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시장’을 지원한 재벌, 한화
‘反시장’을 지원한 재벌, 한화
  • 이원우
  • 승인 2014.04.04 09:2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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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이 좌편향 성공회大의 후원자가 되기까지
   
 

<장면 1> 지난 3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어느 교수가 ‘병든 사회 아픈 교육’이라는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주인공은 조희연 성공회대학교 교수.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조 교수의 출판기념회에는 이재정 前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김중배 前 참여연대 대표, 안경환 前 국가인권위원장,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의 좌파 인사들이 ‘총출동’하며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조 교수는 3월 18일 서울시교육감 좌파 단일화 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장면 2> 지난 3월 24일 경기도교육청 브리핑 룸. 어느 거물 인사가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선언했다. 주인공은 이재정 前 통일부 장관.

혁신학교의 ‘저작권자’인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상황에서 이재정의 출마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택이었다. 총장을 지내며 성공회대를 어엿한 4년제 종합대학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 자리에서 “김상곤 前 교육감의 정책을 계승해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장면 3> 지난 3월 27일 김포공항. 어느 회장님을 태운 전용기 한 대가 미국을 향해 이륙했다. 탑승한 사람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그는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뒤 만성폐질환, 당뇨, 헛것이 보이는 섬망 증세 등을 이유로 2013년 1월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한때는 ‘위독설’까지 돌았다.

   
 

올해 2월 11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풀려난 그는 50억 원의 벌금 및 3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사회봉사 연기를 신청했다. 그리고 ‘빠른 치유를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2007년 폭행사건으로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은 뒤에는 일본으로 날아갔었다.

위 세 장면의 주인공은 각각 조희연, 이재정, 김승연이다. 언뜻 보면 제각각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물들 같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교집합이 있다. 정답은 ‘성공회대’다.

교수들 옥살이 햇수를 더하면 ‘육십갑자’

1534년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후 영국에서 설립된 성공회(聖公會) 교파는 1890년 무렵 한반도에 진출했다. 1914년 4월 대한성공회는 인천 강화에 성 미가엘 신학원이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1961년 현재 위치인 구로구 항동으로 이전해 1982년 천신신학교, 1992년 성공회신학대학, 1994년 성공회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신학대학으로 설립된 성공회대는 현재 어엿한 ‘4년제 IN서울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한 상태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얻으며 서울 소재 대학교에 진학을 꿈꾸는 수험생들의 진지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성공회대학교의 드라마틱한 혁신과 성장이 가능했던 데에는 탁월한 리더 한 사람의 공헌이 컸다. 그가 바로 이재정 前 총장이다. 성 미가엘 신학원 출신이기도 한 이재정 교수가 부임하면서 이 학교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성공회대의 총장을 지냈고 2006년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다(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이자 경기도교육감 후보).

문제는 이재정의 혁신이 오로지 ‘왼쪽 방향’을 향해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시작은 좌파성향 교수들을 대폭 영입하는 일부터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1988년 임용된 신영복이다. 1968년 발생한 역사상 최대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20년 복역 후 출소해 성공회신학대학에 임용됐다.

   
 

이재정이 신영복 다음으로 영입한 인물이 바로 현재 서울시교육감 후보인 조희연 교수다.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는 그는 성공회신학대학에 자리를 잡으며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박원순 現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외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박성준(한명숙 前 총리의 남편),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한 진영종, 김일성을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으로 찬사한 한홍구,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한 권진관과 이종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영환,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던 임규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딸이자 노동운동가 출신 백원담 등이 성공회대 교수로 차례차례 영입됐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로 첫손에 꼽히는 김수행 교수 또한 서울대 정년퇴임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됐다.

“교수들의 옥살이 횟수를 모두 더하면 육십갑자를 넘는 대학이 성공회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퍼지는 사이 성공회대는 하나의 교육기관인 동시에 한국 좌파진영의 싱크탱크로 발돋움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동지(同志)들이 한 장소에 모이자 어마어마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2010년 박원순 변호사는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고 싶다”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성공회대는 캠퍼스도 작고 대학 규모도 작다. 양으로 따지면 그렇다. 그러나 질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아주 큰 대학이다. 거기에는 좋은 교수님과 좋은 커리큘럼이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미래의 비전이 있다. 내가 다시 젊어 대학을 간다면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성공회대 이사장 김승연의 ‘업적’

성공회대의 ‘성공’적인 혁신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을까.

