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Libertarian)가 피케티에 반대하는 이유
자유주의자(Libertarian)가 피케티에 반대하는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4.09.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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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노 편집위원‧자유경제원 부원장
최승노 편집위원
자유경제원 부원장

토마 피케티의 신간 ‘21세기 자본’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으니 사회주의 방식을 섞어보자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소득불평등 심화가 정말인지도 따져봐야겠지만 세금을 더 거둬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은 이미 역사 속에서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사회주의 실험을 다시 반복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며 삶의 질을 개선한다. 하지만 모두를 동일하게 개선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소득 격차를 늘리게 마련이다.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 이들은 좀 더 크게 부유해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성장에 기여한 만큼 소득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 격차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경제는 정치와는 달리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누가 누구의 것을 빼앗아 경제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더 부유한 상태로 개선될 뿐이다. 경제발전의 결과로 1980년대 이후 절대적 빈곤층이 급격히 줄어들고 인류는 번성하고 있다.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피케티의 주장

하지만 피케티와 같은 평등론자들은 ‘모두가 동일하게 나아지지 않았다’며 현실세계를 비판한다. 피케티의 주장은 현실을 잘못 해석한 오류를 내포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유지해온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파괴하기까지 하는 잘못된 주장이다.

피케티 주장의 핵심은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인간이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과거 돈을 중시했던 중상주의에서도 성립하지 않는 얘기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지식사회에서 주장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현재의 세계를 이끄는 경제발전은 철저히 새로운 지식의 창조를 통해 이뤄진다. 그 주체는 기업가다. 그들은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를 이루고 그 결과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얻는다. 점차 지식선도자의 역할과 몫은 커졌다. 기업가, 자본가 등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해 세상에 기여하고 그 과실을 얻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런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마르크스처럼 자본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노동과 분리해서 설명하는 것은 악의적 왜곡일 뿐이다. 돈이 돈을 번다는 식의 유치한 논리로는 현대 자본주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피케티는 전 세계 정부가 담합해서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자본가와 부자, 기업가들이 폭압적인 정부를 피해 달아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글로벌 부유세’ 담론이다. 부유세는 대표적인 사회주의 정책이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나라에서 힘을 얻는 평등정책이다.

그 결과는 늘 참담한 실패였다. 시기심을 바탕으로 만든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그 사회를 통제와 가난으로 이끌기 때문에 국가경제를 붕괴시킬 뿐이다. 마르크스가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단결해서 자본과 싸우라’고 했다면 피케티는 전 세계 정부가 담합해서 자본가에게 세금폭탄을 투하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세계를 불평등이 득실거리는 가난의 세계로 이끄는 헛된 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유층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세금이나 가혹한 정책들은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나치가 적으로 삼은 ‘유태인’이나 러시아의 적인 ‘쿨락’에 대한 박해가 그렇다. 쿨락은 부유한 농부를 의미한다. 전체주의 지도자의 무기 목록 속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바로 부자에 대한 공격이다.
 

‘글로벌 세금담합’은 터무니없는 소리

자본주의를 통해 인류의 삶은 그 처지가 급속히 개선됐다. 그 이전의 시대에 세습은 심각했다. 왕, 귀족, 특권층의 권력에 따른 자원 배분과 세습으로 사회는 활력이 크게 낮았고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권력에 의한 배분과 세습의 문제는 대부분 해소됐다.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 자수성가했다. 우리 사회에도 자수성가한 많은 기업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이 즐비하다. 그런 면에서 피케티가 말하는 ‘세습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선전문구에 불과하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자본에 대한 과세 강화는 바람직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의미가 없다. 자본의 이동성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세계의 나라들이 국가의 장벽을 높이거나 공동으로 세금을 높이라는 것인데 그런 담합은 정상적인 국가들 사이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

국민을 해롭게 하고 경제를 침체하게 만드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시도될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나라들이 사회주의 붐을 타고 도입했던 소득세 누진세율이나 부유세가 점차 힘을 잃고 해소된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피케티가 살고 있는 프랑스에서 부자 증세를 현실화하자 국민 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유 등 수많은 국민들이 세금 망명을 택했다. 평등론자인 피케티는 부유한 국민들이 다른 나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른 나라도 세금을 올리라고 주문한 듯하다. 탈출구를 봉쇄하려 하지만 헛된 짓이다. 부자 증세로 나라 경제만 기울 뿐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자본, 상품, 자원, 인력, 지식 모든 자원이 국경을 넘어 빠르게 이동한다.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활용된다. 물론 자본을 적대시하는 나라를 외면할 것이다.

자본에 우호적이고 이를 잘 활용하는 나라에는 자유와 번영이 찾아오며 평등도 덤으로 얻게 된다. 반면 평등을 앞세워 자본을 억압하는 나라는 빈곤의 늪에 빠져 자유까지 잃어버린다.

 

최승노 편집위원
자유경제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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