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위기론 이번에는 다르다
삼성전자 위기론 이번에는 다르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4.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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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사업은 끊임없이 추격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추스르기에 시간이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과거 여러 차례 삼성의 위기론을 내세웠던 이건희 회장이지만 이번에 제기되는 삼성전자의 위기론은 사뭇 달라 보인다. 삼성전자가 스마트TV부문에서 소니를 제치고 이어서 스마트폰에서 애플을 추격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나오는 위기론이기에 더 그렇다. 최근 삼성전자 사옥의 엘리베이터에서는 연일 ‘노키아는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캠페인 방송이 흘러 나왔다.

삼성전자 위기론의 배경으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주력 업종인 스마트폰 시장의 포화 상태를 꼽는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10억 420만 대로, 2012년 대비 38.4% 증가했다. 공급의 급증이 시장 포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의 배경에는 스마트폰 성장률 둔화가 있다. 실제로 국내 스마트폰 성장률은 2012년 이후 둔화되고 있다. 2013년 국내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17조1403억 원으로 2012년 대비 7.2% 감소했다.

애플을 추격하는 상황에서 나온 위기론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삼성전자의 실적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실적 전망 컨센서스는 실망스럽다. 지난해 말 기준 9조7609억원에서 올해 1월 말에는 8조6505억원, 2월 말에는 8조5744억원까지 줄었다. 3월 들어서는 8조4756억원으로 처음으로 8조5000억원대 아래까지 하락했다. 현재 전망치는 지난해 1분기의 8조7795억원과 비교하면 3.5% 줄어든 수치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단지 시장포화와 경쟁자들의 추격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 안에 ‘혁신’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4’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삼성전자의 갤럭시S5가 공개됐지만 반응은 심드렁했다.

이날 공개된 갤럭시S5는 갤럭시 시리즈 중 처음으로 5인치가 넘는 풀HD 화면을 장착했고 스마트폰으로는 처음으로 심박센서를 탑재해 실시간으로 심박 수를 측정할 수 있게 했다. 홈버튼에는 지문인식 스캐너가 탑재돼 보안기능과 편의성도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품인 갤럭시S4와 비교해 볼 때 ‘새로운 것이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스펙이 개선됐지만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할 것이란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하드웨어에 치중해 온 전략이 한계에 봉착한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은 그래서 나온다.

삼성전자의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전문가가 있다. 24년간 기업분석 애널리스트의 길을 걸었던 파인 투자자문 민후식 대표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매경과 한경, 조선일보가 선정한 IT 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로서 투자자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왔다. 그런 민 대표는 최근 삼성전자 위기의 본질에 대해 ‘벤치마킹의 한계’를 지적한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다름 아닌 미래 라이벌 기업에 대한 철저한 벤치마킹에 의한 것이었고 그러한 노력은 성공을 거뒀다고 그는 평가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지난 롤모델이 ‘소니’였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맨파워의 증강으로 결국 소니를 앞질렀다.

 

삼성전자 ‘벤치마킹’ 전략의 한계인가

그후 삼성은 더 이상 일본 전자업체를 벤치마킹하지 않고 미국 기업들로 시선을 돌려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로서는 미국 기업들의 기술과 경영을 단기간에 벤치마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술의 경쟁력이라는 것은 결국 최적화 능력에 달려 있지요. 어떤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구현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기술들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삼성전자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임원의 말이다. 그는 현재 삼성에 휴대폰 부품을 제조 납품하는 기업의 경영자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하드웨어 기술에서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바를 구현해 온 집중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기술이 최적화에 해당하는 것이냐는 것은 별도의 문제죠.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 스마트폰에는 애플 폰보다 많은 부품이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는 하드웨어 기술에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사실 그러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삼성전자가 주력업종인 휴대폰에서 지나치게 하드웨어에 치중함으로써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부문에 투자를 놓치고 있고, 그 결과 애플의 아이폰에 밀릴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깨고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을 보란 듯이 추월해 버렸다.

그런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프트웨어에 투자하기 보다는 구글의 오픈 소스인 안드로이드 진영에 가담하고 전사적인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가능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마케팅과 영업방식이 결국 부품사들의 기술개발 능력을 저하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아무래도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지요. 그래서 애플처럼 부품사들에게 구매 개런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품 제조사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삼성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선도투자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참 어려운 문제죠.”