혁신(innovation)에는 인재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우선 성공회대에 인재가 넘치도록 풍부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다. 시간 또한 충분했다. 이 학교의 좌편향이 시작된 시점을 1988년 이재정·신영복 임용으로 잡는다면 지금까지 28년의 시간이 투입된 셈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충분한 시간은 성공회대를 한국 좌파진영의 굳건한 ‘본부’로 성숙시켜줬다.

문제는 돈이다. 혁신에는 돈이 든다. 성공회대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학교의 혁신을 가능케 한 자금의 원천은 어디였을까.

학교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면 성공회대의 성장에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그룹 중 하나인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이 깊게 연관돼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 시장경제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하며 자유와 경쟁, 개방과 친숙할 것 같은 한화그룹이 시장경제에 적대적인 학풍으로 유명한 성공회대학교를 지원해왔다는 점을 아이러니라 해야 할까, 패러독스라 해야 할까.

접점의 출발점은 김승연 회장의 선친인 故 김종희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천안 출신으로 1952년 한국화약주식회사(현 한화그룹)를 창업한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공회 신자였다. 세례명은 디도. 그는 인천공장 내에 ‘성 디도 채플’이라는 기도실을 운영해 직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유도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1981년 영면 이후 영결식도 서울 정동 대성당에서 성공회 의식으로 거행됐다.

김종희 회장의 장남으로 1952년 천안에서 출생한 김승연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성공회 사람들과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김 회장의 세례명은 프란시스. 2011년에는 자신의 세례명을 딴 성 프란시스 성당을 충북 보은 화약공장 내에 건립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8년 신영복과 이재정이 교수로 부임한 시점부터 김승연은 성공회대 이사 중 한 사람으로 선임됐다.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김승연 회장 역시 성공회대 ‘1988년 체제’의 주역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리고 성공회대의 실질적 CEO라고도 볼 수 있는 이재정과 한화그룹 CEO 김승연의 접점은 차츰차츰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켜 나간다.

1996년 김승연 회장은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업구조조정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6월 16일 뜻밖에도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김 회장은 “재계가 국민적 합의 속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재야인사 영입을 물색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영복을 고른 것은 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이는 당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또한 자문위원 물망에 올랐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한 달 전인 1996년 5월에는 성공회대 개교 82돌 기념식에서 공로패를 받기도 했던 김승연 회장은 1997년 4월 28일 성공회대의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2001년 졸업식에서는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이후 2003년 이사장직에서 퇴임할 때까지 6년간 한화와 성공회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DJ정부와 참여정부를 가로지르는 이 시기야말로 한국 사회의 좌경화와 성공회대의 좌편향이 동시에 진행된 기간이다. 그리고 2002년 한화그룹은 모두의 예상과 상식을 깨고 대한생명을 인수함으로써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 이후 DJ정권에서 가장 각광받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공회대 승연관

대학본부 이름이 ‘승연관’인 이유

한화와 성공회대가 구축한 긴밀한 관계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성공회대의 아담한 캠퍼스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대학본부 건물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김승연 회장의 이름을 딴 ‘승연관’이다.
이 작명에는 이재정 당시 총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만큼 김승연 이사의 이름을 건물명으로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살아 있는 대기업 총수의 이름을 대학 건물 이름으로 정하는 파격은 당시로서도 드물었다. 한화건설은 성공회대의 새천년관 건립공사를 하기도 했으며 공사대금 140억 원 중 10억 원을 깎아준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새천년관의 머릿돌에는 김승연 회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재정과 한화 사이에 ‘아름다운 10억’만 오간 건 아니었다. 2004년 1월 28일 법원은 이재정 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화그룹으로부터 대선 불법자금 10억 원을 양도성예금증서(CD) 형태로 수수 받아 노무현 후보 캠프에 전달한 혐의였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의 불법 대선자금이 노무현 후보 측 캠프에 전달된 사실이 밝혀진 건 그때가 처음이다. 국회의원이자 대학 총장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제인 이재정이 불법자금 혐의에 관련됐다는 것 또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0억 수수 이재정의 거짓말

이재정은 당시 “내가 한화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법원은 불법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함으로써 이재정은 풀려났다. 2006년 12월엔 참여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장관 청문회 당시 이재정은 북한인권과 관련된 질의에서 “저 내용들(북한인권 유린)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최근엔 김정일-노무현의 2007년 정상회담과 관련해 “NLL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국정감사장과 방송에서 증언한 바 있으나 허위로 드러나며 위증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세례를 받을 때 대부(代父)로 서기도 했던 사제다.

