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는 75년 전 종결되었다. 대한민국은 55년 전인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우호선린관계를 맺으며 미래를 향해나가자고 합의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도 누가 ‘친일문제’가 정치적 중심 논쟁이고 ‘친일자’ 색출이 공공연히 진행되는 사회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70여년 역사를 되짚어보면 미국에 이어 일본만큼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기여하며 함께한 나라도 없다.
우리가 자랑하는 전자, 조선, 철강, 반도체산업의 기반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도입했거나 협력했던 결과가 아닌 것이 없다. 반면 주변의 러시아 및 중국과는 1992년 전후에 수교했고 산업기술적으로나 자유민주적으로 도움받은 것이 없다. 같은 민족이라는 북한은 침략전쟁을 벌여 수백만 명을 살상하는 반민족의 상징이고, 아직 정식 국가관계는 커녕 최소한의 협력관계도 없다.
실제 일본이 만들어낸 사회수준과 매력이 없다면 매년 700만 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이 일본을 방문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반면 ‘같은 민족’이라는 북한에는 정부의 대대적 지원에도 누구도 관광가거나 사업하려 하지 않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6·25 침략전쟁과 학살에 대한 정당한 사과와 배상의 문제는 일체 거론하지 않으며, 오직 75년 전 친일문제를 거론해 정치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극명히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2017년 8월 광복절 축사에서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며 반일선동을 예고한 바 있었다.
시진핑 주석도 한국을 방문해 한 연설에서 병자호란과 6·25 침략 등 중국 침략은 거론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오직 임진왜란만 거론하며 항일정신을 함께 계승하자고 역설했었다. 그런 결과로 박근혜 정부 당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가자며 합의한 ‘화해와 치유재단’ 방식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문재인 정부는 다시 폐기시켰다.
연이어 대법관에 대한 ‘적폐청산’을 내세운 대대적 대법관 교체 이후에는, 대일청구권 문제를 해결했던 1965년 합의를 부정하고 일제 징용자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유효 판결을 이끌어내 반일 적대감 고조와 한일관계 악화의 길로 나아갔다.
생산과 건설의 능력이 없는 세력의 과거 단죄 정치
최근 6·5 전쟁 영웅인 고 백선엽 장군에게 국립묘지를 허락할 수 없고 국립묘지에 묻힌다면 파묘(破墓)하겠다는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고 이승만, 박정희는 친일자란 선동이 계속되고 있다.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 선생이나 수백 년 계속되어온 전형적인 조선의 보복정치이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목표로 하는 정치 행태이다. 그 목표는 오직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주도한 분들이고, 결국은 그 후예(後裔)이자 토착왜구라는 보수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다. 생산과 건설도 없고 미래를 만들 화합도 없이 오직 과거를 단죄, 정치적 경쟁세력을 몰아내는 배제와 선동의 정치이다.
일제시기 일본군 소속이던 박정희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은 물론이고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인 이승만 대통령까지 친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광기(狂氣)적이고, 전형적 파시즘체제의 모습이다. 물론 모든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고, 개방적 문명국가를 지향해온 대한민국에 대한 자해행위일 뿐이다.
우리가 자주독립을 지향했던 것은 문명(文明)사회를 지향하고 보편가치가 지켜지는 번영사회를 만들 조건을 충족시키려는 것이었지 결코 ‘반일(反日)’을 지향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반일독립만이 지고지순한 과제였다면 일본에 그대로 남아 살아가는 60만 명의 재일교포는 반민족적 행위자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인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도 단죄하자고 해야 마땅하다. 만일 반일독립만이 지상과제였다면 문명 파괴적인 북한도 훌륭한 나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반일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 국민 중 미국과 일본으로 이민 가고 여행하려는 사람은 많아도, 북한으로 이민을 가려 애쓰거나 내 돈 내고 북한 관광하겠다는 사람은 없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자유롭고 번영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독립을 지향한 것이지, 문명수준과 동떨어지더라도 반일만을 지향하고 항일을 핵심가치로 여기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명 유린적인 조선사회가 처했던 민족파괴적 상황을 개선하고 근대사회를 만들고자 일본과 함께 했던 것을 소위 ‘친일행위’로 간주하고 단죄하는 것은 반문명적 행위이다. 중국공산당의 홍위병의 짓거리고, 유태인에 대한 독일 나치당의 짓거리와 마친가지이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 문명과 보편가치를 지향했던 것을 존중하지 않고, 홍위병들처럼 ‘자본주의적’이라고 적대청산하거나, 히틀러의 나치당처럼 ‘친 유태인’이라고 공격하는 격이다. 오히려 공산주의 중국이나 전체주의 북한에 근대문명의 도입조차 다 일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공산 중국과 자유 중국의 국부로 일컫는 손문(孫文)과 장개석, 중국 최대 문호인 ‘아큐정전’의 노신, 중국공산당 창당 주역인 이대교, 주은래 등도 모두 일본에 유학했거나 일본군 소속이었다. 적어도 18세기 이래로 중국과 조선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는 앞서간 일본의 근대성(modernity)을 습득해 자기 민족에게 공유, 확산시키려 했던 것은 민족적이고 보편가치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북한은 물론, 중국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에도 중화란 표현을 제외한 인민(人民)과 공화국(共和國) 등은 모두 다 일본이 만든 근대적 표현을 차용한 것이다. 그게 현실이고 잘못된 것은 없다.