삼성 스마트폰에 부품을 납품하는 다른 중소기업 대표의 이야기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이런 구매 전략은 국내 부품사들의 투자를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협력사의 입장에서는 장기투자 관점에서 혁신을 만들기 어렵고 단가를 낮추기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된다. 삼성전자는 그러한 문제를 부품사와 함께 생산기지를 중국이나 동남아로 옮기는 전략을 택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전략은 사실 몰락한 노키아가 이미 걸었던 길이다.

기술 혁신을 이루기보다는 생산비가 저렴한 쪽으로 경영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수요자의 효용에 부응하지 못하는 전략은 혁신을 이룬 진영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인건비가 싼 지역을 찾아다니는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 경제학자가 있다. 바로 천재 경제학자로 주목받는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 대 교수가 장본인이다. 그는 거대한 침체(Great Stagnation)라는 책을 통해 세계 경제의 부진 이유가 ‘혁신의 부재’에 있음을 그야말로 혁신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흔히 ‘낮은 나뭇가지 이론’이라 불리는 코웬의 이론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이렇다. 오늘날 기업들은 손이 닿는 낮은 기술의 나뭇가지의 열매를 다 땄고 이제 더 높은 부가가치의 열매들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에만 달려 있다는 것. 이는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과 창조적 파괴로 경제가 성장한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코웬 교수는 지난 해 한국에서 열린 한 경제포럼에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95%를 노동비가 저렴한 지역을 구글링해 생산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의 일침은 사실 삼성전자가 기술혁신에 소홀히 하고 비용절감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 한, 그런 낮은 나뭇가지 열매는 중국과 인도 등에 빼앗겨 먹을 것이 없게 될 것이라는 충고였다.

삼성전자의 가장 큰 경쟁력은 하드웨어 혁신이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 성능이 고스펙으로 평준화된데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코웬 교수의 지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 화웨이, 레노버, ZTE,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약진하고 있는데다 과거에는 저가형 스마트폰을 주로 선보였지만 이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래그십 모델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

삼성전자가 코웬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인 권오현 부회장이 지난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며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도전정신을 발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던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권 부회장은 주총 전날 그룹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삼성을 견제하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내부적으로 위기의식을 심도 있게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좀 더 깊은 곳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 위기를 극복해 온 총수, 이건희 회장의 부재가 가져올 그룹의 경영 문제다. 이건희 없는 삼성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상식적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 상식이 부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 이건희 회장의 건강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사내 안팎에서 흘러 나온다. 그러한 문제로 삼성가 3세 경영 승계의 시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삼성가 3세의 경영 능력이 검증됐느냐는 세간의 의문이다.

지난 3월 조선일보가 개최한 ‘삼성전자 없는 대한민국’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의 발언은 주목을 끌었다. 그는 “한국경제가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기에 미래를 위해 삼성전자를 여러 기업으로 쪼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주장의 배경은 물론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을 분리할 경우 50% 정도의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증권가의 분석도 있다.

한국적 재벌문화 이대로 좋은가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이건희 없는 삼성전자의 신화는 계속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우리에게 한국경제에서 이제 재벌기업의 효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는 아닌지 묻고 있다. 한국 재벌기업의 긍정적인 효용성은 사실 기업 총수의 역할이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총수를 잘못 둔 기업들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총수가 현명한 기업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런 이유로 사실 우리는 재벌기업들이 가진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30대 재벌 기업의 총수들의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평가해 왔고 재벌기업의 존재를 인정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대한민국의 고민은 그 점에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총수가 없다고 해서 그 나라 기업들이 모두 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미군정하에서 재벌들이 해체되고 기업들이 사장단의 경영하에 놓이면서 이들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의 역할을 해왔다. 일본 경단련은 기업들이 정치권에 대해 로비를 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통해 정치권을 자유시장경제로 견인해 왔고 일본 좌익 노동계에 대해 타협이 아니라 생산성 운동으로 그들의 제자리를 찾게 했다.

미국의 전미기업협회 역시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의 든든한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에서처럼 재벌총수 비선들이 정권과 관계에 로비를 통해 기업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행태다.
확신할 수 없는 재벌3세 승계라면 차라리 이쯤에서 재벌문화를 청산하고 우리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기업들이 시장경제 이념으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관치와 좌익노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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