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회담 결렬 소식에 국제사회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협상타결이 아닌 협상 결렬에 안도했다는 것이 바로 트럼프-김정은회담 문제의 본질이다. 정치적으로 곤경에 몰려 있는 트럼프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전제하에 회담을 낙관했던 김정은의 아마 커다란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김정은은 2006년 이후 6차례 핵실험과 수십차례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실험으로 이미 핵보유국임을 선언해왔다. 대내외에 핵보유국임을 공표하고 북한 헌법에도 명기했다. 과거 중국도 6회 핵실험을 마친 뒤 핵보유국이 되었음 선언한 바 있었다. 일관되게 핵보유국임을 자임해온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려 한 것은 결코 비핵화(Denuclearization) 협상이 아니었다. 북한이 하려는 것은 군축(Disarmament) 협상이었다. 핵무기와 핵능력 전체를 폐기하는 비핵화회담과, 핵보유 능력의 일부분을 폐기하는 군축회담은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북한은 이미 만들어 배치한 핵무기 40기와 미사일은 손대지 않은 채, 그동안 핵개발에 사용되어온 영변을 비롯한 핵시설의 폐기와 맞바꿔 유엔(UN) 제재를 해제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국무부는 김정은을 설득하며 핵 폐기에 따른 보상의 수준을 놀랄 정도로 높이면 북한이 비핵화로 나설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비핵화 의지가 있는 북한이라면 최소한 보유중인 핵무기와 핵물질은 다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핵폐기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보유 핵무기에 대한 신고 목록이라도 제출(submitting)한다면 ‘완전한 비핵화’의 시작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북한이 수없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공언해왔기에 진정 그 길을 가겠다면 폐기 대상인 핵무기 신고는 당연한 시작점이라고 봤다. 그런 수준의 의지를 보여야 미국도 평화선언(peace declaration)과 함께 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개선 조치와 대북제재 완화(sanctions relief)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보유국의 위상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군축회담에 맞게 일부 핵시설의 폐기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보유중인 핵무기를 다 신고하라는 것은 핵보유국의 위상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면서 결국 결렬된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비핵화 협상으로 가고자 했던 미국과, 기존 핵무기는 유지한 채 부분적(partial) 군축 협상만으로 한정짓고자 한 북한간의 대립과 결렬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본질은 이번 하노이회담의 중재와 진행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핵폐기에는 관심도 없이, 오직 북한에 대한 유엔 및 미국의 제재(sanctions) 해제에만 총력을 기울였다.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는 물론, 트럼프-김정은 협상의 결론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뒷받침하는 모든 경제적 부담은 한국이 맡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공언했다. 눈물겨운 수준이었다. 전 세계가 북한의 비핵화에 힘을 보태는 현실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유일무이한 수단인 대북제재의 해제에만 관심을 뒀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나아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 제재를 허물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지원 방안만 모색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에 반해 북한의 이해와 의사를 대변해왔다는 것을 만천하에 확인시켰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은에게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능력이란 결코 미국 정부를 움직일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도 확인시켰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준 것을 고맙지만 ‘결과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향후 몇 달간 협상은 전진되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전체를 신고하고 폐기하겠다는 의사와 실천 방안을 갖고 오라는 미국과, 핵무기는 기정사실화하면서 점진적인 단계적(step-by-step) 협상으로 임하겠다는 북한의 최종카드가 다 확인된 이상, 다시 협상을 이어가기는 당분간 불가능하다. 북한과 중국은 향후 몇 개월에 걸쳐 머리를 싸매고 미국과 국제사회를 속일 방안을 다시 짜낼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지침을 받들며 긴밀한 협의를 거쳐 다시 새로운 ‘거짓 협상안’을 가지고 타진해올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과 트럼프가 대선 기간에 활용하고 싶어 할 유인책까지 담은 모호한 협상안을 타진하며 암중모색을 꾸며낼 것이다. 늘 그랬듯, 그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을 대상으로 위협과 협박의 방법도 함께 구사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몇 가지 원칙을 명확히 지켜내야 한다. 첫째는 북한 핵문제는 제재와 압박의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북한은 그들이 보유한 핵무기가 스스로를 옥죄는 자멸(自滅) 수단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압박 수준을 높여야 한다. 에너지 공급 차단을 포함한 대북제재를 한층 강화하고, 불법 활동에 대한 해상봉쇄와 해상차단에 나서야 한다. 중국을 포함해 북한의 지원하는 나라와 기업에 대한 유엔 감시 확대와 관련 국가 및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이 군사력으로 문제의 근본적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의존적 사고’부터 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견제로 방어무기인 사드(THAAD) 배치도 몇 년째 정상화시키지 못하는 국제질서를 보면서도 ‘독자 핵개발’과 같은 현실성도 없는 대안을 논하며 대북제재 전선에 혼선을 만들 필요도 없다.
둘째로 북한 핵무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을 배제하고 동아시아에서 독점적 패권(hegemony)을 장악하려는 중국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 수단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북한 핵전략이란 근본적으로 북한을 내세워 구사하는 ‘중국의 핵전략’인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무기를 레버리지(leverage) 수단으로 한반도에서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완결시킴으로써 중국 주도적 패권 체제의 확립을 완성하겠다는 전략이 명확하다. 따라서 중국의 의도와 정책까지 좌절시키지 않는 한 북한 핵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북한에 필수 에너지를 제공하며 대북제재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체제와 핵무기를 엄호해온 중국이 국제적 리더십은 물론, 중국의 국익에도 막대한 손실이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 비로소 중국도 북한에 핵포기를 종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다.
셋째로, 우리 모두가 북한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위협과 공포’ 전략을 구사할 때 의연하면서도 과감하게 맞서야 한다. 북한이 위협한다고 해서 그들을 달래며 지원하고, 화해를 구걸하는 자세야말로 바로 북한이 원하는 바 그대로이다. 핵문제 해결은 북한의 의도를 극복해야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서울 불바다’ 같은 북한 위협과 갈등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북한 전체주의의 노예와 포로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 전체주의 해체를 향한 공세적 대응에 나섬으로써 북한이 수세로 내몰리게 해야 한다. 향후 북한은 위협과 긴장을 높이다가 또 다시 ‘거짓 비핵화’ 협상안을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그 때 다시 순진하게 협상에 나서며 지원 방안을 찾는 우를 범하지 않으며 확고한 일관성을 견지할 때 비로소 북한 변화 및 핵문제의 해결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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