문명사회와 보편가치의 지향을 제외하고 오직 친일과 반일로 구분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 지향점은 북한의 공산독재나 중국공산당의 패권 확장의 논리로 빠져들게 된다.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의 존재 자체가 ‘제국주의’ 위협이 존재하기에 당독재가 불가피하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분법은 반문명과 보편가치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작동되어 있다. 가령 동아일보와 고려대의 설립자 김성수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영웅 손기정의 예만을 비교해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김성수는 친일, 손기정은 항일로 구분하는 이분법에 빠져 있다.
1920년 이후 김성수가 주도한 동아일보와 고려대가 우리 민족과 문명에 기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일을 내세운 반문명적 사고일 수밖에 없다. 김성수만한 민족주의자를 찾을 수 없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당시 손기정의 금메달 획득은 항일활동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히틀러의 파시즘과 히틀러의 독일과 연대했던 일본 군국주의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에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이용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구나 일장기를 달고 뛴 손기정보다도 일장기를 삭제하고 보도했던 동아일보의 용기는 훨씬 민족적인 것이다.
굳이 우리 민족에 가장 친일적 세력으로 분류한다면 그것은 조선왕조이고, 상징적으론 고종(高宗)과 순종(純宗)이다. 고종에게 종묘사직은 있었지만 민족정신은 없었고, 근대정신도 없었다. 조선사회에 지켜지고 확립되어야 할 보편가치나 문명수준도 더더욱 없었다. 대신 왕조는 망명활동이나 항거도 없이 일본 지배를 받아들여 스스로 천황이 내린 왕(王) 작위를 감사히 받았다. 그 자녀들은 일본 황족과 결혼했고, 아들들은 일본군에 들어가 일본군사령관 계급장을 달고, 오히려 우리 민족을 독립시키려 태평양전쟁에 나선 미국 군에 맞서 싸웠다.
이런 행위를 넘어선 친일이 어디 있겠는가? 조선왕조가 바로 친일 수괴였고, 친일의 대표였다. 조선에 태어나 문명적 낙후를 실감하고, 왕조의 항복과 가담을 보고 살았던 나머지 모든 백성은 희생자에 불과하다. 왕의 지시를 받았던 이완용을 공격하며, 한편으로는 친일의 수괴였던 고종과 민왕후를 미화시키는 것은 원칙과 기준도 없는 반일선동의 소모품에 불과하다.
