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라, 그리고 진화하게 하라”
“견뎌라, 그리고 진화하게 하라”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4.01.07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인터뷰] 知性에게 듣는다 -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3년이 끝났다. 글자 그대로 깜짝 놀랄 사건도 많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많은 한 해였다. 정치권은 여전히 타협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보였고, 이런저런 시민단체나 노조들은 끊임없이 정권에 불복하는 정치 시위를 벌였다. 이제는 사회 분열과 이념 갈등이 고착화돼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 형국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런 혼란스러운 모습을 벗어나 희망찬 2014년을 보낼 수 있을까. <미래한국>이 갑오년 청마해를 맞아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 학자이자 문학계 원로인 복거일 작가를 만나 새해 전망과 통합의 가능성을 들어봤다.

- 지난해에는 어느 해보다 사회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사회 원로로서 보시는 새해 2014년의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국내 정국을 보면 뭐 하나 시원하게 되는 게 없으니 국민들이 답답할 겁니다. 저부터도 그렇죠. 그런데 정치가 원래 그렇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뚜렷한 업적을 낸 대통령도 재임 당시에는 국민들이 답답하게 느꼈습니다.

정치는 자원을 나누는 행위이니, 어차피 타협을 해야 하고, 타협을 하려면 먼저 다툼이 있어야 하죠. 사실 제 인생에서 신사들처럼 멋지게 타협하는 정치가는 본 적이 없어요.

- 한국 정치 상황에서 보면 타협이라는 게 결국은 한 쪽이 손해를 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까요?

상대가 존재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도 나름대로 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타협입니다. 상대 의견을 따져본 후에 이견을 좁히는 것이죠. 타협이란 게 원래 이런 식이니 서로 답답할 수밖에 없어요. 이념적으로 각자의 스펙트럼이 있는 사람들이니 더 그렇죠.

그런데 틀렸건 맞았건 상대의 지분을 인정하는 것, 이게 자유주의입니다. 오르테가가 말했듯이, ‘다수가 소수에게 함께 살 수 있다고 손을 내미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입니다. 선거에서 의석 100%를 차지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고,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하는 거죠.

예컨대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등 세금을 갑자기 몇 배로 올리는 일이 이런 정신을 어긴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일시적인 다수가 헌법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법입니다. 이때 판단 기준은, 법 외, 헌법 밖에 있는 도덕에서 권위를 얻습니다.

양보가 어려운 한국의 정치지형

- 현실적으로 볼 때 우리 정치지형에선 특히 타협이 어려운데 왜 그럴까요?

1970년대 유신 체제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가 강화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때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좌파도 극단적 형태로 형성됩니다.

역사라는 게 본질적으로 경로 종속적이라 이 역사적 사실이 현재의 정치지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구조를 물려받아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좌파에서 극단주의가 득세를 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특히 타협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양쪽이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에 들어갔어요. 한 쪽이 양보하면 저쪽이 양보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쪽에서 양보하면 저기서 더 큰 것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예컨대 여당이 하나를 양보하면, 야당은 보답으로 하나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일단 하나를 확보했느니 더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이죠. 양보가 상대방의 목표를 더 강화하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쪽도 양보를 하면 손해를 보게 되죠. 그러니 서로 양보를 하지도 못하고 설사 양보하려고 해도 내부 반발이 큰 겁니다.

- 말씀을 들어보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일단 올해는 그대로 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부 충격,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블랙스완’이 이것을 바꿀 수도 있어요. 경제 변동이나 국내외 안보 변화 등이죠.

그러면 전선이 새로 생길 수 있는데, 전 6월 지방선거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한 쪽이 승리하는 식으로 민심이 드러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 정국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월 지방선거가 막힌 정국을 푸는 계기 될 수도

- 저도 6월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결과를 예상해 보신다면요.

사실 우리 사회는 이미 이념 지형이 고착화되고 동일화가 심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의 일방적 승리는 힘들 거예요. 다만 미국의 티파티처럼 소수의 똘똘 뭉친 세력이 진영을 쥐고 흔드는 현상이 나오고 있어요. 미국에서 CNN이 몰락하고 폭스뉴스가 부상한 게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조선일보와 한겨레만 승승장구하잖아요. 종편이 왜 성공했습니까. 우파의 고정 시청자가 있었던 거죠.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갈수록 점점 이념적으로 공고화되고 타협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미국이 200년 역사에 이례적일 정도로 꽉 막혔다고 하잖아요. 우리나라도 그래요. 한겨레신문 보는 사람, 조선일보 보는 사람이 나눠져 있습니다. 민심이 이러면 정치가들의 행동의 선택 여지가 적어져요.