   
이재정 前성공회대 총장

한편 김승연 회장과 성공회대의 관계는 2007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는다. 계기는 세간에 잘 알려진 보복폭행 사건이다. 대기업 총수가 직접 나서서 폭행에 가담한 사실은 한국 사회를 넘어선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 공판장에 환자복 차림으로 휠체어까지 타고 등장한 김 회장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 재벌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성공회대 학생들은 모교가 폭행사건의 가해자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점에 대해 격하게 반응했다. 승연관의 유래가 김승연 회장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당장 건물 이름을 바꾸라는 시위에 돌입했다. ‘승연관’이라 적힌 안내판이 낙서로 훼손되는 사건도 있었다. 학생회까지 나서서 항의 집회를 주도했지만 2014년 현재까지 성공회대 대학 본부 건물의 이름은 승연관이다.

김승연 회장은 더 이상 성공회대의 이사장이 아니지만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성공회대 학교식당을 한화 푸디스트가 운영한 것도 그렇지만 경영학부에는 한화가 운영하는 갤러리아백화점 인턴과정이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성공회대 경영학부 3~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화점 업태 이해와 함께 실무 현장 체험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취업난이 고착화된 상황 속에서 성공회대 진학을 고민하는 수험생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反시장’ 학교 졸업 후 ‘명품백화점 인턴’

이재정과 김승연의 좌편향적 혁신에 대한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좌편향적 학풍이 압도적인 학교에서 反시장의 이데올로기를 학습했다가 명품백화점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갤러리아백화점으로의 취업을 타진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수십 년간 지속돼 온 한화와 성공회대, 재벌과 反시장의 기이한 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2013년 6월 27일 한화갤러리아노동조합은 설립신고를 완료하고 조직화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김승연 회장은 미국으로 날아갔지만 그가 구축해 놓은 친시장과 반시장의 기묘한 협동은 한화그룹, 나아가 재벌의 의미에 대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시교육감과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성공회대의 상징적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 것은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웅변해 주는지도 모른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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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015-08-31 20:59:24
지금 그들이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죠? 반국가단체 활동이라도 하고있나요? 기자님 글쓰신거보면 집권여당 쪽 사람들이 아니니 좌익 역적도당으로 생각하시려나요?

1233 2015-08-31 20:56:06
딱할뿐입니다. 우리 학교 모르는 사람이 이 기사를 본다면, 국가전복 내란이라도 꾀할려고 다들 성공회대 모이는줄 알겠습니다. 스토리 만들려고 애쓰시는건 좋은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학교라고 하여 이런식으로 억지 스토리 짜서 괴물학교 만들지마세요. 객관적 사실들만 쓰시다가 왜 막판가서 기자님 상상력의 소설을 마치 사실인냥 꼽아넣으십니까? 부끄러운줄 아세요. 유시민 전의원, 박원순 시장도 성공회대 교수출신입니다

1231 2015-08-31 20:52:46
그리고 조희연,이재정,김승연 등 인사들이 밑도 끝도 없이 똘똘뭉치고 학교 내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듯이 글을 쓰셨는데, 성공회대는 학생들의 힘이 매우 강력하고 학교가 작은만큼 학생들 개개인이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개방적인 학교입니다. 김승연 회장의 이사 재임기간도 언급하셨는데, 맷값폭행 사건 이후 성공회대 학생들이 직접 몰아낸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세상은 좌,우 이진법적 논리로만 판단하는 기자님이

1212 2015-08-31 20:49:31
성공회대 졸업생입니다. 서울시교육감과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성공회대의 상징적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 것은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웅변해 주는지도 모른다.라는 기사의 끝맺음이 너무하네요, 좌파 성향 인사들이 정치권 전면에 서게되면 우리나라 정부가 무너지고, 천지가 개벽하는 파멸이라도 온다는 의미입니까? 무슨 글을 저렇게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