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바라본 화면 밖의 ‘아이돌’
PD가 바라본 화면 밖의 ‘아이돌’
  • 미래한국
  • 승인 2014.04.0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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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 나는 방송국의 공채 PD로 입사했다. 그리고 2년차에 퇴사를 결심했다. 누군가는 짧다고 말하겠지만 나에겐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던 회사생활이었다. 내가 했던 업무는 AD(Assitant Director), 즉 조연출이었다. AD는 PD가 되기 전 단계인데 말 그대로 연출을 보조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PD라고 소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AD일 경우가 많다. 방송계에서는 입봉(코너, 혹은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것)하기 전까진 PD라는 명칭을 부여해주지 않지만 외부인들을 대할 땐 편의상 그렇게 소개를 하는 것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건 즐거웠다. 학창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다양한 방송 장비를 다룰 수 있고 비록 짧은 분량이었지만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 송출을 보는 것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바로 연예인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PD가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 라고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어쨌든 나 역시 한 사람의 대중이고 또 시청자니 이해 바란다.

처음 배치 받았던 팀에서는 데일리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적응 기간이 지난 뒤 나는 생방송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돌을 하루종일 밀착 취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업무를 했다. 소녀시대, 시스타, 포미닛, 다비치를 코 앞에서 찍는다고?! 딱히 그들에게 열광하는 골수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아름다운 아이돌을 마음 놓고 따라다닌다는 사실은 상당히 설레는 일이었다.

주위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시작된 업무. 오후 6시에 시작되는 생방송이니 그 전까지는 꽤 여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지하주차장에 스탠바이 해야 하는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었다. 그때부터 6mm 카메라를 들고 아이돌의 밴이 도착하기만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아이돌 밀착 취재

당일 컴백 무대를 발표하는 아이돌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새벽 6시쯤 방송국에 도착한다. 나는 그들이 밴에서 내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간단한 질문을 한다. “오늘 기분 어떠세요?”, “기다려준 팬들에게 인사 한 마디 부탁드려요.” 갑작스러운 질문인데도 막힘없이 대답한다. 대기실에 도착한 그들은 사전 녹화(생방송 전 미리 녹화를 해 놓는 것)를 위한 헤어 및 메이크업을 받고 의상을 입는다. 인지도 있는 아이돌의 경우 꽤 많은 공을 들여 컴백 무대를 제작하고 대부분의 경우 사전 녹화와 생방송이 함께 이뤄진다.

사전 녹화는 생방송과 똑 같은 긴장감으로 진행된다. 몇 달, 몇 년을 준비해온 음반을 처음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전날부터 방송국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려 온 팬들의 힘이 여기서 발휘된다. 무대 위의 가수가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팬들은 더 큰 박수와 환호로 응원한다. 3분의 무대를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은 3분의 무대를 위해 몇 달을 준비해 온 가수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후 3시 정도가 되면 사전 녹화를 해야 하는 팀들의 녹화가 대부분 끝난다. 그후 본격적으로 출연자들의 리허설이 시작된다. 음향 및 출연자들의 동선을 체크하는 드라이 리허설과 카메라의 무빙을 확인하는 카메라 리허설 두 종류의 리허설이 있는데 방송국 사정에 따라 스케줄은 다르게 짜인다. 경우에 따라 새벽 4시에 리허설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아이돌들의 방송 당일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면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모니터링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혹은 각종 프로그램에서 나온 촬영진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기 바쁘다. 휴식을 취하며 수다를 떨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모니터링을 하는 그들의 표정은 정말 프로페셔널 했다. 그런 프로 정신이 없다면 절대로 지금 이 무대까지 올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이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하고 싶은 것을 참고 견디며 때로는 하기 싫은 것을 해야만 했을까. 그렇게 그들은 철저하게 기획되고 만들어진다.

 

철저히 기획되고 준비된 아이돌

그동안 나 역시 그런 모습만을 TV를 통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찍고 있는 것들은 달랐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 나가고 싶은 진실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었음에도 전혀 야하거나 섹시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안무의 특성상 무릎으로 무대를 쓸어야 할 때면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평소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했던 꽤 많은 아이돌들이 사실은 꽤 괜찮은 가창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아이돌에게 관심이 없었다. 가창력이 별로인데 노출로 승부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을 취소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선 긴장의 시간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좁은 통로에서 나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지나가는 선배들에게 90도로 인사하려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해졌다. 대기실에선 제대로 된 식사 대신 김밥이나 도시락 따위의 간단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은 나와 같은 막내 조연출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스태프들은 차라리 편한 복장을 입기라도 했지만 그들은 행동하기도 불편한 의상에 두꺼운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오후 6시. 드디어 생방송이 시작된다. 무대 위에서, 차례를 마친 후엔 대기실에서,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무대 뒤에서 그들은 모두 프로그램의 일부가 된다. 두근거리고 떨면서 순서를 기다리던 표정은 무대에 올라서는 계단을 밟는 순간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무대 밖에서 오직 그들만 기다리고 있는 팬들을 위해 힘들어도 찡그리지 않고 늘 환하게 웃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그들은 소비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주체였다. 그래서 AD 업무를 하는 동안에 그들 역시 나와 다름없는 근로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름다운 아이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도, 그들로부터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를 받아도 생각만큼 큰 감흥은 없었다. PD라는 이유로 오히려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고 당시 나는 아이돌을 보는 것보다 집에 가는 기쁨을 더 누리고 싶었던 것 같다. 퇴사한 지금, 가끔 그들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다거나 TV에서 무대를 볼 때면 마음 속 깊이 응원한다.

노출이 심한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가치관을 멋대로 판단하거나 계속 되는 열애설과 음악성 논란을 부추기는 대중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신은 아이돌을 얼마나 알고 있냐고. 수백, 수천만 시간을 쏟아 부어 무대에 선 그들에 비해 얼마나 충실한 시간을 보내왔냐고.


김정훈 전 TVN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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