-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결론은 기대보단 잘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 선거 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파는 대통령 선거를 하기도 전에 졌다’고 했는데, 선거에서 경제민주화를 내건 순간 이념적 전선이 형성 안 되기 때문이에요.

경제민주화는 용어 자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제민주주의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여기에 무엇을 집어넣든지 간에 자유주의와는 상충되는 것입니다. 선거에는 이기겠지만 뒷감당이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는 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점은 선거 공약과 당선 후의 상반된 정책 지시가 혼재된 상태여서 경제 관료들이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기본 작전계획과 실제 작전지시가 다르기 때문에 군인들이 방향을 잃은 것과 같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잘 돌아가니 기대 이상이라는 말입니다.

- 철도파업의 결과는 어떻게 보십니까? 민영화는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이 굳어져 사실상 노조의 승리라고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네 동의합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은 애초부터 민영화에 대한 의사는 없었다고 봅니다. 철도공사는 괴물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득권 중에 하나가 공기업들이니 민영화하려면 엄청난 저항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현 정부가 자유화에 대해 그만한 의지는 없어 보여요.

그런데 이게 큰 손실은 아닙니다. 민영화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지만, 여러 공사들이 부패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뀔 수 있어요.

공기업 개혁으로 실질적 민영화 효과 얻어야

중요한 것은 공기업 개혁에 착수할 명분은 살렸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철도공사에 대해 개혁을 진행하다보면 실질적 민영화 효과를 얻을 수가 있어요. 공사의 자산을 팔아서 몸집을 줄이고 전체 시장을 늘이거나 외주를 주는 방안도 있죠.

- 화제를 돌려 농담 하나 하겠습니다. 복거일 선생님은 시장경제주의자이신데, 오히려 시장에 적응하지 못해 부자가 되지 못했다고 조롱하는 것을 봤습니다.

맞아요. 저 가난합니다. 하하. 현재 시장이 원하는 것은 개인의 욕구 충족입니다. 소설보다는 만화나 영화가 먹히죠. 그러니 시장경제에서 소설 쓰는 사람이 가난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이런 지적인 작업을 선택한 것이 제 선택이라는 사실입니다. 시장경제의 가치를 말했지, 저 자신이 시장에 잘 팔리도록 글을 쓴다는 것은 아니었죠. 저는 공공재를 생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좌파가 아닌, 우파의 가치와 공공재라서 욕만 먹고 돈은 못 버는 것일 뿐이죠. 저는 우파 지식인들을 위한 원천적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고 봐요.

- 선생님과는 반대로 문화시장에서는 시장을 공격하는 좌파 지식인이 부자가 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동서고금이 다 그래요. 사람은 천성적으로 시장에 대해 적대적이고 낯설어 해요. 신석기 시대에 부족을 이뤄 살 때부터 그런 마음이 형성된 것 같아요. 모두 가난한 채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 만족하는 거죠. 교환이나 시장은 없었고요. 시장이 나온 것은 만년이 채 안 돼요.

그리고 제가 재벌을 옹호하지만 재벌 개인의 경우 고(故) 최종현 SK 회장 딱 한 사람만 좋아합니다. 나라를 생각했던 분이죠. 재벌 총수는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이병철, 정주영 회장님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제가 재벌들을 옹호하는 이유는 그들을 방어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자체가 비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약한 고리가 재벌이잖아요. 실제로 삼성공화국이라고 해서 일정 부분 성공도 했어요. 재벌이라는 기업 형태를 옹호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재벌이나 재벌기업에 속한 사람들이 자유주의 경제관이 없는 것은 문제 아닐까요.

그건 일종의 분업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뛰면서 돈 벌고, 나는 책 읽고 글 쓰면서 연구하는 것이죠. 일하는 사람들은 책 읽을 시간도 없어요. 아마 그런 공부를 하면 보스한테 쫓겨날 걸요.

한때 대기업 입사시험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과목을 설치하면 대한민국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실제 기업들 입장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사회시스템 자체가 민심에 따르는 것이라 어렵다고 했어요. 여론에 찍히면 안 된다는 것이죠.

