 됐고 더 놀라운 것은 정신병자 취급을 했던 의사는 그 이후에도 아무 일 없이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후에 그 의사의 과거를 밝혀 간접적인 제재를 하긴 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목사 딸이라는 이유로 성적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대학도 진학하지 못했던 경우입니다. 물론 지금은 한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죠. 이런 식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에서 벌어졌습니다. SED연합은 바로 이런 일들을 바로 잡는 데 힘쓰고 있죠.

독재청산의 기준, 法治

- SED연합은 공산정권의 독재 청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재 청산’이라는 단어는 다소 막연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독재 청산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네요.

독재 청산의 범위는 규정하기 어렵지만 독재 청산을 위한 기준은 있습니다. 서독의 ‘법’이죠. 당시 발생했던 많은 일들은 우리의 주관대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의미의 독재니까요.

서독은 법치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절차로만 범법자들을 처벌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재판에서 동독 법에 따라 구형할 수 있는 경우나 동독과 서독법이 함께 구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했죠.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무조건 벌을 줄 수는 없었다는 말이에요. 군대 문제 같은 경우에는 국경지대에서 실제로 총을 쏜 군인들은 명령을 내린 상관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았죠.

- 얼마 전 동독지역에서 동독공산당을 계승한다는 좌파당의 지지율이 3위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전에는 2위를 기록했었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동독에서 좌파당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독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통일 이후 독일 민주사회당(PDS)과 서독 사회주의당이 합쳐져 좌파당을 형성했어요. 당시 대표 중에 한 분이 독일 사민당(SPD)의 라퐁테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이 완전히 사회주의통일당을 계승했다고는 할 수는 없죠. 또한 현재 거기에 포함돼 있는 젊은이들은 과거 동독 시절 단지 사회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 중요한 직책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에요.

물론 다른 측면에서, 통일 이후 민주사회당을 정치에 참여시킨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정당의 다원화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당 활동을 불법으로 못하게 했다면 국회가 아닌 음지에서라도 활동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독재 청산을 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극우세력과 좌파정당은 독일에 문제되지 않아

- 좌파성향 정당에 대항해 독일 대안당과 같이 ‘극우’ 논란에 휩싸이곤 하는 정당들의 힘이 커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입니다. 이것이 좌파성향 정당의 선전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볼 수 있나요?

이 문제를 보기 위해서는 독일 전체를 봐야 합니다. 현재 동독에서 좌파성향의 정당들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서독에서는 그만큼 지지를 얻지 못하고 관심도 약합니다. 과거 동독에서 주요 직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현재 좌파 정당에서 항상 주요한 직책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죠. 즉, 과거 엘리트들이 현재도 최전선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독일 대안당 같은 경우 그들을 우파라고 정확히 규정짓는다거나 네오나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죠.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는 과거 강했던 독일 마르크화를 원하거나 그리스에 대한 원조 등 현재 독일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정당이 좌파정당의 성장에 반발해 성장하고 있다는 주장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봐요.

- 아시다시피 현재 한국도 남과 북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과거 독일의 통일이 남북통일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SED협회의 발기인으로서 한반도 통일 이후 한국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요?

독일의 통일이 남북통일에 주는 교훈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일 통일 당시의 상황과 남북한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죠. 당시 동독은 서독의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고 뉴스를 통해 외부에서 동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수월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또 가장 강력하게 작용했던 요소 중 하나는 당시 소련의 동의였죠. 반면 지금 북한은 외부와 단절된 채로 고립돼 있어요.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죠. 또 러시아가 통일에 동의를 할지도 의문이고요.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통일에 대한 준비는 가능합니다. 통일 후에 해야 할 것을 준비하는 것이죠. 통일 후 2500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남쪽으로 몰려올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남으로의 문이 열리게 됐을 때를 대비해야 하고 정치적인 면과는 달리 행정, 보건, 에너지, 도로 건설 등의 실질적인 정책들을 준비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같은 경우 동독의 재산을 모두 사유화하는 부처가 있었어요. 가족 중심적이며 신격화된 지배구조의 북한은 굉장히 특별한 경우기 때문에 독일이 했던 방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니콜라우스 변호사님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독일 독재청산 시민연합에서 일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또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저는 서독에 태어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중에 통일 이후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의뢰를 맡은 계기로 함께 하게 됐습니다. 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피해자들이 연금제도를 통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이뤄 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서독에서 태어난 운명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피해를 당했던 분들을 돕는 것이 저의 의무라 생각하고 있죠.

인터뷰·사진/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정리/강민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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