친일과 반일은 함부로 재단될 수 없는 것이다. 이분법으로 나눠야 한다면 문명지향이냐, 반문명에의 지향이냐의 문제였다. 일본은 임진왜란보다도 앞선 1582년 이토 만쇼 등 13명의 덴쇼 사절단을 근대화된 문명사회를 배우라고 유럽으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조선에는 무려 301년이 지난 1883년에야 대미 보빙사의 일원이던 유길준이 처음 유럽을 방문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 근세 301년의 차이가 바로 임진왜란부터 식민지배까지 조선이 일본에 뒤지고 굴종과 예속을 만들어낸 근원이다.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은 중국에 편입된 조선의 중·근세 암흑시대(暗黑時代)와 일제 식민시대를 물려받았을 뿐이다.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은 몇 백 년 뒤처진 문명 수준을 단기간에 따라잡고자 무진 노력을 다하며 문명사적으로 빛나는 나라를 만들어 세운 것이다. 조선왕조와 일제 군국 지배에 가담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 어디에도 친일이라 딱지 붙이고 공격받아야 할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김성수는 친일, 손기정은 항일이란 이분법으로 나뉠 수도 없다. 최남선과 홍난파는 친일, 이회영은 반일로 나뉠 수도 없다. 모두가 문명사회를 지향했고 민족적이며 항일을 지향했던 것이다.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민족적인 것
일본에 대한 배상(賠償) 문제도 결코 친일과 반일의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없고, 민족정기와도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동아시아 전역이 일본의 식민지였음에도 나라별로 일본에 대한 배상요구방식은 달랐다. 필리핀 5.5억 달러, 베트남 0.39억 달러, 인도네시아 2.23억 달러 배상처럼 식민지배의 배상 문제를 합의 종결시킨 나라들도 있었지만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싱가포르, 라오스 등 대부분의 나라는 배상청구권 자체를 포기했다. 승전국인 미국과 당시 소련도 배상청구권을 포기하고 종결지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55년 전 무상 3억, 유상 2억 등 총 5억 달러로 합의해 국교수립한 이후 지금까지 배상 문제가 끊이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다. 배상을 포기한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나 승전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친일세력이기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아직까지 배상받기를 포기했던 나라들에서 민족정기나 항일정신이 죽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위안부 및 징용자 문제에서 배상을 요구해 관철시켜야 하고 반일 적대감을 갖는 것이 정당한 항일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적대감(敵對感)을 동원하는 정치’라는 파시즘세력의 의도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우리가 상대하는 일본은 더 이상 군국주의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군국주의체제는 북한과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배상을 포기한 나라들도 일본에 군국주의 해체를 확인했기에 수교한 것이며 우호협력의 대상으로 바뀐 일본에 이제 굳이 배상을 강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는 70년째 배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일본에 대한 반일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동원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배상 문제를 타협적으로 마무리 짓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자고 하면 ‘친일’로 몰아가는 파시즘적 사회가 되어 있다.
물론 반일을 내세운 파시즘적 동원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과적으로는 공산전체주의 극복과 그런 전체주의로부터의 민족을 광복시키려는 당면한 민족적 과제를 잃게 만드는 데 맞춰져 있는 것이다. 면밀히 살펴보면 한국사회에서 반일 적대감을 동원시켜 친일이니, 토착왜구니 하며 공격하는 세력의 공통된 특징은 봉건 조선에 대한 미화와 북한 및 중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파시즘적 사회의 공통점은 적대감을 조성시켜 국민을 동원하고 권력을 독점하자는 것인데 그 기본 틀이 놀랄 만큼 유지되는 있다. 중국이나 북한 전체주의가 하던 것인데 점점 한국까지 가담하고 있다. 일본과의 정당한 거래와 협력, 혹은 상품 구입 및 여행조차 군국주의와 관련된 친일로 몰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북한에 대해서는 침략전쟁은 물론이고, 무상지원 외에 갚아야 할 1조1000억 원의 차관 문제나 180억에 달하는 남북협력사무소 폭파에 대해서는 단 한번 갚으라거나 배상하라 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며 곧 이승만, 박정희, 백선엽과 애국가는 물론 곧 태극기도 일장기를 모방했다며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로 바꾸자고 할 것이다. 그 목표는 명백히 북한 및 중국과 연대하며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보수세력의 궤멸을 통해 권력독점을 장기화하는 세력들의 준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친일선동이란 공산전체주의가 만들어낸 적대감 동원을 통한 지배의 정당화와 독점과 관련된 것이다.
문명파괴와 민족을 노예화시키온 북한 전체주의 독재에 눈감고 동조하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펼쳐져온 반민족적 노예 상태와 문명 유린에 맞서야 하는 현실과 그런 체제를 엄호해온 중국의 책임을 잊게 만드는 허위적 가식이기도 하다. 반자유, 반문명적 북한을 보지 못하게 하는 대신 대일 적대감을 동원하고 반일체제를 만들라는 프레임이자, 전체주의와 싸우며 문명과 근대화를 향해 달려온 자유와 보수를 매장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근대 문명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각자들의 노력에 친일이란 굴레를 씌워 번영 사회를 만들어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자는 데 맞춰져 있는 것이다. 피하거나 물러섬이 없이 정면으로 맞서 해체시켜내야 할 과제만 남아 있다.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나라정책연구원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전 MBC 방문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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