 

1980년대 좌파 비평가들이 인민재판을 하기도

- 사실 이문열 작가와 함께 좌파의 문화 헤게모니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우파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단 주류가 좌파인데 그 좌파 전체를 비난했으니 욕먹는 것은 당연해요. 노무현 정권 말기였는데 이런 일이 있었어요. 문화미래포럼이라고 우파 문화예술인단체를 주도했는데 그때 금강산에서 ‘6·15실천 남북한작가회의’라고 열렸어요. 다들 동포가 상봉했다며 작가들이 얼싸안고 협력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북한에 무슨 작가가 있냐’고요. 북한에 사회를 비판할 줄 아는 진정한 작가가 있다면 탄광이나 요덕수용소에 있지 금강산에 있겠냐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 작가들이 거기까지 가서 북한인권, 핵무기 문제를 거론하지 못하고 온다면 ‘정치 놀음’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어요.

그리고 백낙청 선생이 주도하는 민족문학작가회의라고 있었어요. 거기다 대고 제가 요새 세상에 무슨 민족주의냐며 단체 이름에서 민족을 때라고 시비를 걸었어요. 그런데 이런 문제 제기에 누구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저에게 비난을 한 사람은 없어요. 내 이야기가 옳으니 반박을 못한 거죠.

그런데 제가 처음에 등단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은 더했어요. 문단에 좌파 주사파가 설칠 때인데요. 젊은 친구들이 선배들 작품 가지고 인민재판을 했어요. 작품이 왜 이 모양이고, 이게 어디가 당성에 충실하냐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요즘은 편한 거예요. 예전에는 ‘낫 들고 온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요즘에는 댓글만 달잖아요. 웃기는 일은 당시에 맹장이라던 문학 비평가들이 요즘 다 시류에 편승해서 논술 교사해서 돈 벌어서 회장님 소리를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 예전보다 우리 문학계가 많이 약화됐죠? 요즘 문학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요즘 소설은 사소한 일이나 세태적인 것을 다루죠. 그런 면에서 전 행복한 세대입니다. 물론 시장주의자이면서도 소설을 못 팔아서 가난하지만, 저희는 역사나 시대 가치를 고민했어요.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나, 그 반대인 이문열, 또 그 아류로 평가 받는 저 복거일이나 모두 지사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사연할 수 없잖아요. 1987년 6월 혁명 성공 이후 공황이 왔던 거죠. 그래서 90년대 초에 운동권 문학 수요가 갑자기 없어지고, 순수 대중문학이 약한 틈을 일본의 대중문화 하루키가 차지한 겁니다.

이것은 운동권의 잘못입니다. 제가 등단했을 때 SF소설을 쓰면 출판사에서 막았습니다. 김성종 작가의 추리소설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그런 문학들이 발전을 못했고 결국 지금 상황이 된 것입니다.

- 복거일 선생님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출간 계획은요?

경제학을 전공하고 평생 공부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정리해서 영어로 썼고 이달 말에 책을 펴내려고 합니다. 제목은 ‘라세 에볼유에’(laissez evoluer). ‘진화하게 하라’라는 뜻이죠. 대표적인 자유주의학자 미제스나 하이에크 이론은 1930년 지식이니 이미 낡은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남의 이론을 수입하는 지식의 행상 노릇을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자생적으로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면 훌륭한 자유주의자가 나올 수가 없다고 보거든요. 지금은 어느 정도 우파도 성장했으니 자유주의 연구도 깊어져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6·25에 대해 쓴 작품이 있어요. 6·25는 발발 3일 만에 한국군의 저항 능력이 상실됐고, 3개월 만인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도 무너졌어요. 즉 개전 후 3개월만 남북한이 싸웠고, 그 이후는 연합군과 중국군이 전쟁을 한 셈이죠.

그래서 미군이나 중국군 병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미군 자료가 많으니 미군병사를 주인공으로 했어요. 역시 영어로 썼는데 레제드라마(읽는 희곡) 형식이에요.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새해 덕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전 조심스러운 낙관이라는 말을 씁니다. ‘조심스러운 낙관주의자가 돼서 견뎌라’라는 것이죠. 정치나 사회가 마음에 안 들어도 말이죠. 전 우리는 행복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자식을 키우려고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황성준 편집위원
정리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사진 신경수 기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