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보수 신드롬’ 그 이후
‘젊은 보수 신드롬’ 그 이후
  • 미래한국
  • 승인 2014.09.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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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던 ‘젊은 보수’라는 개념이 이제는 어느 정도 대중성을 찾은 것 같다. 3년 전 필자가 같은 주제로 본지에 글(‘대학생의 보수화 신드롬, 진실은 이렇다’)을 기고했을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는 젊은 보수의 등장 자체가 화제로 다뤄졌다. 모 매체는 이른바 P세대라는 네이밍(naming)으로 그들을 묶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었고, 좌파 언론들은 그들의 배후를 찾겠다며 여러 차례 취재를 시도하기도 했다(필자는 그런 취재가 너무나도 불쾌했다).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건 등을 거치면서 사회적 갈등이 급격히 증가하던 추세에서 젊은 보수의 등장은 보수진영에게 큰 위안과 희망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르겠다.

엄밀히 따지면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20대로부터 34.9%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17대 대선에서는 더더욱 보수의 20대 득표율이 높았다. 이명박 당시 후보는 42.%를, 이회창 후보는 15.7%의 득표율을 보였다. 그 당시 정동영 후보는 20.7%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20대로부터 33.7%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선거라는 의사표시 행위를 기준으로 봤을 때 2002년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상 ‘존재하지 않던’ 젊은 보수가 갑자기 등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상식적 해석일 것이다. 이미 존재해 왔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젊은 보수는 과거에도 , 미래에도 있다

사실 정치적 성향이 결정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본인 스스로가 심사숙고해 판단한 결과일 가능성도 적진 않겠지만 대부분은 주변 환경과 출신 지역, 부모, 전공과목이나 직업 등이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의 힘은 막강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젊은 20대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비율은 새누리당에게 투표를 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젊은 보수’는 어떤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사회적 현상일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젊은 보수의 의의는 물론 현재 처해 있는 한계까지 짚어볼 수 있다.

젊은 보수는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닌, 존재하던 것의 실체화·집단화·조직화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좌파 운동권 단체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행태와 조직을 20대 보수가 갖춰나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투표장 기표소 안에서가 아닌 광화문 광장, 청계광장 등에서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젊은 보수의 등장은 분명 새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이제 더 이상 언론이 “젊은 세대는 모두 새누리당을 싫어해”라고 말할 수 없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사회 참여를 바라보며 “맞아! 나도 저렇게 생각했어!”라고 동질감을 느낄 20대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점이 젊은 보수 신드롬의 실체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활동 범위는 여전히 좁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표소에서 나와 광장으로 나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광장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난 다음에 호프집, 카페, 강의실,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으로 침투하는 데는 여전히 실패했다는 진단이다. 여전히 우리 삶의 현장에서 젊은 보수는 생소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생활 속 백분토론’이 바뀌어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스케치 해보자면 이런 광경이다. 오랜만에 만난 5명의 친구들이 앉아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 중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여기에서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하는 장면은 다소 놀랍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게 아직은 20대 젊은 보수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결국 문제는 확장성이다. 기표소에서 나와 광장으로 뛰어갈 수 있는 20대가 과연 몇이나 될까. 취업, 연애, 결혼, 직장생활, 취미생활…. 바쁘고 복잡한 일상에서 정치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인터넷 커뮤니티 방문이나 SNS 활동 정도가 아닐까. 기표소에서 광장으로 갈 수 없는 절대다수의 20대가 ‘생활 속에서’ 보수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어쨌든 보수는 세련되고 ‘엣지 있는’ 아이템이 돼야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맥북 같은 그런 이념이 되는 게 과제라는 이야기다.

다시 5명 친구들의 대화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을 때 예상되는 반론들에 대해서, 그 친구는 어떤 재반론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할까. 결국엔 ‘변화’다.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실제 ‘나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소득이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지, 내가 어떻게 결혼과 취업을 쉽게 할 수 있게 되는지, 대한민국이 어떻게 더 좋은 나라가 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북세력은 위험해서”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너무 무거운 담론이 돼버리고 만다. 생활 속 소소한 백분토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게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에는 틀림없으나 그 방법론이 상당히 좌파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쪽이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니까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담론을 주도할 수 없다. 결국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담론의 대립각을 무디게 만드는 진정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5명의 백분토론에서는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보수를 세련되게 만들어보자. 20대 사이에서도 보수를 지지하는 것을 뭔가 ‘있어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보자. 자유주의라는 훌륭한 이념적 토대 위에서 세련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구하고 사랑하는 20대다. 그들에게 구체적인 ‘자유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보수가 된다면 젊은 보수는 보다 넓은 확장성과 대중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윤주진 자유공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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