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13일을 기준으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지자체들마다 2022년을 지방자치 개혁의 원년으로 삼는 선포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그 진정한 의미를 찾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일단 개정된 지방자치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주민주권에 의한 주민참여 강화다.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주민조례발안법’을 별도로 만들어 주민참여를 높이도록 했다.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르면 주민이 단체장이 아닌 의회에 직접 조례안의 제정이나 개정, 폐지를 청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주민조례발의 및 주민감사청구를 위한 인구요건도 완화된다. 참여연령 또한 기존 만 19세 이상에서 만 18세 이상으로 하향됐다.
시의회의 권한도 강화됐다. 무엇보다 지방의회가 직접 사무직원에 대해 임면과 징계 등의 인사권을 갖게 된다. 아울러 자치입법·예산심의·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하는 일종의 의원보좌관 역할인 ‘정책지원 전문인력’이 도입됐다.
인구 100만이 넘을 경우 준 광역시로 대우하는 특례시 지정도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분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만 커진다는 것이다.
돈은 광역에, 일은 기초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홍근석·김봉균 연구위원 등이 2019년에 조사 보고한 ‘중앙-광역-기초정부 간 재정관계 재정립’ 연구에 의하면 정부 간 재정관계에 있어 중앙과 지방 간 연계·협력이 중요하게 인식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지방재정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능배분 측면에서 현재 관련법에 규정되어 있는 정부 간 사무배분에 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공동사무 등의 형태로 법령상 규정과는 다른 형태의 사무 처리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중 기초자치단체의 세출예산은 광역자치단체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규모와 증가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이 중앙정부 및 광역자치단체로부터의 이전재원이라는 점에서 기초자치단체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세원에 비해서 더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석하자면 기초자치단체들이 중앙이나 광역에서 해야 할 일을 떠맡아 하는 일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조금 형태로 수행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의 위임사무, 특히 사회복지 분야 위임사무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세원배분 측면에서 2018년 기준 중앙-광역-기초정부 간 세원배분 비중은 77.5:15.5:7.0으로 나타났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의 세원이 기초자치단체보다 2배 이상 많으며 연평균 증가율 역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기초 간 기능배분 현황을 고려할 때 광역-기초 간 세원배분 및 재정조정이 보다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뜻한다.
셋째, 재정조정 측면에서 국고보조금의 경우 광역자치단체가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더 많은 국고보조금을 배분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기준보조율 준수 여부의 경우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업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기준보조율이 준수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시·도비 사업에 대한 기준보조율 역시 기준보조율이 준수되지 않은 경우가 기준보조율이 준수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법 상에는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전혀 수행되고 있지 않은 사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 분권 위해 기초-광역 통합 필요
이를 종합해 보면 정부 간 기능배분 및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에 대해 법률상의 규정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고, 중앙-광역-기초 간 기능배분과 관련한 계약 및 조정을 담당하는 기구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제시된다.
세원배분 체계의 개선 방안과 관련해서는 기초자치단체의 세수 증가를 위해 세원의 편재가 큰 자치구세를 세원의 편재가 작은 특·광역시세와 교환하는 방안과 보편성과 충분성이 높은 지방소비세에 대하여 공동세 운영을 검토하는 것 등을 연구팀이 제안한 부분도 주목된다.
이러한 연구 보고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현행 시·도와 같은 광역단체의 효율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러한 광역자치단체 대신 기초자치단체들을 묶어 메가시티(Mega city) 형태로 광역화하는 안이 제시되는 배경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경기도의 경우 남북도로 분할해서 좀 더 촘촘하고 치밀한 행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광역분할론은 옥상옥의 구조를 이중으로 분할하자는 의미여서 광역자치단체가 갖는 비효율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결국 지방재정 분권 의 문제는 현재의 기초-광역을 어떤 식으로든 재편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도가 해결해야 할 근원적 문제라는 이야기다.
관련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겉보기에 지방분권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정 지원이 없어 실상은 권한만 준 것에 불과하다. 자치단체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작 자치단체는 혼란스러워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에 대한 내용이 담긴 지방분권형 개헌을 해야 정부와 지방정부가 동등해질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특례시, 하려면 제대로 합시다!
지난 1월 13일 수원·고양·용인·창원시가 ‘특례시’로 공식 출범했다. 2020년 12월 9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탄생한 특례시는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에 광역시 수준의 행정·사무 권한을 부여해 ‘지방분권’을 실현하는 모델로 평가된다. 수원·고양·용인·창원시는 몸집보다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왔다.
특례시로 대도시급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특례시는 지역개발채권 발행권, 건축물 허가, 택지개발지구 지정,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해제, 5급 이하 공직자 직급·정원 조정, 지방연구원 설립·등기 등 8개 권한을 갖게 된다.
앞으로 자치분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련 법 개정까지 추진된다면 정부의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 등 행정 권한도 확보한다. 다만 특례시에 걸맞은 행정절차 간소화와 재정수입 증가, 도시 인프라 확대 등 권한을 누릴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았다. 4개 시가 특례시로 출범하면 사회복지급여 기본재산액 기준이 대도시로 상향하는 게 가장 큰 변화다.
하지만 해당 특례시 지자체들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름만 특례시라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특례시의 행정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주민조례발안제 등을 통한 실질적인 지방행정참여장치, 중앙과 지방의 재정분권, 특례시에 한정적으로 부여된 특례사무 등이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특례시가 자족 도시를 지향한다면서도 행정상 ‘특례시’를 명칭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모순이다. 가령 용인시는 특례시로 지정되었지만 주소 상에는 ‘용인 특례시’라는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자치법상 특례시 사용에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로명 주소, 공문서, 단체장의 직인 등에는 특례시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제한 사항은 서울 특별시, 부산,광주 광역시, 그리고 제주 특별 자치도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과 차별적이어서 주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행안부는 이에 대해 ‘지역명과 법적 지위명이 변경되지 않아 특례시에 해당하는 지자체의 명칭은 동일하게 사용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내용면에서도 택지개발지구 지정 등 일부 업무는 여전히 광역단체장과 협의토록 하고 있어 ‘반쪽 특례’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이러한 차별적 법령 개정과 함께 특례시와 중앙 간에 사무 이전과 관할, 그리고 무엇보다 특례시 재정 분권에 대한 전향적인 입법 개정안이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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